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파이, 죽, 다리 밑의 사슴

애이불비를 정의하는 법

by 에디터 Rii


웬 미친 인간이 엄마를 죽였단다. 안타깝다만 그 엄마는 내가 아끼는 엄마가 아니었다. 미친 인간이 사죄의 눈물을 흘리며 나를 붙잡고 뭐라 뭐라 귀 아프게 울어댔지만, 당신 역시 내가 아끼는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그 꼴을 조금 더 봐주다가 “합의 안 해요.” 하고 귓속말을 했다.

덕분에 사람들의 동정과 돈과 홀가분함을 얻었다. 곧장 집 근처 마트를 갔다. 사과 파이가 먹고 싶었지만 동네 마트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아쉬운 대로 사과와 작은 타르트를 하나씩 집었다. 이제는 상품 봉투의 바코드를 뜯어 과자 코너에 몰래 버리고 훔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이렇게 편하게 사는구나.


오늘도 미친 인간에게 감사하며 눈을 떴다. 어제 사 온 사과를 씻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군데군데 꿀이 뭉친 맛있는 사과였다. 타르트는 대충 뜯어 빌라 1층 편의점 전자레인지로 40초 정도 데웠다. 전자레인지만 사용할 순 없으니 요깃거리를 둘러봤다. 삼각김밥을 사려다가 집에 있는 김치가 생각나 죽이 먹고 싶어졌다. 엄마가 멋대로 찾아와 냉장고에 넣어놓고 간 김치를 반년 동안 손도 안 댔다.


썩어버린 거 아니야?


기껏 파이를 데워놓고 신중하게 죽을 하나 골라놓고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져 무작정 걸었다. 김치가 화가 나 폭발할 것만 같았다. 엄마가 흘린 피처럼 빨간 국물이 여기고 저기고 지랄맞게 튀어버릴까 두려웠다. 내게도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엄마가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정성껏 담근 김치를 반년 동안 손도 대지 않은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


여기까지 걸어왔네.


참 엄마를 좋아했다. 밥도 잘 주고 사랑도 주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산책하자며 첫눈이 오는 날 내 손을 꼭 잡고 나섰다. 그저 꼬리 달린 강아지처럼 엄마를 따라갔다. 점점 굵게 내리는 눈을 피해야겠다 말하며 우리는 다리 밑으로 갔다. 코끝이 따갑도록 빨개진 엄마를 올려다봤다.


지안이 따뜻한 거 마시고 싶지? 엄마가, 엄마가 얼른 가서 따뜻하고 맛있는 거 사 올게. 기다릴 수 있지? 이렇게 추운데 세상에….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같이 가면 될 텐데. 울기는 또 왜 우는지. 눈이 계속 쌓여 걸어온 길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길을 잃은 건 아닐까? 내가 잘 보이도록 슬쩍슬쩍 다리 밑에서 벗어나 돌아다녔다. 그럴 때마다 추워서인지 눈물이 고였다. 그냥 이렇게 기다리면 따뜻해질 것 같았다. 이후 어쩌다 따뜻해졌고 엄마가 날 안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엄마 손엔 따뜻한 음료는 없었고 나를 보는 눈빛이 그날의 날씨보다 냉랭했던 것이었다.


어릴 땐 빌딩만큼 컸는데.


기억 속 다리를 보고 생각했다. 내가 자랐기 때문이겠지. 파이가 식었다. 한 번 더 데우면 아주 못 먹을 식감이 될 게 뻔했다. 파이 봉지를 뜯으며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단 맛이 부족한 파이를 씹으며 멀어져 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엄마가 주머니에 양손을 폭 집어넣고 제자리에서 걸음을 뗐다 붙였다 종종거렸다. 왜인지 엄마도 어른처럼 보이진 않았다. 7살 정도 되던 나와 비슷해 보였다. 추위에 작아졌나 보다. 엄마의 형체가 영영 사라질 때까지 그곳을 응시했다.


엄마..! 엄마 언제 와..


그날 한참을 다리 밑에서 갓 태어난 사슴처럼 엄마를 불렀다. 그러다 따뜻한 엄마에게 안겼을 때 품에서 식어버린 두유 병이 만져졌다. 마시지 못한 음료가 단단했다. 죽을 손에 쥐었다. 그날 엄마는 애이불비했나 보다. 끝내 자신을 미워하게 된 나를 보며 매일 뒤돌아 눈물 훔쳤나 보다.


오늘은 혐오스러운 미친 인간의 얼굴에 인상을 쓰며 일어났다. 엄마의 눈물이 내게 전염됐다. 내가 흘린 눈물은 반년 만에 열어본 김치의 시큼한 발효 냄새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애이불비 : 속으로는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