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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k Oct 25. 2018

HD800(S)와 다르다

젠하이저 HD820

  명품의 기준이 무엇일까? 세월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해지는 것은 명품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젠하이저 HD800은 헤드파이 분야의 진정한 명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2009년 출시 이후 한 번의 마이너 업데이트만 이루어졌을 뿐 유행의 주기가 급속도로 빠른 IT 분야에서 10여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헤드폰의 기준 역할을 도맡았다. 비단 헤드파이 유저들의 레퍼런스에 그치지 않고 앰프를 비롯한 여러 헤드파이 관련 제품을 개발하는 브랜드들 역시 자사의 제품 테스트에 여전히 HD800 시리즈를 활용 중이다. 


  출시 당시 HD800은 헤드폰으로서는 초고가에 해당하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각 브랜드의 플래그십이라는 명함을 달고 등장하는 제품들의 가격은 HD800의 가격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가격을 제쳐두고 성능만 놓고 보아도 최신 기술이 투입된 헤드폰들을 출시된 지 10년이 지난 헤드폰이 따라잡는 것은 어렵게 느껴진다. 필자만 해도 가장 뛰어난 음질의 헤드폰을 고르라고 한다면 HD800 외에 다른 헤드폰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지만 질문을 바꿔 레퍼런스로 삼을 하나의 헤드폰을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HD800 시리즈를 고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명품의 힘이고, 젠하이저의 힘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젠하이저 역시 새로운 제품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점을 지키자니 더 이상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는 세간의 시선이 우려스럽고, 그렇다고 기존의 스타일에서 탈피하자니 자칫 이제까지의 정체성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험이 크다. 앞으로 ‘HD8XX’라는 이름을 이어갈 헤드폰이 이겨내야 할 숙제이다. 2016년 HD800S 출시는 서로 반대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전자를 택하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벌 요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는지 전혀 다른 옷을 입은 8 시리즈가 등장했다. HD800의 후계자가 밀폐형으로 등장할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만큼 완전 밀폐형 헤드폰 HD820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어컵의 소재로는 고릴라 글래스가 채택되었단다. 그간 어느 헤드폰에서도 보지 못한 소재의 채용이다. 더군다나 보통 유리라 함은 하이파이 오디오에서도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아닌가. 보면 볼수록 상상이 가지 않는 제품일 수밖에 없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필자가 직접 제품 대여를 요청했고 어렵사리 리뷰 제품을 받아볼 수 있었다. 들어본 결과 예상치 못한 소리에 혼란스러운 마음이다. 이번 리뷰, 쉽지가 않을 듯하다. 



오목한 고릴라 글래스 이어컵 


  HD800 시리즈는 완벽한 개방형 헤드폰이다. 이어컵은 드라이버의 고정 및 최소한의 보호를 위한 구조로 풀사이즈 헤드폰임에도 불구하고 330g의 가벼운 무게를 자랑하며 오랜 시간 착용하는 데에 무리가 없다. 단순히 무게 절감을 위해 드라이버의 뒷면을 시원하게 뚫어놓은 것은 아니다.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전후로 진동하는 드라이버의 뒷단이 완벽히 오픈된 구조가 음질상 분명한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무대 사이즈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헤드파이 분야에서 그나마 넓은 무대를 형성하는 데에는 밀폐형보다 개방형이 단연 우위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식은 그렇다. 


  집 안에서 스피커로 충분한 볼륨을 올려 듣기 힘든 상황일 때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사용되는 것이 풀사이즈 헤드폰의 일반적인 용도이다. 따라서 휴대용 헤드폰과는 달리 차음성과 누음성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물론 개방형 헤드폰에서 밖으로 흘러나오는 소리조차도 용납되지 않을 때에는(미스터 스피커스의 댄 클락이 초기에 밀폐형 헤드폰을 만든 이유처럼) 밀폐형을 택해야 하겠지만 앞에서 언급한 태생적인 이점으로 인해 각 브랜드의 플래그십 풀사이즈 헤드폰은 대부분 개방형 구조를 가진다. 비교적 최근 출시된 울트라손의 에디션15도, 포스텍스의 TH909도 전작인 밀폐형에서 탈피하여 개방형 구조를 채택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플래그십 제품 개발이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 제품이 무려 HD800 시리즈의 후속기기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분명 크나큰 도전이며 굉장한 자신감이 아니고서야 시도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젠하이저 홈페이지에 올려진 HD820 소개에 쓰인 몇몇 문구가 인상깊다. “놀랄 만큼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음장을 제공하며”, “개방형 헤드폰과 같은” 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HD820의 밀폐형 구조가 개방형 구조를 뛰어넘기 위해 사용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보단 개방형(아마도 HD800S) 수준의 소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활용도를 높인 밀폐형 제품을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사실 음질을 제외한다면 활용도 면에서는 개방형보다야 밀폐형이 앞선다. 주변 환경에 덜 민감할 것이고 다른 풀사이즈 헤드폰의 경우 디자인과 무게 때문에 그리 권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HD820 정도면 카페 등 공개된 장소에서의 사용도 고려할 수 있겠다. 


