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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k Aug 27. 2018

오리올루스 핀치(Finschi)

푸근하지만 둔하지 않다

  올 초 열린 오디오쇼 직후 지인과의 대화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마니아적 취미라 생각했던 포터블 오디오 분야가 예상보다 대중적이라는 것, 기존 유저들 외에 이제 막 관심을 가지는 신규 유저들이 기기 구입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기기의 금액대가 생각보다 높은 30-40만 원 대라는 점도 의외의 사실이었다. 

  생각을 해보니 우리는 이미 잠재적인 포터블 유저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라는 훌륭한 플레이어를 소유하고, 단자가 어떻든 모든 스마트폰 구성품에는 이어폰이 빠지지 않는다. 어쩌면 포터블 오디오 시장의 방해자로 여겼던 스마트폰의 고음질화가 마니아적 취미를 대중화시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음질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과 함께 스마트폰에서 번들로 제공하는 이어폰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비단 음질뿐 아니라도 천차만별인 개인의 소리 성향을 만족시키기엔 번들 이어폰은 획일적이다. 새로운 이어폰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하나는 편의성의 중시하는 블루투스 등의 무선 분야, 다른 하나는 편의성보다 음질을 중시하는 고급 이어폰 분야이다. 

  오늘 소개할 오리올루스 핀치는 그 중 고급 이어폰에 관심을 가지는 포터블 입문자들이 눈여겨볼 만한 이어폰이다. 그 동안 중고가의 제품을 선보이던 오리올루스에서 이번에는 가격을 내린 제품으로 자사 브랜드로의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추었다. 일본의 유명 음향 브랜드 사이러스(Cyras)와 히비노(Hibino) 인터사운드의 협력으로 탄생한 오리올루스는 2년이라는 짧은 기간만에 자신들의 입지를 잘 다져놓았다. 국내에서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 브랜드는 아니어도 이미 유저들 사이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았다. 핀치는 엔트리급 기기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을 뽐내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핀치 속으로 들어가보자.



1+1 구성의 하이브리드 이어폰 


  필자는 제품의 스펙 수치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제품 제작에 사용된 기술에는 주목하는 편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어폰은 신호를 소리로 변환하는 드라이버와 이를 감싸는 인클로저 유닛의 간단한 구성이지만, 그 속에는 따져보아야 할 수많은 요소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 매번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과연 이 브랜드는 어떠한 방식으로 음질 향상을 꾀했는지 파악하는 것이 필자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이다.  


  아쉽게도 리뷰를 작성하는 현재까지는 핀치의 내부 구조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이 공개되지 않았다. 한 개의 다이나믹 드라이버와 한 개의 BA 드라이버가 사용되었다는 것뿐, 어느 주파수대역에서 크로스오버가 이루어지는지, 내부 인클로저의 구조는 어떠한지, 각각의 드라이버에서 생성된 소리를 노즐까지 전달하는 보어는 어떤 식으로 제작되었는지 등,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지금은 알 방법이 없다.  

  그래도 핀치의 외관과 반투명 쉘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내부 구조를 통해 몇 가지 추측을 해보자. 우선 노즐부에 두 개의 보어가 보인다. 알려진 스펙대로 핀치는 두 개의 드라이버가 사용되었으니 드라이버 당 하나의 보어가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BA 드라이버야 구조상 드라이버부터 노즐까지 보어로 잇는 것이 보통의 방식이다. 반면 다이나믹 드라이버는 소리 전달 과정에서 활용되는 몇 가지 방식이 존재하는데, 내부를 살펴보니 핀치는 다이나믹 드라이버의 전면을 금속으로 완전히 감싼 뒤 BA 드라이버와 마찬가지로 보어를 통해 노즐로 전달하는 방식을 택한 듯하다. 그렇다면 두 개의 드라이버에서 생성된 소리가 청자에게 도달하기 전까지는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다음으로 두 개의 드라이버가 주파수대역을 어떻게 담당하는가인데, 사실 이 부분은 육안으로는 확인할 방도가 없다. 일반적으로 특정 주파수대역을 기준으로 대역을 나누어 각각의 대역을 서로 다른 드라이버가 담당하는 방식이 사용되지만 이밖에도 전음역대를 소화하는 주 드라이버에 특정 대역만을 담당하는 보조 드라이버를 추가하여 부족한 대역을 보완하는 경우도 흔히 사용된다. 어떻게 확인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조금은 원시적으로 두 개의 보어를 순서대로 하나씩 막으면서 들어보았다. 그 결과 필자가 느끼기에 핀치는 다이나믹 드라이버가 주파수 대역 전체를 맡아서 재생하는 가운데 BA 드라이버가 중역 이상을 더해주는 쪽인 듯싶다. 다이나믹 드라이버쪽 보어를 막았을 때에는 중저역 이하 소리가 확연히 감소했지만 BA 드라이버 보어를 막은 경우 고역의 개방감이 줄어들었을 뿐 전자에 비해 눈에 띄게 소리가 비지 않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호기심에 의한 일차원적 실험의 결과일 뿐이니 실제와 다를 수 있음을 강조하고 넘어가야겠다. 


