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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상 Apr 14. 2023

(지친 그대를 위한 노래) 11. 유혹과 불혹의 퍼즐

대가(大家)의 자연스러움을 마주하다

大家)

2023년 새해가 왔다.

나이가 들어간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이렇게 과거를 묻고 선물 같은 새날을 받아도 좋을까?

나는 염치도 없이 매해 그 포장지를 뜯으며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리지 못했음을 기억했다.


새해라는 이 어여쁜 단어가 그 말뿐일까?

다가옴의 희망보다는 못다 한 아쉬움이 되어 가는 내 인생의 자리를 바라보며 이맘때를 돌아본다.

낡음 오래됨에 익숙히 물드는 것이 해가 더할수록 쉽지 않다.

그래서 연말의 시간은 더 조심스럽게 우울에 빠지지 않으려 어르고 얼러 맞이한다.


〈논어〉〈위정 편〉에서 공자는 자신의 일생을 회고했다.   ‘나는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다().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고() 50세에는 하늘 명을 알았다(). 60세에는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70세에 이르러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라는 말을 남기었다.


70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은 대가의 곁에 서서 발을 돋음 하며 내 몫의 기회가 있지 않을까 골몰한다.

어느덧 내 나이 오십이 넘어섰다. 돌아보니 15세에 나에게는 사춘기가 찾아온 듯하다.

남, 여공학의 학교에 다니면서 얼마나 많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모른다.

나의 모든 촉각은 감성에 사로잡혀 곤두서 있었다. 그때의 장면 하나하나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질풍노도의 위대한 변화, 나는 그쪽이었다. 학문의 반대쪽 그 문이 훨씬 크고 아름답게 내 눈에는 비추었다.


30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다는 것은 틀을 가졌다는 것인데 ...

내 서른 초반의 일화가 떠오른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집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이는 유쾌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날 내손에는 몇 권의 책이 있었는데 국문학 개론이 눈에 보였나 보다. 설교를 작성하고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가 국문학이었다. 그날 그렇게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그이가 말했다. 뭐야 지금 개론책을 봐서 어쩌자는 거야!!!


나의 넉살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구박을 주었다. 나는 갑자기 새롭게 시작한 공부에 대한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니 그럴 일도 아니었다. 둘 다 젊어서 지성의 키재기를 했나 보다. 새로운 영역은 현재의 한계에 갇힌 나의 시야를 확장해 준다. 어쩌면 그 이도 더 농익어 멋진 신세계를 공부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이는 그런 도전적인 사람이었다.

틀을 세우지 못하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여도 서른은 아직 아니 한참 무방하다.


40세 단언컨대 나의 삶은 가장 요동치는 유혹으로 가득했던 시기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와 경제 개념에 대한 좌우의 미혹과 흔들림.. 굳건하던 신앙과 신학적 가치가 목회 속에서 흔들리고 그리고 인생의 다음 단계를 계획하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무엇과 매일 씨름하고 싸우던 시기가 유혹의 40대였다.

그때 나는 불혹은 죽어서나 될 것이라 여기고 살았던 것 같다.


50이다. 훈장과 같은 중년의 숫자를 달았다.

어떤 이는 머리가 벗어지고 또 다른 이는 흰색의 머리칼이 멋스럽게 중후함과 지성을 흩날린다.

나는 어디쯤 와 있을까?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되는 나이에 비로소 지천명이라는 단어를 깊이 새겨본다.

 

하늘의 부름과 소명에 대한 선명한 그림이 내속에 가득하다. 몸의 상태와는 달리 삶의 목적과 그 목적을 향한 일상의 태도에 눈이 떠지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참 좋다 , 그리고 참 자유롭다.

앞서 살았던 긴 시간 동안 권태롭고 더딘 성장으로 잠 못 이루던 밤의 아픔이 사라져 가고 있다.

마치 미루어둔 축복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살면서 이런 마음의 상태 이런 날이 있구나! 하고  내심 놀랄 일들이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한 번도 완성을 이루지 못한 퍼즐이 일순간 조합되고 그리고 모양을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이런 삶을 누려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인생에게 고마움을 느끼었다.


전도서 3장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

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좀 더딘감이 있지만 인생의 임계점은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옴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다르게 생각하면 나의 지천명은 성취보다는 내려놓음에 더 가까운 듯하다. 비로소 나를 알고 한 두 가지에 만족하는 그 마음에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시는 자유로움이 찾아왔다.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가 생각이 난다.

월드컵 4강이나 피겨 금메달 같이 영화계의 성과를 이룬 감독이다. 검은 머리의 동양인은 결코 태생적으로 넘을 수 없게 설계된 그 벽을 넘어선 사람.

(나무위키 )

그가 철학을 전공한 사실이 어쩌면 이것을 대변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영화감독과 철학자의 중간쯤 가는 이미지의 얼굴이라는 것도 나만의 느낌일까!

인터뷰어는 영화 "헤어질 결심"의 색감 사용이나 인물의 설정에서 박찬욱 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감독인 자신은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나는 문득 그가 오랜 시간의 유혹과 불혹 속에서 지천명에 이르렀음을 알았다.


오늘 하루 새해를 맞으며 인생의 샅바를 굳게 다잡아 본다.

대퇴부에 힘을 주고 아직 남은 청춘을 내어주고 성장을 희망하려 힘 있게 걸어본다.

70 마음 내키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을 그 완덕을 향해 한해의 퍼즐을 놓아본다.


디모데 후서 4장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어느 위대한 사도의 길을 새해라는 미명아래 나도 그려본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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