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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상 Oct 12. 2022

(지친 그대를 위한 노래) 9. 이방인의 봄

(권씨 집안의 며느리.)

노들강변 / 신불출 작사, 문호월 작곡 1934년


1.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어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을 이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이 노래가 참 좋습니다. 그래서 자주 들었습니다. 요즘에 와서야 알게 되었지만 나라를 잃은 식민시절 백성이 슬픔을 달래던 노래라고 합니다. 또 이 노래는 시집살이 아린 마음을 삭히며 부르던 엄마와 큰엄마의 노래 이기도 합니다. 내가 아주 어리던 시절 큰엄마는 놋 양푼이를 장구 삶아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동네잔치에 흥을 돋우는 놀이꾼이었습니다. 그 두드리는 솜씨가 기가 막혀서 나는 넋이 나간 듯이 유심히 쳐다보고 흉내를 내어보았습니다. 놋 장구는 노랫가락처럼 구성지고 양손은 쉴 새 없이 앞뒤로 엎어치고 메치며 현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러면 놀이 군정들은 흥에 취해 날이 저무는 것도 잊은 채 긴 노동에서 해방되는 하루를 보내곤 하였습니다.

(저 놋 양푼이를 무릎에 얹고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셨다)


1970년 초반 새마을 운동의 여파로 시골은 정말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습니다. 엄마의 세월은 봄보다 더 부지런한 달음질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떠난 텅 빈 동네에 사람들로 북적이던 한 때, 저는 그때를 기억합니다. 일에 지친 사람들이 모이면 동네잔치가 벌어지고 그 잔치의 끝은 항상 춤과 노래로 어우러졌습니다.


취기와 흥으로 가득 찬 얼굴로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 다가...." 그런 후 " 목청을 높여 통곡하듯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어 볼까??? 하고 부르면 어린 나는 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 노랫 가락과 춤사위에 묻혀서 큰엄마는 그렇게 웬 종일 놋 장구를 두드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림 같은 장면입니다.


동갑내기 우리 엄마와 큰엄마. 칠순이 넘어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날 그때까지 새댁 하고 부르며 슬픈 눈물을 흘리던 둘도 없는 아군 큰엄마. 그렇게 아버지와 큰아버지 네 분의 고모들과 함께 사신 두 분의 삶을 생각하면 왜 서로에게 그토록 숨통이 되어 주셨는지 알듯합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로 기억이 됩니다. 엄마가 고추 꼭지를 따는 마당에 큰엄마가 찾아오셨습니다. 담하나를 사이에 두고 매일 보는 얼굴이라도 두 분은 늘 인사를 하셨습니다.


새댁이 있는가?

예 형님 오시니껴!

머하는고? 꼬치 꼭지 따는가?

이렇게 앉으시면 함께 일손을 보태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느 날은 감자를 깎으면서 고구마 줄기를 따면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서로의 집을 오가며 그렇게 사셨습니다. 커피 한잔이 없던 시절 그 소일을 핑계 삼아 나누는 담소는 제일 좋은 힐링이 아녔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삶에 지친 서로를 돌보는 시간

그때 나누시던 이야기가 제 평생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그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큰엄마는 술을 즐기는 남편 이야기를 고모에게 했나 봅니다.


"형님 그 얘기를 머할라꼬 했니껴"

"어야다 말이 나왔지! 내가 할라꼬 했나!"

"동네가 전부 그 집 푸네 긴데" 니가 애먹는다! 할라꼬요?

"그래도, 암만 동상이라도 그른 거를 옳타하면 되는가?"

"거다 말하면 전부 우리 흉이래요, 돌아서면 저그 식군데....형님도 참.."

"새댁이 말이 옳애.. 참 권씨들이 버글 버글 해" 마커다 한 팬 이래 우리 팬이 누가 있나!"


그때 어린 제가 당돌하게 이야기에 끼어들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나도 권 씬데 나는 고모 편 아니야 엄마하고 큰엄마 편이야"

그 말이 무슨 보탬이 되었을까요! 그때 처음으로 엄마와 큰엄마가 권 씨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길고 긴 시간이 흐르고 우리 모두는 장성하고 엄마와 큰엄마는 일생을 같은 자리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살고 그리고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자랐습니다.   

두 분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고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보는 것 만으로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 마음이 아립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곁에서 그 긴 세월을 함께 지나왔음입니다. 낯선 이방 땅에서 새로운 어머니를 따라 죽고 살던 그 시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룻기1:16-17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박수근 빨래터-한시도 쉴 틈 없던 시집살이)

형님형님 사촌형님 시집살이 어쩝디까?

동생동생 말도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고초당초 맵다한들 시집살이 더매우랴


낮에는 밭에 나가 밭을 매고, 밤에는 길쌈하고, 누에를 먹이던 두 분의 삶을 추억합니다. 가끔 저녁 사랑방 모임에서 바느질하시며 꾸벅꾸벅 조시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땐 그분들이 그토록 젊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소여물을 끓이고, 얼음물에 빨래를 하고 지게를 지던 그 억척같은 마음은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고스란히 적혀 있습니다.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그 길고 긴 이방의 시집살이 ...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여름 들판을 종종이던 그 덕택에 오늘 우리는 유정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마태복음 1:1 - 6

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5.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그렇게 바글대던 권 씨 종네기들...그 틈바구니서 아린 시집살이 60년에 권 씨란 권 씨는 하나같이 그 아래 대롱대롱 매달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는 권 씨가 아니란 이유로 무정한, 그런 세월은 없습니다. 권 씨가 주는 설움도 더는 없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권 씨 남편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큰엄마는 권 씨 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한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살고 계십니다. 


권 씨 도련님인 우리 아버지를 만나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십니다.

"아지뱁요 , 우리 둘이 아프지 말고 오래 사시 데이"

"모도다 가고", "인제는 우리 둘 뿌이 시더"

"아지메도 잘 잡사요! 뭐든지 먹어야 기운이 들어요!!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 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메어나 보세"

큰엄마는 아직도 흥이 남아 손뼉을 치면서 그 시절의 노래를 참 구성지게도 부르셨습니다.  

길고 길었던 이방의 언 땅은 그렇게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지천에 피어납니다.  


창세기 2: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룻기2:10-12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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