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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k Sep 28. 2018

아스텔앤컨 SP1000M

포터블(Portable)에서 모빌리티(Mobility)로

  돌연 아스텔앤컨의 새 기기 소식이 들렸다. 올 들어 만들어진 아스텔앤컨의 세 번째 DAP이다. 신제품 주기가 너무 짧은 것이 아닌가 싶지만 기기명을 들으니 수긍이 간다. SP1000의 소형화 버전인 SP1000M이다. SP1000이 작년 6월에 출시했으니 A&ultima 라인으로서는 일 년 만이다. 더군다나 플래그십이 아닌 비어있는 라인업의 하위 모델을 채우는 역할을 맡았다. 여전히 아스텔앤컨의 최상위 기기는 SP1000이다. 이미 아스텔앤컨은 세 가지 라인업을 독자적으로 꾸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보면 SP1000M의 발매는 당연한 수순이다.

  SP1000M의 출시 소식이 전해진 이후 기기의 스펙에 이목이 집중됐다. 케이스의 소재와 기기의 사이즈는 변경됐지만 대부분의 스펙은 SP1000과 동일하다. 그러면서 가격은 대폭 낮아졌으니 드디어 아스텔앤컨에서도 하극상이 한 번 일어나는 것인가 싶은 모양새다. 사실 필자는 출시 소식이 전해지기 이전부터 리뷰 작성을 위해 SP1000M을 다루면서 제법 오랜 기간 SP1000과 비교할 수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어찌나 입이, 아니 손이 근질거렸는지 모른다. 이제서야 그 비교 결과를 밝힌다. ‘포터블’ 플레이어에 관심을 가지는 이라면, 이 제품을 눈여겨 보자. 



음질과 휴대성의 절묘한 조화 


  무채색의 톤, 소재 고유의 색상을 기본으로 한 이후 한정 개념으로 색상을 입히는 방식이 이제까지 아스텔앤컨의 제품 출시 양상이다. 헌데 SP1000M은 처음부터 BMW의 산 마리노 블루(San Marino Blue) 색상을 떠올리게 하는 짙은 파란색 옷을 입고 나왔다. 하필 이 시기에 BMW인가 싶지만 각을 중시하는 아스텔앤컨의 남성적 디자인과 블루 색상의 만남은 BMW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 점이 많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SP1000과 SE100의 모습이 모두 들어있다. 시계 용두를 연상시키는 휠 버튼은 SP1000과 동일하다. 다만 전원 온/오프를 휠 버튼에 배당하지 않고 상단에 별도의 버튼을 배치시킨 것은 간혹 붉어져 나오는 휠버튼 유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하단의 마이크로SD 슬롯을 개방해 놓은 것 역시 SP1000 이후 유저들의 불만을 반영한 모습이다. 좌측의 재생 관련 버튼은 SE100을 닮았다. 기기 디자인의 큰 틀과 눈에 확 들어오는 휠 버튼은 SP1000을 떠오르게 만들지만 사실상 후속 제품의 디자인을 여럿 반영한 모양새다. 



  무엇보다 한결 작아지고 가벼워졌다. 치수로 따지자면 SP1000 대비 가로 약 1센티, 세로 약 1.5센티 작아졌고, 무게는 무려 150g 이상 줄어들었다. SP1000M에서 ‘M’이 가지는 첫 번째 의미, ‘Mini’에 정당성을 부여할 만한 수치이다. 사람에 따라 휴대성의 가치가 다를 것이다. 코드 휴고 시리즈도 포터블 기기요, 최근 소니의 신제품 DMP-Z1도 마음만 먹는다면 들고 다닐 수 있다. 농담삼아 이러한 유형의 기기들을 거쳐블(이번 소니는 양심상 캐리어블이란 용어를 사용했다)이라 부른다. 이에 비한다면 SP1000은 아주 가벼운 포터블 기기라 할수도 있겠다. 


