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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Jul 13. 2023

집이 말을 건다

퇴사로부터 약 2주 째

장마철의 백수는 자발적으로 고립된다.

평소 같았으면 점심 먹으러 나가기도 불편했을텐데, 생각하며 라면을 끓여 먹는 여유를 만끽한다. 알맞게 익은 라면의 사진을 근무 중인 동료에게 안부인사겸 자랑삼아 보낼까 하다가 너무 잔인한 일 같아 그만두었다.

 

퇴사한 지 13일 째. 처음으로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간 일정이 계속 생기는 바람에 '이게 큰맘먹고 쉬는 사람의 일상 맞나' 싶어 오늘은 일부러 여유를 만들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도 내게 남은 시간이 충분한 느낌이 낯설다. 직장을 다닐 때는 주말의 늦잠이나 낮잠이 그렇게 아까울 수 없었다. 이틀 중에 몇 시간을 잠에 쏟다니, 이크. 하지만 부지런히 놀 체력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푹 쉬면서 충전에 전념해야 하는데 그건 또 아쉽고. 어찌어찌하다 이틀이 지나가 버리는 슬픔의 연속. 지금에야 시간이 비로소 시간 같다.


낮에 집에 있다 보면 여러 소리가 들린다.

이웃이 모두 조용한 줄 알았더니 낮에만 활발해서 다행이구나... 배수관으로 물 내려가는 소리가 이렇게 크구나... 관리실 안내 방송은 수시로 잘못 울려 퍼지는구나 등 미처 모르고 지냈던 일상을 겪는다. 나는 평일 낮의 집이 어떤 얼굴인지 이제서야 본다.

종종 집이 말을 걸기도 한다. 내가 더러워 보이지 않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주말까지 빨래를 미룰 생각이니? 나 좀 정리해주지 않겠니? 어린 시절, 나는 심심한데 하루종일 홀로 바빴던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 집이 자꾸 말을 걸어요.


결국 밖에 있으나 안에 있으나 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나는 계속 바쁘다. 언젠가 이 생활이 익숙해지면 나가서 일하고 싶어지는 날이 올까? 지금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주제이긴하다. 아직은 생소한 이 일상이 즐겁다. 그때그때 집에게 대답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응, 지금 치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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