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파이로 활용할 기기를 찾고 있다면?
그레이스디자인의 소형 DAC/AMP m900을 열흘 가량 사용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의 체험을 마치고 기기를 반납하면서, 오늘은 그 동안 m900을 사용하며 느낀 점을 간략하게 글로 남기려 합니다.
책상파이로 활용할 기기를 고려하는 분, m900 사세요.
이상으로 짧은 m900 감상평을 마칩니다.
라고 쓰면 안 되겠죠?ㅎㅎ 사실 길게 풀어쓸 것 없이 제가 만져본 m900은 책상파이에 최적화된 녀석이었습니다. 복잡하게 이것저것 매칭할 필요 없이, 이 작은 녀석 하나와 액티브 스피커면 니어파이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소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헤드파이 유저들에게도 m900의 헤드폰단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헤드폰단의 출력 임피던스가 0.08옴, 출력은 하이파워 모드 기준 6V로 뛰어난 스펙을 자랑합니다. 무엇보다도 m900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수준급입니다.
그레이스디자인은 프로 오디오 브랜드입니다. 현장에서 사용되는 기기를 제작하는 브랜드답게 최대한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 소리를 지향합니다. m900 역시 그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무색 무취의 성향은 m900과 함께 사용할 헤드폰이나 스피커의 특색을 더욱 두드러지게 들려줍니다. 저는 m900과 함께 포칼 유토피아와 울트라손 에디션15를 사용했는데 헤드폰을 바꿔 들을 때마다 두 헤드폰이 가진 소리 성향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m900의 헤드폰단이 두 개인 것도 비청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됐지요.
m900의 기능부터 몇 가지 언급해볼까요? 가장 먼저 두 가지 파워 모드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m900의 후면에는 두 개의 마이크로 USB 슬롯이 구비되어 있는데, 하나는 소스기와의 연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 전원을 연결할 때 사용하게 됩니다. 굳이 외부 전원을 연결하지 않더라도 m900은 PC에서 끌어온 전원만으로도 구동이 가능하며 이걸 로우파워 모드라 부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외부 전원을 연결한 하이파워 모드로 사용할 것을 권장합니다. 두 모드 모두 준수한 소리를 내어주지만 다이나믹스 면에서 하이파워 모드가 확실히 강점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더, 이왕이면 외부 전원도 보조 배터리를 활용하는 것이, m900과 함께 사용할 소스기 역시 USB 연결이 가능한 DAP나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스마트폰과 m900을 연결할 때에는 필수적으로 m900에 외부 전원을 연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메뉴얼에 적힌 순서대로 연결해야만 스마트폰과 정상적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우선 스마트폰과 연결하지 않은 채로 m900에 외부 전원을 연결해서 작동시킵니다. 그 이후 스마트폰과 m900을 연결해야만 m900이 스마트폰에서 전원을 공급받지 않습니다.
헤드폰을 통해서 음악을 들을 때는 m900의 크로스피드 설정을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시다시피 크로스피드는 헤드폰의 청음 환경상 좌우 채널이 극단적으로 분리되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능입니다. 크로스피드는 DSP 처리로 이루어지므로 브랜드의 기술력에 따라 크로스피드의 성능이 크게 좌우됩니다. 그런 면에서 그레이스디자인은 확실히 강점을 보였는데, 크로스피드 on/off에 의해 변하는 공간감의 차가 뚜렷하게 체감될 만큼 컸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크로스피드를 활성화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 경우만 해도 유토피아와 들을 때는 크로스피드를 끄고 듣는 쪽이, 에디션15와 들을 때는 켜고 듣는 쪽이 제 취향에 잘 맞았습니다. 이는 크로스피드 기능이 음상을 앞으로 끌어옴과 동시에 무대의 좌우 폭을 줄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유토피아가 형성하는 공간이 좌우보다 전후 표현에 강점이 있는 만큼 제가 듣기엔 크로스피드로 인해 얻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반면 에디션15와의 궁합은 굉장히 좋았는데 오픈형 + S로직의 시너지로 인한 공간감에 크로스피드가 더해져 과장을 조금 더하면 니어필드 스피커에 가까운입체감 있는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지금까지 장점만을 이야기해서 마치 m900이 단점이 없는 아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m900은 기본기가 충실한 잘 만들어진 기기임은 틀림없지만 소리의 한계 역시 뚜렷한 편입니다.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다소 좁은 듯한 공간 표현력입니다. 저의 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m900은 마스터링이 끝난 음원을 검토하기에는 최적화된 기기 같습니다. 전체적인 토널 밸런스뿐 아니라 음원이 그려내는 무대역시 한눈에 들어올 정도의 규모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탁 트인 무대가 아니라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잘 짜여진 틀 안에서 곡을 표현한다고 하면 어울릴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한계는 책상파이처럼 애초에 무대를 넓게 펼칠 공간 자체가 마련되지 않는 극도의 니어필드 환경에서는 전혀 문제될 부분이 없습니다. 다만 m900과 매칭할 헤드폰으로는 무대를 넓게 쓰는 오픈형 헤드폰이 잘 어울릴 듯합니다. 에디션15과의 궁합도 상당히 좋았고, 함께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하이파이맨 he1000 시리즈도 잘 어울릴 듯합니다.
하지만 스피커를 운용하는 공간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지면 그때에는 m900의 한계 역시 뚜렷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제가 평소 사용 중인 시스템에서 DAC와 프리 앰프를 m900으로 변환해서 들어봤습니다. 가볍지 않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적당한 토널 밸런스는 여전히 인상적이었지만 좌우 및 전후 공간으로 뻗지 못하고 중앙 부근에서만 곡 표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사실 m900의 가격과 기기의 사이즈, 그리고 애초에 기기의 사용 용도를 고려한다면 해당 부분은 기기의 단점이라 말한 것이 못 됩니다.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m900가 남긴 인상은 상당히 강렬합니다. 우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m900의 빈자리가 큽니다. 작은 사이즈로 장소의 제약 없이 두었다가 언제나 간편하게 질 좋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책상 위에 스피커를 두지 않았지만 만약 스피커도 사용했다면 아쉬움이 더 컸을 겁니다. 참고로 m900은 후면의 RCA 단자가 꼽혀 있더라도 우측(혹은 좌측? 기억이..) 헤드폰단에 헤드폰을 연결하면 RCA 출력은 자동적으로 뮤트시킨다고 합니다. 반대쪽 헤드폰단에 연결하면 RCA와 헤드폰단 모두 출력되기도 하고요. 참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은 똘똘한 녀석입니다.
요즘 새롭게 출시되는 기기들의 성능이 상당합니다. 굳이 값비싼 기기들이 아니더라도 잘만 찾는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오디오 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레이스디자인 m900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본인의 활용 용도에 맞다면 m900 한번 들어보세요. 일단 저는 추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