  DAP의 고급화는 기기의 사이즈를 키웠고 무게를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는 포터블 플레이어를 세분화할 필요는 없을까. 소위 거쳐블 기기들은 차치하더라도 SP1000과 SR15를 하나의 체급으로 묶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이다. 적어도 필자의 기준에서 SP1000은 휴대는 가능하나 이동 중 들고 다니면서 사용하기에는 무리이다. 주머니에 넣자니 무게와 크기가 난감하고 가방에 넣고 다니자니 조작하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M’의 두 번째 의미는 ‘Mobility’, 즉 단순 휴대성을 넘어서 이동 중에도 사용할 만한 포켓 사이즈를 구현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SP1000M과 함께 여러 차례 야외에서 음악을 즐기는 동안 들고 다니는 데에 별다른 부담을 느끼지 못했다. 평소 사용 중인 스마트폰보다 작고, 200g의 무게는 약 30g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스트리밍 어플리케이션 지원 


  어쩌면 아스텔앤컨의 새로운 기기 출현보다 더욱 반가운 소식일지도 모르겠다. SP1000M을 시작으로 아스텔앤컨 기기도 드디어 안드로이드 어플 설치를 지원한다. 다시 말해 이제 현존하는 모든 스트리밍 서비스를 아스텔앤컨 기기와 네트워크망만으로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서드파티 어플 지원은 양날의 검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방대한 양의 음원을 양질의 소리로 간편하게 즐기게 되었으니 당연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개발자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신경써야만 한다. 바로 호환성 문제 때문이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은 펌웨어 업데이트 주기가 굉장히 짧은 편이다. 그 중 국내 스트리밍 어플리케이션은 더욱 빈번하게 업데이트를 진행한다. 이때 어느 순간 갑자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간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삼성 갤럭시같은 스마트폰이야 차원이 다른 규모이니 문제가 없겠지만 DAP에선 말이 달라진다. 그나마 SP, SE 시리즈는 옥타코어 CPU 투입 등 하드웨어적으로 여느 스마트폰에 뒤질 것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어플리케이션 구동의 안정성 문제는 추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할 과제이다. 



  아직 정식 펌웨어가 발표되지 않은 시점에 리뷰를 진행했지만 평소 사용 중인 스포티파이의 경우 원활하게 구동되는 것을 확인했다. 서드 파티 어플리케이션의 조작을 위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버튼이 UI에 추가되었는데, 화면 특정 위치에 고정시키지 않고 유저의 편의에 따라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버튼을 없앨 수도 있다. 전해들은 바로는 옥타코어를 사용한 SP, SE 시리즈는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해당 기능을 동일하게 지원할 계획이지만 SR15의 지원 여부는 아직 미정이라고 한다. 만약 지원하지 않는다면 아스텔앤컨의 라인업을 분류하는 큰 기준으로 작용할 듯싶다. 




SP1000M의 가치 


  SP1000M의 소리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선 아스텔앤컨의 라인업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려 한다. 기존 아스텔앤컨 사용자들은 SP1000M과 SP1000의 관계, 확대하면 SE100까지와의 관계를 궁금해할 것이다. 발표된 하드웨어 스펙은 자사의 최상위 제품인 SP1000과 별반 다를 게 없으니, 여기에 휴대성까지 더한 SP1000M이 오히려 더 나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주변에서 많이 접했다. 그에 대한 대답이 될지 모르겠다. 아스텔앤컨이 언제 하극상을 일으킨 적 있었는가? 


  가격적인 차등을 두었지만 SP 시리즈와 SE100(을 비롯하여 추후 발매될 SE 시리즈)는 사실상 더블 플래그십이라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 이유는 단순히 두 라인이 서로 다른 DAC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성향이 겹치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둘 중 보다 마니악한 성향의 사운드는 SE100이 될 텐데, 발매 초기와 현재 SE100의 소리에 대한 유저들의 달라진 반응을 보면 필자 외에 실제 SE100 사용자들 역시 이 기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인정하는 분위기라 할 만하다. 


