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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Jul 05. 2023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연습하기'

퇴사 후 첫 번째 수요일

원체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편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2~3시간 경과 후 심심함을 느끼고, 집에는 하루 이상 연속해서 머물기 어렵다. 깊이는 없지만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다. 특히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걸 좋아한다. 나서서 일을 벌리고 스스로 고통 받기를 반복하니 나도 내 자신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퇴사는 정말 큰 마음을, 먹고 먹고 또 먹어가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그렇게 마지막 출근 이후로 5일 째. 주말은 원래 놀았으니 따지자면 퇴사 3일 째. 나는 전시해설사 양성과을 듣고 있으며, 방금 전 영화 관련 활동을 하고 싶다는 지원서를 냈다. 정말 재미있고 의미 있어 보여서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 다 평일 낮 시간을 할애해야 하므로 이 또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만년 월급 노예이던 내가 퇴사하게 된 시기와 딱 맞을수가 있지!


알고 있다. 확신은 때로 자기합리화의 근거가 된다는 것을. 자꾸 한숨이 나온다. 시도하지 않으면 그건 그대로 후회가 남았겠지만, 어쨌든 소기의 목표는 점점 멀어져간다.

곱씹어보니 퇴사 전부터 세운 계획도 있다. <토지>를 읽어 보겠다는 포부, 한 MMORPG의 복귀 유저로서 최고 레벨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야심. 그때는 이 계획이 나의 휴식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리라 생각했다. 계획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다못해 무뎌진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계획러버가 그러하듯, 세워 둔 계획을 실행하지 않는 건 굉장히 찝찝하고 마음의 짐이 되는 일이다. 덕분에 내 하루는 정말 빠듯하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나머지 3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물론 원하는 일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더욱이 내게는 처음인 일이라, 진심으로 소중하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던 스스로의 약속만이 내심 걸릴 뿐이다. 지난 주까지의 나는 굉장히 지쳐 있었고, 일방적인 소모를 반복했던 상태라 휴식이 절실했다. 건강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 먹고 쉰다는 건 쉽지 않기에 수없이 마음을 다잡았던 것이다. 온전히 쉬어보자고. 지겨울 때까지 머릿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버텨 보자고. 도움이 되건 말건 내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휴식이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었다. 그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밖에 못하는 사람이 되어갈까봐 걱정이 된다. 나, 어쩌면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


다시 생각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휴식'은 어색하고 짧은 순간이니까. 가만히 있는 것을 시간 죽이는 일처럼 여기는 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당연히 시작이 어렵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 보다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괴로워하기 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연습'해보기로 한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나씩.

아, 이 또한 계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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