출처 : https://youtu.be/N5KVFg41x2s


  개방형 헤드폰의 사운드를 얻기 위해 밀폐형 헤드폰인 HD820에서 쓰인 가장 중요한 요소가 고릴라 글래스 이어컵이다. 모양을 고려하면 이어’컵’이라 부르기 어렵다. 보통의 경우와는 달리 드라이버 방향으로 굴곡진 오목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내부 용적이 줄어들어 자연히 드라이버의 위치도 보다 청자의 귀에 가까워진다. 어느 하나 보통의 생각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젠하이저는 HD820의 이어컵 모양을 완성하기 위해 3D 프린터를 활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이어컵을 적용시켰다고 한다. 그 결과 보통의 볼록한 이어컵 모양은 소리가 이어컵의 중앙에 집중되었다가 반사가 일어나 가장 왜곡이 심한 결과를 얻었고, 최종적으로는 이어컵에서 반사될 때 최대한 음향 에너지를 확산시키는 데 효과적인 오목한 형태가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금속 인클로저의 대명사 매지코. 최근에는 많은 스피커들이 금속 재질 인클로저로 제작되고 있다. 출처 : https://magico.net


  젠하이저 관계자 악셀 그렐(Axel Grell)은 가벼운 무게와 충분한 강도를 얻기 위해 찾은 결과물이 고릴라 글래스라 말한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는 음질만큼 중요한 것이 착용감과 무게이다. 고릴라 글래스을 사용함으로써 hd820은 밀폐형임에도 HD800보다 고작 30g 증가한 360g의 가벼운 무게로 완성되었다. 이어컵의 소재는 울림통 역할을 하여 음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보통 이어컵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 것이 목재와 금속이다. 고릴라 글래스는 이 중 금속의 특성에 가까운 소재로 보인다. 이 부분에서 얼핏 젠하이저의 의도가 보이는 듯하다. 목재의 경우 자연스러운 울림을 강조하는 스타일, 금속의 경우 불필요한 울림을 억제하여 드라이버 고유의 소리를 충실하게 전달하는 스타일에 가깝다. 이는 비단 헤드폰뿐 아니라 스피커의 인클로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최근 들어 하이파이 스피커에서 금속 소재의 인클로저가 많이 보이는데 아마도 이제는 스피커 자체가 하나의 악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음성 신호를 그대로 전달하는 마지막 경로로서 왜곡 줄이기를 목표로 하는 최근의 트랜드를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드라이버의 뒷면을 완벽히 막은 것처럼 이어패드 역시 보다 귀에 밀착되어 누음을 최소화시켰다. 측면은 가죽, 피부와 직접 맞닿는 부분은 극세사를 사용한 부드러운 이어패드는 HD800 시리즈에서와는 달리 착용시 외부와 차단되어 하나의 내두 공간이 형성되는 느낌을 전달한다. HD820이 밀폐형으로 개발된 이유는 개방형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개방형 헤드폰 수준의 음질을 즐기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높은 차음성 역시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소리가 외부로 새어 나가는 것을 방지하여 온전히 청자에게 전달함으로써 젠하이저가 의도한 소리를 변형 없이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도 커 보인다.  


  제품을 뜯어보면 볼수록 묘한 기대감이 생긴다. 기존 HD800S와 완벽하게 동일한 드라이버가 사용되었다고 할지라도 소리에 관여하는 많은 부분들이 너무나도 변했다. 그런데 그 변화를 들여다보면 일관된 방향성이 엿보인다. 바로 정확함이다. HD800 출시 이후 10여 년이 지난 현재, 강산도 변했고 좋은 소리에 대한 기준 역시 변했다. 보다 정확한 음장, 악기간 분리도 등 현대 하이파이가 지향하는 사운드에 젠하이저도 합류한 듯하다. 뒤에서 자세히 언급할 음색 면에서도 최근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사용자들의 선호하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고심한 모습이 역력하다.  