  남은 문제는 같은 라인업에 속한 SP1000과 SP1000M 사이의 관계이다. 출시가만 보자면 확실히 SP1000M이 하위 기종이지만, 여느 때와 달리 이번에는 아스텔앤컨이 기기의 스펙을 가지고 어떠한 장난도 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된 것일까? 작아진 화면, 줄어든 내장 메모리는 사실상 음질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부분이다. 수치로 들어나는 음질 관련 스펙이 대동소이하기에 휴대성에서 장점을 가지는 SP1000M이 오히려 낫다는 의견도 들린다. 먼저 확실히 구분해야겠다. 음질과 휴대성은 별개의 문제이다. 어느 면을 보더라도 휴대성으로는 SP1000이 SP1000M을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소리는 어떠한가. 사이즈가 작아짐에 따라 앰프단의 세부 설계와 배터리 용량에서 두 기기간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소리 성향은 매우 유사하게 들린다.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해선 안될 부분이 있으니, 바로 케이스 소재 차이이다.  아스텔앤컨에서 처음 케이스 재질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상위 제품을 출시했을 때만 하더라도 유저들 사이에선 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여러 유저들의 검증 결과 케이스에 따른 음질차가 체감될 정도이며, 알루미늄보다는 스테인리스 스틸 혹은 황동 케이스가 음질상 이점을 가진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 AK380과 AK380 Copper 모델을 비교해서 들은 뒤 생각보다 큰 차이에 깜짝 놀랐다. SP1000 SS와 SP1000 Copper를 두고 비교한 결과 필자의 취향에는 Copper가 더 잘 맞았다. SP1000M과 SP1000 사이 소리적 차이도 이와 유사하다. 보다 나은 음질과 보다 나은 휴대성 사이에서 SP1000은 음질을, SP1000M은 휴대성을 택한 셈이다. 



조금은 젊어진 사운드 



  구체적으로 몇몇 곡들을 통해 비교해보자. 함께 사용한 이어폰은 비전이어스 VE6이다. 먼저 스페인 바이올리니스트 레티샤 모레노(Leticia Moreno)의 <Piazzolla>이다. 프헤가를 통해 자세히 소개된 바 있는 피아졸라는 두말 할 필요 없는 대표적인 탱고 작곡가이자 반도네온 연주자이다. 앨범에 수록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Cuatro Estaciones Portenas)’ 중 요즘 계절에 어울리는 가을(Otono Porteno)를 들어본다. 탱고하면 떠오르는 정열적인 느낌보다는 가을이 주는 쓸쓸함에 초점을 맞춘 곡 구성이지만, 순간 순간 터져나오는 강렬한 바이올린 현의 터치는 부에노스아일레스의 가을이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SP1000 SS는 특유의 넓은 무대 공간을 활용하여 전경과 배경이 뚜렷하게 구분하여 연주를 들려준다. 바이올린 현의 두께감이 정확히 묘사되어 저역의 두꺼움과 고역의 날카로움이 모두 잘 살아나는, 악기의 질감은 살리되 과하지 않은 고급스러운 음색이다. 이러한 표현력 덕분에 출시한 지 2년째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최고의 DAP라는 평을 듣는 것이다. 바로 SP1000M으로 바꾸어 들었다. 전반적인 토널 밸런스가 한 계단 올라선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전경과 배경의 간격이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분리도는 최상급이다. SP1000과 비교했을 때 음역대 밸런스에서 가장 큰 차이를 꼽자면 저역의 양감이 아닐까 싶다. 상대적으로 SP1000M에서 주역이 되는 바이올린이 타 악기에 비해 조금 더 돋보인다. 이러한 소리 차이를 기기의 스펙만으로 설명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음으로 최근 필자가 자주 듣는 앨범인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The Blue Notebooks>를 재생한다. 이번에는 SP1000M부터 들어보았다. 비올라와 바이올린의 음색이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점, 그리고 바이올린의 미세한 비브라토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바이올린 선율의 배음 표현 역시 중도에 끊기는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확산된다. 분리도와 토널 밸런스가 훌륭하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악기들의 조화이다. 최근 필자가 들었던 제품들이 대체로 저역이 강조된 편이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SP1000M의 절묘한 토널 밸런스에 신경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었다.  


