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상 May 18. 2022

(지친 그대를 위한 노래)
3. 무너지는 몸을 대하며

 (고통과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운다)

고린도전서 5장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 하노라


(엄마의 마지막 사진. 7살 아이들처럼 작아져 버렸다)

우리 엄마는 참 약하게 태어나셨다.

40대에 흰머리를 가득 얹고 살았으니 육체의 전반이 다 그렇게 부실했다. 못 먹어서 못 크고 못 먹어서 약했다. 모두가 그랬던 어린 시절 동네에는 의례히 한분씩 기술자들이 계셨다. 일명 이 쟁이 그분들은 야매로 틀니를 만들어 끼웠다. 


그러던 어느 늦가을은 엄마가 너무나 애처로워 보여 내 기억에 참 생생히 남아 있다. 입을 스카프로 가리고 며칠에 한 번씩 읍내를 다녀오시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셨는지! 그 일그러진 얼굴은 통증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뭉텅뭉텅 치아를 뽑고 돌아오는 날이면 엄마는 변변한 진통제도 없이 생으로 견디고 버티셨다. 나는 그런 엄마의 통증 아픔 어쩔 줄 몰라하는 그 속도 모른 채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다니며 보채었던 기억이 난다. 충치와 더불어 성한 치아를 제대로 된 마취도 없이 뽑아내며 틀니를 만들어 가시던 엄마ㆍ그날의 영상은 나에게 지금도 (스티그마) 흔적으로 남아 여전히 아프고 아프게 재생되고 있다. 가을 고추를 한 포대씩 가져다주면서 그해의 그 긴 겨울은 엄마 생애 가장 힘든  시간이 되었고 내게는 각인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걱정스럽던 엄마는 기어이 틀니를 끼우셨다. 하얀 이 그 가지런한 치아가 얼마나 낯설고 어색하던지 이렇게 말했던 기억도 난다. "엄마! 엄마가 아닌 것 같아" "엄마! 틀니 없는 게 더 좋아" 하고 엄마의 속을 태웠다. 그 많은 고추를 값으로 지불하고 생으로 참고 견디며 그 긴 시간 동안 만든 틀니, 엄마는 그 틀니에 적응하는 것이 힘에 겨워 후회가 많으셨다. 


봄이 찾아오고 고향 마을은 분주하기 짝이 없고 부지런히 봄을 일구기엔 하루 해가 모자랐다. 그런 계절에 틀니를 교정하러 다시금 읍내를 찾아가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는 밤마다 칼을 갈아서 틀니의 거치는 부분을 깎아내면서 빼었다 끼우고 빼었다 끼우고 그렇게 매일 적응 훈련을 하시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의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을 통째로 생각나게 하는 웃픈 일화가 있었고 그것은 이외수의 글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 토막 유머어를 대하며 박장대소 웃다가 불현듯 슬픔이 밀려와 울었다. "할머니가 양치질을 하기 위해 틀니를 빼서 세면대에 놓았다. 이를 본 삼식이가 놀라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눈알도 꺼내봐 "

(이외수 "절대강자" 중에서)




(95세 삶의 마지막에도 꽃 같고 소녀 같아)

얼마 전 장례식을 치르며 유가족들과 함께 입관예배를 드렸다.  그날 고인을 추억하며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코로나 병상은 응급실 면회가 한 사람으로 제한되었다. 급하게 달려온 가족들은 순서를 기다리며 모친의 얼굴을 뵈오려 조바심으로 기다렸다. 한 사람씩 순서를 따라 들어가서 5분에서 10분 정도 면회를 하고 다음 사람을 위해서 돌아 나와야 했다.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자녀들은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를 훌쩍이며 작고 시들어 버린 모친의 병상을 깊이 슬퍼했다.


나도 또 그렇게 순서를 따라 식어 가는 손을 잡아 드리고 마지막 얼굴을 뵙고자 그렇게 들어갔다.

그때  마침 간호사가 지나치며 물었다

 

"환자분과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예 딸입니다." 나는 얼결에 그렇게 답했다.

어쩌면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렇게 딸처럼 대해 주시고 딸에게 주는 반지도 선물해 주신 분이셨다.

"그럼 촬영을 해야 하니 틀니를 빼주세요..."

"그리고 틀니를 빼면 봉투에 담아서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틀니.

틀니.

이걸 어쩌나 어떻게 빼야 하나 근심하면서 걱정이 되었다.

"어무이 틀니를 빼야 합니다 "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입을 조금 벌린 후 손을 입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잇몸과 틀니의 경계선을 찾아서 힘을 주어 빼보려 했지만 웬일인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다시 손가락을 구부려 돌리며 틀니를 빼려고 용을 써보았다. 신체의 일부를 허락도 없이 강제로 철거하는 듯 마음이 좀 채로 편치 않아서 손에 땀이 맺혀왔다. 그렇게 한참을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나를 안 스러이 여기시며 온 얼굴의 표정을 담아 말씀해 주시었다. "괜찮아!  빼"


그렇게 입을 벌리시는 그 귀에 대고 나는 다시 한번 속삭였다. 

"어무이 미안합니다".

"어무이 미안합니다". 하고 힘을 주어 당겨서 틀니를 뽑았다. 

그리고 그 틀니를 들고 금세 눈에서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왔다.

그분의 온 삶이 무너지는 그 한순간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치아가 없이 웃으시는 어르신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모르겠다. 내가 본 모든 노인의 웃음은 곧 울음과 같았다. 함박으로 웃어도 함박으로 우는 것이다. 그렇게 웃어도 슬프게 보이는 것이다.


(남편의 곁에서 영원히 잠이 들다)

그 무너짐은 더 이상 그분의 모습이 아닌 폐허와 같았다.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디다 견디다 무너진 흙집. 그렇게 슬프고 허무한 순간을 감당하려 눈물을 쏟고 있을 때, 희미한 그의 의식은 입을 다물면서 해 같이 웃어 보였다. 울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괜찮다고 이제는 억지로 버티지 않고 무너진 채로 쉬고 쉽다고 웃으시는 그 웃음이 한없이 더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날의 짧은 이야기를 듣는 유가족들도 마음이 무너져 그렇게 같은 심정으로 눈물을 훔치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나은 곳으로 이사를 가시는 95세 그 눈부신 삶을 놓아드렸다. 그렇게 힘겨운 숨을 조금씩 조금씩 내 쉬며 더는 아픔이 없는 그 아름 다운 곳으로 자리를 옮기 셨다.



작가의 이전글 (지친 그대를 위한 노래)   2.일 과 휴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