  마지막으로 유닛의 뒷편에 에어 벤트로 보이는 제법 큼지막한 구멍의 배치가 눈에 들어오는데, 에어 벤트의 위치가 조금 생소하다. 에어 벤트의 역할은 주로 다이나믹 드라이버를 사용한 커널형 이어폰에서 내부의 기압을 밖으로 배출하는 주요 역할과 함께 원활한 저역 재생을 돕는 것이다. 따라서 다이나믹 드라이버에 가까운 쪽에 배치될 법한데 핀치의 에어 벤트는 다이나믹 드라이어의 배치 각도를 고려하면 감압 효과를 얻는 데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다. 그래서인지 핀치는 이어폰을 착용할 때나 착용 이후 이어폰을 건드렸을 때 내부 압력에 의해 진동판에서 클릭음이 발생한다. 착용 이후 음악 감상에는 지장을 주지 않지만 간혹 이어폰이 눌릴 때 들리는 클릭음이 성가시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단점이라 하겠다. 



풍성한 저역을 중심으로 한 부드러운 사운드 


  제품의 구조는 이쯤에서 넘어가도록 하고, 핀치의 소리에 집중할 시간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단순히 제품의 소리 성향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포터블 마니아로의 진입 과정에 선 입문자들이 제품을 선택할 때 생각해봄직한 부분들도 함께 제시하려 한다. 부족하겠지만 이 글이 처음 제품을 선택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지금 포터블 입문자들이 먼저 구입을 고려할 대상은 아무래도 플레이어보다는 이어폰일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번들 이어폰에서 벗어나 값비싼(?) 이어폰을 구입하려는 목적은 무엇일까?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는 말은 다분히 추상적이다. 우선 본인이 듣기를 원하는 소리가 무엇인지부터 확실히 정리해야만 수많은 제품의 바다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청음샵에 처음 들어서서 한 가지 조심해야할 것은 음질과 음색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음질과 음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제품은 고가인 경우가 많고 보통은 둘 중 한 쪽에 조금 치우친 제품들이 많다. 이때 특정 대역을 과도하게 강조한 이어폰은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음식과 같아서 단시간 들었을 때에는 시선이 확 끌릴 순 있지만 오래 두고 사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이보다는 기본적인 음질 수준은 유지하는 가운데 본인의 입맛대로 간을 살짝 한 이어폰이 오래 쓸 만하다.  

  다행히 요즘 출시되는 입문형 이어폰들은 좋은 이어폰이 지녀야 할 기본을 갖춘 경우가 많다. 핀치 역시 그중 하나다. 그리고 핀치의 소금 한 꼬집은 저음역대에 뿌려져 있다. 하이브리드 구조의 이어폰이지만 핀치의 대체적인 소리 성향은 풍성한 저역의 다이나믹 드라이버 이어폰에 가깝다. 양감이 많은 가운데 강한 타격감보다는 부드러운 울림이 강조되는 유형의 저역이다. 이러한 튜닝의 장점은 무대가 넓게 펼쳐진다는 점이다. 다만 저역을 활용한 무대 확장은 다른 음역대의 소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그 결과 중고역대에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올 8월 내한공연을 갖는 카마시 워싱턴은 현대 재즈 장르를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재즈 색소포니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발매된 카마시 워싱턴의 신보 <Heaven and Earth> 중 ‘One of One’를 핀치와 ifi xDSD 조합으로 듣는다. 곡에서 관심있게 파악할 부분은 베이스가 이끌어가는 기본 멜로디 선율과 드럼 심벌의 찰랑임, 그리고 메인이 될 색소폰의 존재감이다.  


