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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귯다르타 Apr 12. 2021

예의란 무엇인가?

  


자신과 대립되는 의견을 갖거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 또한 남들에 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불쾌한 상황을 피하지 않고 상대방과 솔직한 소통을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예의이다.


To. 예의와 무례에 관한 철학적 고민이 필요한 당신과 나에게


예의와 무례는 시대와 지역, 문화, 환경은 물론 개인마다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상반된 결론을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정작 예의란 무엇인가에 관해 제대로 정의하고 쓰는 사람은 없다.

기사 예의의 역설… '예의 지켜라' 말하는 순간, 무례한 사람 된다와 TED 강의 '예의 바름은 속임수일까?'을 통해 예의란 무엇인가에 관해 고민해 본다.



동양철학 전문가가 말하는 예의란 무엇인가?

한형조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는 예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학에서 예(禮)의 출발점은 '나'인데 요즘은 타인을 향한 요구처럼 쓴다.
예는 나의 행동과 태도에 관한 것, 자기 수련, 수신(修身)에 관한 용법이다.
타자와 공공성을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내가 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는 것이다.

즉 외적 규범이 아니라 내적 훈련인데, 요즘은 자기 수련 의미를 잃으면서 상대 탓하는 데 예의를 써먹는다.
진영 논리로 편 가르기 하면서 서로 예의를 차리라고 목소리 높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광진 성균관대 중문과 교수는 "예의의 핵심은 상대방 배려"라는 점을 주목하라고 했다.
"예의란 결국 타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 내 의무와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기동 성균관대 명예교수(동양철학과)는 "공자는 모두와 '화합'하기 위해 아는 것도 물어서 따르는 것이 예의라고 했다. 그러니 싸우려 드는 것은 애초에 예의가 아니다. '예의를 지켜라' 하고 상대에게 말하는 순간 그는 예의 없는 사람이 된다"라고 했다.



'최소한의 예의' 작가 테레사 베잔이 주장하는 예의란?

※ civility: 정중함, 공손함, 예의 바름, 예의 바른 태도,  incivility: 무례


의견 충돌, 불일치, 다툼, 대립을 뜻하는 'disagreement'의 형용사 'disagreeable'이란 단어는 '불쾌한(unpleasant)'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642년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지적했듯이 의견 충돌이라는 단순한 행위 자체가 불쾌(offensive)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홉스의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의견 충돌을 자신에 관한 모욕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예의 바름(civility)은 의견 충돌과 대립을 참아내게 한다.
종교, 정치와 혹은 다른 생활양식과 같이 같은 신념을 갖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게 한다.
다양성(diversity)을 존중한다.
다양성으로 촉매 되는 격하고, 때때로 혐오스러운 의견 충돌과 대립(hateful disagreement)도 받아들이는 관용 사회(tolerant societies)에 필수이다.


최소한의 예의 (mere civility)는 나쁜 이웃이나 지지 정당이 다른 사람과도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는 것은 마지못해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이다.
우리가 대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미덕이다.
disagreeable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대립한다는 disagree + 형용사 어미 able)이라는 단어가 불쾌함(unpleasant)을 의미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신과 다르더라도, 심지어 틀리다고 생각할 때도 피하지 않고 소통하는 것이다.


예의 바름은 존중(repect)이나 공손함(polite)과 같지 않다.
정말로 예의가 필요할 때는 존중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람들을 대할 때이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친절함(being nice)과도 같을 수 없다.
친절함이란 상대에 관한 생각이나 그들의 잘못, 잘못된 견해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예의 바르다는 것은 뒤에서 수군대거나 뒷말하는 것이 아닌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직접 말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대립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도 장래에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부정하거나 파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예의 바름은 용기(courage)라는 덕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최소한의 예의는 당신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런 상황에서 겪는 불쾌함(disagreeable)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때때로 예의를 논하는 것에 대해 헛소리라고 말하는 것이야 말로 실제 유일하게 예의 있게 행동하는 것이다.



동서양 모두 예의는 타인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에 관한 것이다.

예의는 자신에 관한 것이다.
자신과 대립되는 의견을 갖거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 또한 남들에 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겪는 불쾌한 상황을 용인하는 것이다.
그런 불쾌한 상황을 피하지 않고 상대방과 솔직한 소통을 나눌 수 있는 용기가 예의이다.


이제 타인으로 향했던 잘못 정의된 예의의 잣대를 자신에게로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다음 편에는 무례함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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