한 단계 발전한 밀폐형 헤드폰, 그리고 한계 


  HD820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혼란스러움은 온전히 필자의 오해로부터 시작되었다. HD800S의 후속기라는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HD820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였다. 이게 정말 젠하이저 제품이 맞는지, 혹시 제품을 잘못 착용한 것은 아닌지 확인할 정도였다고 한다면 필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HD820은 레퍼런스라는 명칭과 어울리지 않는 헤드폰이다. HD820은 HD800 시리즈의 후속기라기보다 전혀 다른 제품으로 만들어졌다고 보아야만 한다. 전작들과 공유하는 ‘HD8’보다는 ’00’과 ’20’이라는 차이점에 더 주목해야 할 제품인 것이다. 


출처 : head-fi.org


  무엇이 바뀌었는지 보다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 주파수 그래프를 참고하려 한다. 필자는 평소 주파수 그래프를 가지고 헤드폰을 설명하는 방식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제품은 몇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HD800에서 HD800S로 바뀌면서 드라이버 중앙에 공진기(resonator)가 추가되었다. 공진기의 역할은 HD800이 다소 날카롭게 들리는 이유인 6kHz 부근의 피크를 억제하는 것이다. 두 제품의 주파수 그래프는 해당 대역을 제외하면 차이가 미미하다. 반면 HD820은 앞선 두 제품과는 두 지점에서 큰 차이가 눈에 띈다. 하나는 강조된 저역, 다른 하나는 200Hz 대역의 딥이다. 결과적으로 앞선 제품들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HD820은 기준과는 상당히 먼 그래프 모양이 그려진다. 



  달라진 두 부분은 모두 최근의 음향 연구를 고려한 결과이다. 강조된 저역은 2017년 발표한 하만 헤드폰 타겟 주파수를 고려한 것인가 싶다. 타겟 주파수의 연구가 진행될수록 점점 저역의 양이 많아지는 추세이고, 또한 2017년 발표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헤드폰과 이어폰의 주파수 그래프를 구분하여 이어폰의 저역 양을 헤드폰보다 크게 높인 그래프를 선보였다. 해당 연구에서는 밀폐형과 개방형 헤드폰을 구분하지 않았지만 이어폰 그래프와의 관계로 유추할 때 개방형보다는 밀폐형이 보다 많은 저역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HD820의 늘어난 저역은 어느 정도 타당성 있는 변화라 할 것이다.  


  200Hz의 딥 역시 심리음향학의 연구 결과에 따른 의도적인 조치이다. 악셀 그렐은 해당 대역을 플랫하게 처리하면 실제 음성보다 어둡고 답답하게 들린다고 주장한다. 이를 방지하고 보다 명료한 보컬을 위해 의도적으로 딥을 주었다는 것이다. 비단 이론적인 설명이 아니더라도 HD820의 소리에서 가장 이색적으로 들리는 부분이 보컬이었다. 상대적으로 도드라지는 느낌, 기존 헤드폰의 소리에 익숙한 필자에게 HD820로 듣는 보컬은 깨끗하지만 살짝 톤이 왜곡된 것처럼 들리는 묘한 착색이 느껴진다. 앞서 필자가 HD820에게 레퍼런스라는 명찰을 붙이기 어렵다고 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밀폐형이지만 개방형에 가까운 소리, 그리고 심리음향학적 결과의 반영. 근 10년 만에 출시된 HD820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버린 제품이다. 그러니 HD800S를 생각한 필자가 깜짝 놀랄 수밖에. 이제 이전 제품의 틀은 던져버리고 HD820만 두고 소리를 따져볼 시간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소리의 담백함이다. 불필요한 울림이 제거되었을 뿐아니라 모니터링적 성향에 가까우리만큼 명료하고 맺고 끊음이 정확하다. 그래프상 늘어난 저역 때문에 혹여 전반적인 토널 밸런스가 한층 어두워지지 않았을까 우려했지만 저역의 기분 좋은 타격감만 강조될 뿐 토널 밸런스는 오히려 살짝 밝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도 살짝 도드라지는 경쾌한 보컬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소리의 결이 날카롭지 않아서 장시간 들어도 귀가 피로해지지 않는 점은 쓰임의 폭을 넓힌 HD820과 잘 어울리는 사운드 튜닝이라 하겠다. 


