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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상 Jul 19. 2023

(지친 그대를 위한 노래) 12. 한 번쯤 사치와 낭비

(입학준비)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중략)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뚝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 시인 조 병 화 -


봄은 어여쁘고도 어여쁜 꽃으로 단장하고 해마다 찾아온다.

그 부지런함이 좋아서

그 새로움이 좋아서

나는 봄이 오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고 성가신 듯 박대하다. 끝내 천천히 봄 품에 안기었다.


늙어감 그 속에는 익어감이 깃들어서 젊은 날엔 상상조차 어려운 결실이 맺히지만,

생명의 식어감을 데울 길 없어 저 흔들리는 희망을, 어림을, 사랑과 신비로 바라본다.


그 충만한 기운은 3월에 절정을 이루며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싹들을 초등학교 교정에서 바라본다.

50이 넘어 맞이한 딸아이 입학식 운동장.......

봄으로 아찔하고 봄으로 취해오는 이 현기증이 웬 말인지?
강당에 가득한 내 것도 아닌 어린 생명들이 왜 이토록 소중한지!!

문득 찡하니 눈물이 울컥했다.


양반집 솟을대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열리듯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입학식이 치러졌다.

동화 속 키다리 아저씨와 봄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난다.

정원에는 커다란 나무가 한그루 있다. 

꽃이 만발하고 새들이 날아오는 그곳에 아이들도 항상 찾아와 뛰어놀았다. 

아저씨는 그 소리가 시끄러워 담을 높이 쌓고 문을 잠궜다.

이내 조용한 정원,  키다리 아저씨는 참 좋았다.

그런데 나무에 잎이 없어지고 꽃이 피지 않고 새들도 날아들지 않았다. 겨울만 계속되었다.

아저씨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점점 외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는 높이 쌓은 담장을 허물었다. 

그 무너진 담장 사이로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놀고 있었다. 

아저씨는 한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고 "이 정원에서 마음껏 뛰어놀아라"하고 웃자 

정원은 다시금 꽃과 새들로 가득한 봄의 정원이 되었다.


3월의 교정은 세상의 봄으로 충만했다.

봄보다 새롭고, 그리고 봄보다 부지런히 달려온 초등입학은 한 편의 교향곡처럼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아이의 생애를 응원하며 살찐 소를 아끼지 않고 잡아 잔치를 벌이던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

나에게도 사랑은 숨길 수 없는 재채기와 같았다. 

이 하루를 기억에 남기고 그리고 전 생애가 밝아질 수 있다면

기꺼이 나는 한 번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사치스러움으로 이날을 장식하고자 한다.

조금 더 유난스러웁자

넘치는 마음을 굳이 억제하지 말자

"아이 금방 큰다!! 내년이면 다 못 입어!! 메이커 소용없다!!

 " 통장을 만들어서 주식을 사 주던가 , 아니면 금을 샀다가 나중에 줘 "

아무도 이해 못 할 그런 행동으로 하루를 채우자!!

내 집에서 영국 왕실의 대관식 보다 화려한 입학식을 맞이하자!!!

가족과 친지들이 마음을 담아 모아준 소중한 선물들이 속속 도착했다.


살다가 살다가 힘이 들 때... 그때마다 꺼내어 힘을 얻는 그런 보따리가 되게 하자

보고도 또 보고픈.. 사랑하고 사랑하는 그 마음을 오늘 하루 굳이 숨기지 말아 보자

번쩍 들어 올려 "이 세상에서 마음껏 뛰어놀아라"라고 소리치면 

수아의 인생은 꽃이 피고 새들이 깃드는 봄이 오지 않을까!!

수아야! 수아야! 내 삶에 봄을 가져다준 우리 딸 수아야!!


누가복음 15 장 21-23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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