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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상 May 10. 2022

(지친 그대를 위한 노래)
 2.일 과 휴식

  - 코로나 거리두기 해제를 앞두고 -

2022년 4월 19일    

코로나 거리두기 완화가 시작된다.

갑자기 팽팽한 긴장감이 생기고 이제 다시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본능처럼 찾아왔다.  다시 자유로움이 허락된다면 , 그토록 기다리던 그런 일상의 자유가 시작된다면 , 나는 여행을 즐기리라. 그리고 오랜 시간 그리움을 억누르며 참았던 소소한 만남에서 시작하여 어른들을 찾아뵙고 마음의 도리를 다하는 삶을 즐겨보리라.


정말 오래 묵은 이삿짐처럼 이전으로의 회귀는 "툭툭" 먼지를 일으켜 "콜록콜록" 기침을 뿜으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일이 많아지겠지! 먼 곳의 부고가 와도 이제는 달려가 인사를 해야겠지! 마음을 전한다는 좋은 의도가 어느 순간 회피의 수단이 되면서 참! 편하다.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고마워하던 나의 속마음을 더는 숨길수 없겠지! 그래서 나는 희소식 속에서 한 편의 숨 막힘을 느끼며 새로운 노동의 패턴 그리고 새로운 휴식의 패턴을 맞이하고자 엉덩이를 털어낸다.




창세기 2장은  노동과 쉼의 균형을 이야기한다.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일을 하셨다니 그 자체로 놀랍지만 그렇기에 피조물인 우리들이 일을 하는 것은 참 당연한 것이다. 나는 늘 그렇게 노동에 대해서 이해하며 살아왔다. 주경야독하던 시절 극도로 피곤한 몸을 끌고 노동의 고통에 눌리면서도 일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 되려 일이 있어서 그 긴 세월 동안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던 그 보잘것없는 학력의 간판을 어렵사리 얻어낼 수 있었다.  


또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는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빴고 덩달아 우리의 유년은 아버지에게 소나 쟁기보다 유용한 노동력이었다. 어느 휴일에 늦잠이라도 잘라치면 (해가 뜨면 일어나는 것이 원칙) 새벽부터 원망과 불평이 쏟아지고 엄마의 교육을 문제 삼으셨다. 그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치를 떨던 그 말들은 지금 내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해가 중천에 떴다 눈 가진 것들은 다 일어나 굼빈다" "일어 나라"

" 이렇게 게을러서 굶어 죽지 살아가겠나!"

" 일 안 하면 누가 밥 먹여주나? 지 밥벌이 지가 해야지"

" 어마이가 애들 질 더럽게 들여서 늦잠을 가르쳤다" 등등 수도 없는 명언을 쏟으셨다.

아버지는 쉼을 부끄럽게 여기셨고, 그리고 게으름으로 치부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회 초연생으로 살며 버스를 타고 지나다 "육일 기업"이라는 간판을 보면서 하루를 쉰다는 특별한 의미 앞에 마음이 기울었다. 그리고 신원 "에벤에셀"이라는 기업이 내건 슬로건 "주일은 쉽니다". 이 말이 가지는 노동과 쉼의 발란스는 나에게 직업적 로망이 되었다. 노동의 긴 시간 그리고 휴식의 짧은 시간 그 쓴맛과 단맛의 기억이 조화를 이룰 때 그 현장에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또 창세기 5장에서 말하는 노동의 새로운 관점 안위함.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세상에는 정말이지 공짜가 없다. 모든 좋은 것은 수고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우연이라고 말하는 그것도 언제인가 누군가를 통해 뿌려진 결실임을 보게 된다. 행운도 그럴 것 같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운을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를 감추는 겸양까지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노아라는 아들을 낳고 땅에서 땀 흘리고 수고하는 인생들이 안위를 얻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노동을 통해 우리가 받는 보상은 돈이나 명예라는 통속적인 가치 일 수 있겠지만 내 울타리 안의 가족들이 건강한 식탁을 대하고 그리고 편안한 잠자리를 갖는 다면 그것이 안위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중학교 1학년쯤 처음으로 남의 밭에 가서 하루 종일 고추를 딴 일을 기억한다. 하루 품삯  4,000원을 받아 들고 꼭 쥔 손에 땀이 고여 젖은 돈을 엄마에게 전해 줄 때 나는 세상의 절반을 가진 듯 기쁨을 누려 보았다. 해는 길었고 노동은 힘이 들었다. 그렇지만 돈을 받아서 좋았다. 아니 그 돈을 엄마에게 줄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는 내 얼굴을 보시며 "다시는 남의 일 가지 마라 우리 일도 많은데".. 하시며 측은해하셨다. 나는 그 눈빛이 참 좋았다. 엄마와 내가 동시에 안위를 받은 그 시간. 노동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깊은 안위, 치유를 품고 있었다.






창세기 3장 우리 노동의 현장은 문제로 가득하다. 그러나 땀을 흘리면 해결된다는 믿음을 가진다.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이삭 줍는 사람들(The Gleansers) 1857 [파리 오르세미술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동 현장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치열하다. 그리고 외롭다. 소통도 일도 몸을 축내고 퇴근하는 기차와 버스안은 하루종일 노동에 취해 졸고 있는 상기된 얼굴로 흔들렸다. 가시와 엉겅퀴에 글 키고 슬려 상처가 많은 곳 우리는 늘 거기에 서 있다. 그때마다 그만두고 옮겨보고 다른 스펙으로 갈아타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본다. 그에 반해 성경의 해답은 너무 심플해서 오히려 반감이 들고 피하고 싶어 진다. 그러나 결국 그 해답에 이르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날이 온다.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 가시와 엉겅퀴는 이마에 땀을 흘리면 해결이 된다. 하나님도 그리고 사람들도 그렇게 땀 흘리는 사람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노동의 현장은 늘 절박함과 견딤의 미학을 찾아낸다. 이제 다시 낯선 시대가 온다. 진지하게 노동과 대면하고 휴식을 대하며 땀을 흘려 보자! 마음을 다잡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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