  200Hz 딥의 결과 확실히 필자에게 익숙한 보컬의 음색과 HD820으로 들었을 때의 음색은 다르다. 처음에는 묘한 착색이 어색하게 다가왔지만 리뷰를 진행하며 적응이 되었는지 지금은 이질감이 시원하게 뻗는 경쾌함으로 바뀌었다. 중역이 강조되었을 경우 들리는 도드라짐과는 다른, 경쾌함에서 오는 도드라짐이다. 아마 다른 사용자들도 HD820의 소리에 적응하기 위한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적응만 한다면 음색 면에서는 호불호는 나뉠 지언정 문제가 될 부분은 아닐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도 익숙해지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무대 형태이다. 


Adele water under the bridge New York (Official Video) Live


  HD820의 무대 크기는 확실히 여타 밀폐형 헤드폰에서 들어본 적 없는 수준이다. HD800S처럼 막힘없이 뚫린 무대는 아닐지라도 무대의 경계가 제법 먼 곳에서 자리잡혀 소리가 뻗어나간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오목한 형태의 이어컵이 제 실력을 발휘하는 듯하다. 다만 무대의 크기와 형태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HD820의 무대는 넓어졌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대의 형태가 불안정하다. 머리 중앙 지점이 가장 앞쪽으로 튀어나온 오각형 무대가 그려진다. 가령 아델의 <25>를 듣고 있으면 몇볓 곡에서는 아델이 무대 중앙의 앞쪽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듯한데, 보통 보컬이 강조되었다 하는 헤드폰과는 달리 무대 자체가 그렇게 변형되어 들린다는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과거 울트라손 헤드폰에서 느껴지던 묘한 공간감과 닮았다. 


  모든 경기에는 체급이 존재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보다 위체급 선수와 맞붙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밀폐형과 개방형은 체급이 다르다. 체급을 뛰어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써보지만 한정된 공간을 억지로 넓히는 것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과 유사한 일이다. 무언가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HD820에 앞서 울트라손이 그랬다. 반사음을 통해 머릿속 정위를 앞으로 끄집어내려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개방형 구조를 통해서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HD820은 울트라손처럼 무대의 위치를 앞으로 옮기려 노력하진 않았지만 반사음의 처리를 통해 개방형의 무대 공간을 흉내내려 시도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절반의 성공으로 여겨진다.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 



  기준을 밀폐형으로 잡는다면 HD820은 잘 만들어졌다. 이 기기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개성이 뚜렷한 헤드폰이다. 위에서 언급한 평들 중 일부는 어디까지나 잘난 형들, HD800 시리즈들과의 비교로 인해 다소 불리한 평가를 받은 면이 없지 않다. 


  보통의 경우 후속기를 출시했을 때 이전보다 발전된 음질이라 홍보할 만도 한데 젠하이저는 HD800S와 HD820 사이 음질적인 장단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는다. 사실상 HD820은 음질 향상 목적보다는 활용의 폭을 넓일 요량으로 개발되었다고 봐야 하겠다. 말은 간단하지만 이를 개발하기 위해(밀폐형으로 변경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을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만하다. 젠하이저는 밀폐형 헤드폰으로서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소리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HD820을 개발했고, 출시 직전까지 수정을 거쳐 마침내 세상에 선보였다.  


CanJam 2018 Sennheiser HD 820 Presentation by Axel Grell


  악셀 그렐은 출시 이후에도 소리를 개선시킬 방안들이 계속 떠올랐다고 한다. 욕심이 끝이 없다. 필자가 보기에도 밀폐형 제품은 아직 개선될 부분들이 눈에 띈다. 대대적인 변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출시 이후 HD820이 해결해야할 우선 과제라면 이 제품이 전작들과 다른 전제 하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빠르게 인식시키는 작업이다. 제품명 때문인지 자꾸만 HD800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놓고 HD820을 바라보려는 마음은 비단 필자만의 오해는 아니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원래 혁신의 시작은 가격으로 드러난다. 다른 세상 헤드폰 시스템인 오르페우스를 제외하면 젠하이저 헤드폰 최초로 300만 원을 넘어섰다. 최신 기술에 대한 예우, 이에 대한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다. 




*이 글은 프리미엄헤드폰가이드 11월호에 기고한 리뷰의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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