  SP1000은 SP1000M의 훌륭한 재생 실력에 생동감을 한 스푼 추가한다. 보다 라이브함이 느껴진다. 매번 느끼지만 SP1000 SS이 들려주는 음선의 탄성은 타 기기들이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이다.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잡힌 토널 밸런스 덕분에 연주가 보다 안정적이다. 나이에 비유하자면 SP1000M은 연주 실력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20대, SP1000은 완벽한 연주에 완숙미까지 더해진 30대에 가깝다. 어찌 보면 보다 젊잖은 소리라고 할까. 그럼 보다 젊은 층의 장르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푸 베어(Poo Bear) 자신의 스튜디오 데뷔 앨범, <Poo Bear Presents: Bearthday Music>의 2번 트랙 ‘Put your lovin where your mouth is’로 트랙을 옮겼다. 힙합 장르인 만큼 앞선 곡들보다 비트가 강조되고, 단순화된 멜로디 위에 제니퍼 로페즈의 보컬이 곡 전반을 이끌어 나간다. SP1000은 저역 비트를 한치의 무너뜨림 없이 단단하게 응집시켜서 존재감이 확실한 타격감을 뽐낸다. 중역의 상쾌한 비트는 넓은 공간을 활용하는 가운데 음상이 곳곳에 명확하게 맺힌다. 곡이 표현하는 모든 리듬 하나하나 명확하게 재생되고 무대의 중앙에 보컬이 또렷하게 자리잡았다. 


  재미있는 것이, SP1000M에서는 제니퍼 로페즈의 보컬이 젊어졌다. 무대의 좌우 분리도는 다름 없이 훌륭하지만 상하, 전후의 거리감이 줄어들었다. 중역 비트의 비중이 살짝 늘어난 대신 저역 비트의 존재감은 그 만큼 작아진다. 저역의 단단함은 그대로지만 타격감 면에서는 형보다 아쉽다. SP1000이 조금 더 깊숙한 곳까지 치고 들어오는 편이다. 이렇게 비교해서 들어보니 산뜻한 음을 좋아한다면 오히려 SP1000M이 마음에 들 수도 있을 듯하다. 전반적으로 보다 젊은 취향에 적절한 음색이다. 



발빠른 사후 지원을 기대하며 


  포터블 오디오에서 DAP 분야는 이어폰과는 달리 위기의 연속이다. 국내 시장도 작을 뿐더러 신제품 출시 주기가 빨라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금새 다른 브랜드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그렇기에 아스텔앤컨의 행보가 더욱 주목받는다. 사실 아스텔앤컨의 주요 시장은 국내가 아니다. 이미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매번 아스텔앤컨의 신제품이 국내보다 해외에 먼저 소개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실상 전세계 DAP 시장을 이끌어 나가는 입장에 섰다.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개인적으로 라인업을 새롭게 단장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SP1000M은 아스텔앤컨이 유저들의 니즈를 얼마나 빨리 캐치하는지 잘 보여주는 예이다. 포터블 오디오가 가져야 할 본연의 덕목은 더욱 강조했고, 여기에 고음질 스트리밍이라는 대세를 따랐다. 비단 SP1000M뿐 아니라 나머지 기기들의 스트리밍 서비스 지원 소식에 벌써부터 유저들은 환호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얼마만큼 발빠르게 사후 지원을 이어가느냐이다. 아, 이참에 미리 이동식 와이파이 하나 준비해두는 것은 어떨까?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글은 프리미엄헤드폰가이드 10월호에 기고한 리뷰의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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