  필자가 듣기에 이 곡을 주도하는 것은 색소폰이 아니라 베이스이다. 베이스가 살아나야 그 위에 쌓이는 색소폰의 거칠고 자유분방한 멜로디가 함께 살아난다. 코러스가 가세하는 부분에서는 재즈치고는 상당히 넓은 무대가 펼쳐지는데, 이때 코러스의 위치가 무대의 후방에 배치되는 것이 가장 좋다. 확실히 핀치는 다른 대역에 비해 저역이 살짝 강조되고 음선이 부드러운 편이다. 심벌의 시원함이 부족하고 색소폰의 거친 질감이 다소 무디게 들린다. 베이스가 강조되면서 원래 무대 앞쪽에 위치했던 색소폰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느낌이다. 하지만 바꾸어 말하자면 평소 이 곡을 들었을 때 종종 부담으로 다가왔던 에너지를 핀치가 듣기 편안하게 제어해준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다음으로 막스 리히터의 <The Blue Notebooks>에 수록된 ‘On The Nature of Dalight’를 재생했다. 이 곡은 2004년 앨범이 발매된 이후 지금까지 여러 영화 OST에 사용되었는데, 영화 ‘어라이벌’에서 이 곡과 영화 속 장면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는 필자가 꼽는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  


  비올라를 비롯한 현악기들이 담담하게 배경을 채워주는 가운데 두 대의 바이올린이 메인 선율을 이끌어간다. 하나는 첼로에 가까운 무거운 멜로디, 다른 하나는 바이올린 본연의 날카로운 멜로디이다. 핀치의 웅장한 저역은 곡의 스케일을 한층 키워준다. 기존의 배경 현악기들이 오케스트라적 소리였다면 핀치로 듣는 순간 OST에 보다 어울릴 만한 저역으로 변모한다. 때로는 다소 과장되게 느껴질 정도로 저역의 진동이 발생한다. 두 대의 바이올린 중 중역은 보다 첼로에 가깝게 내려가는 대신 고역의 음선이 살짝 얇다. 

  이제 다시 입문자가 고려해야할 점 한 가지, 핀치처럼 개성이 잘 드러나는 이어폰의 경우 매칭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선보인다. 지금까지 언급한 핀치와 ifi xDSD는 궁합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이유를 따져보니 xDSD의 높은 밀도와 진한 음색이 핀치의 풍성한 저역을 과장되게 표현하기 때문인 것 같다.  


  기기를 바꿔 이번에는 코드사의 2qute에 블루하와이 앰프로 유명한 헤드앰프사의 피코 슬림 포터블 앰프 조합으로 핀치를 들으면, 부족하게 느껴지던 음의 탄력이 살아나면서 다소 풀렸던 저역이 알맹이가 잡힌 타격감 있는 저역으로 변모한다. 가격대를 떠나 굉장히 만족스러운 소리이다. 바꾼 조합으로 막스 리히터의 곡을 다시 들으니 이제야 음의 밸런스가 맞는다. 여전히 저역이 배경을 가득 채우지만 xDSD와 함께 했을 때처럼 진동이 느껴질 만큼 과하지 않고, 바이올린의 선율 역시 한층 또렷하다. 이를 봤을 때 핀치와 궁합이 맞는 플레이어는 진한 밀도감보다는 또렷한 음상 맺힘에 중점을 둔 쪽이 어울린다.  



리뷰를 마치며 


  오리올루스 핀치 리뷰는 필자가 작성한 이전 리뷰와는 달리 제품의 설명과 함께 제품 선택의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려 애썼다. 리뷰를 작성하면서 문득 판매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본다. 핀치와 같은 제품은 사용자가 어떠한 환경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만족도를 가져올 만한 제품이다. 성공적인 매칭이라면 다행이지만 만약 매칭 실패의 경우 핀치가 가지는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 채 사용자에게 안 좋은 기억으로 묻힐 가능성도 높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개발자 혹은 판매자의 가이드 라인 아닐까. 

소비자의 선택을 도울 만한 가이드를 제공해야 한다. (출처 : http://www.e-earphone.jp/)

  단순히 원음에 충실하고 투명한 음을 전달한다는 표현은 진부할 뿐 그리 유용치 않다. 이제는 소비자에게 보다 현실적인 도움을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역할은 리뷰어의 분야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요즘 유저의 눈에 비치는 리뷰 혹은 리뷰어는 제품 홍보의 성격이 강하다. 웹에 올려지는 수많은 리뷰들은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리뷰는 개인의 검색 결과에 따라 전달되는 정보가 달라지지만, 제조사의 소개글은 제품을 구입하려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포터블 시장은 고가 정책으로 일관하던 과도기를 지나 상향 평준화의 안정기에 접어든 모양새이다. 다시 말해 현명한 소비를 통해 얼마든지 과거 고가의 제품에서나 들었던 수준의 만족감을 얻어낼 수 있는 시기이다. 필자가 들은 핀치 역시 제품이 가진 잠재력이 상당하다. 핀치와 함께 사용할 플레이어, 케이블, 이어팁 등을 잘만 찾는다면 부족함 없는 소리를 들려줄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선택을 위한 한 가지 팁, 핀치는 저역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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