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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사세요?

(말씀과 적용 5.)

by 향상

마태복음 9장 : 35-36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의 공적인 생애는 골방의 삶이기보다는 두루 다니시며 실천하는 삶이었다.

구체적으로 아래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복음을 전파하고

2. 가르치시며

3.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그분의 이러한 실천은 일상이라는 골방의 삶을 토대로 만들어진 내공으로 가능했다.

그리고 그 내공의 크기와는 별개로 허다한 희생을 치르셨다.


내 인생은 늘 그분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러기에 그분의 실천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

복음 앞에 무릎을 꿇고 그리고 그 가르침에 감격하며 몸과 마음의 새로워 짐을 경험하고 살았다.

그것을 나는 구원이라 부른다.


무엇보다 그분에게 그 일은 직업적 소명을 넘어 불쌍히 여기심이었다.

마음의 동요

흔들림

타인의 삶에서 기진하고 고생하는 것을 스쳐 지나가지 못하는 연민이 가득했다.

그것이 사람을 향한 십자가 정신이 아니었을까?


내가 왜 이렇게 살아갈까?

그런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직 어두운 새벽에 온 동네에 울리는 경운기소리

"이랴 이랴" 하는 소몰이 풍경

그을린 얼굴에서 풍기는 땀 내음.

나는 그 일의 목격자로서 예수님을 흉내 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마 19:21)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자를 치료하며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라(눅7:34)


이런 말씀 앞에 얼어붙었다. 아니 꽁꽁 메여서 멈추었다.

뽕나무에 오르는 삭개오, 향유를 부은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부여잡고 그 앞을 모른 척 지날 수 없었다.


노인석 앞에서

임신석 앞에서

장애인석 앞에서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을까?

나의 삶은 오늘도 그런 상황에서 멈추고 나도 모르게 구독과 좋아요를 누른다.

알람이 설정되어 그들의 삶을 듣고 함께 한다. 이것이 나의 부르심(calling)이며 소명(召命)이다.

왜 그렇게 사는지 물음의 짧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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