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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회개 - 이것이 살길이다!!

(제1부. 복음과 영혼의 변화)

by 향상

회개는 과거를 후회하는 감정이 아니라, 무너져 내린 자기 자신과의 단절이다.

진정한 변화는 ‘내가 옳다’는 믿음을 내려놓을 때 시작된다.
하나님은 회개를 통해 인간을 수정하지 않고, 새롭게 창조하신다.


"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1:10)




살다 보면, 믿음의 불길이 꺼져 버린 듯 느껴질 때가 있다.

겉으로는 여전히 신앙인의 자리를 지키지만, 마음 한구석엔 켜켜이 먼지가 쌓여간다.

그때 하나님은 다윗의 무너진 심령 속에서 '회개'라는 내면의 혁명을 일으키셨다.


히브리어로 '회개'는 슈브(שׁוּב, shuv)' , '돌아서다'라는 뜻이다.

단순히 눈물을 흘리는 감정의 반응이 아니라, 온 삶을 비틀어 올리는 완전한 결단이다.

'길을 바꾸는 일'이다. 이전과는 다른 길 위에 서는 것이다.


다윗은 죄의 현실을 직면했다.

밧세바를 범하던 하룻밤의 즐거움과 예기치 못한 임신이 삶을 발목 잡았다.

덮어야만 살기에 그 하나를 위한 힘을 가진 자로서 2차 가해를 선택했다.

의리 넘치는 저 충성스러운 우리아를(밧세바의 남편) 전사로 가장한 그날 드디어 안도의 숨을 뱉었을 것이다. 그날밤 다윗의 잠자리는 평화로왔을까?

그 숨은 숨통을 틔웠을까?

다음 숨통을 조여 왔을까?


다윗이 드린 통곡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침상을 띄을 만큼의 눈물을 쏟아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숨이 트이고 숨을 쉴 수 있었다


" 하나님, 내 속에 "바라(בָּרָא, bara)"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그는 '고쳐 달라'가 아니라, " 다시 만들어 달라"라고 고백했다.

이새의 막내아들을 왕이 되게 만드신 하나님 이시다.

그날의 감사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인간을 인간 되게 만드는 부끄러움과 염치는 자신의 범죄에 흔적 없이 사라졌다.

수정하고 수선을 거치면 복원은 가능한 것일까?

불가능!!

다윗은 없음에서 있음으로 자신의 삶을 만드셨던 창조주 하나님이 절실했다.




정한 마음의 의미

'정한 마음' (레브 타 호르, לֵב טָהוֹר) 이란 단순히 깨끗한 마음이다.

좀 더 설명을 더한다면 "혼탁함이 없는 투명한 중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 심령의 투명도'를 보신다.


이 탁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마음의 투명성을 유지하고 살아가는가?

회개의 목적은 죄책감을 덜어내는 무거움 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다.

하나님이 다시 우리의 중심에 거하실 수 있도록 '깨끗한 그릇'을 그분께 내미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자!! 이제 시작이다.



회개는 관계의 회복이다

다윗은 "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시 51:11)라고 부르짖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벌이 아니라 '임재의 상실'이었다.

죄는 관계를 끊고, 회개는 관계를 다시 잇는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 다시 ' 하나님의 눈길'그분의 시선 안으로 들어간다.

헬라어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는 "생각의 전환" , 관점의 변혁"을 뜻한다.


오늘 우리들도 다윗과 같이 죄와 세상에 꽁꽁 묶여 있다.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흔들린다.

잠 못 들고 불안한 우리의 삶의 걸음을 이제 잠시 멈추어야 한다.

마치 다윗에게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서 강렬한 비유로 그 인생을 멈춰 세운 것처럼.

말씀 앞에서야 비로소 관점과 생각의 변혁이 일어난다.


그러니 균형은 외부 환경의 안정에서 오지 않는다.

내면의 혁명, 곧 회개에서 시작된다.

장대위에서 곤드랍게 비틀대며 걸어가던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 서야 한다.

그때!

삶의 중심이 다시 정렬되고 새롭고도 깨끗한 그 첫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존 뉴턴 — 노예상인에서 찬송시인으로

18세기 영국의 한 젊은 선장, 존 뉴턴(John Newton) 은 노예무역선의 선장이었다.

그의 배에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실려 있었고,

그는 그들을 상품처럼 거래하며 세속적 쾌락 속에 살았다.

어느 날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폭풍이 배를 덮쳤다.

죽음이 눈앞에 닥친 순간,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들었던 복음의 노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그 자리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울며 외쳤다.


"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더 이상 인생의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의 보호 아래 살고자 구한 것이다.

존 뉴턴의 회개는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꾼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였다.




라브리 공동체의 프란시스 A. 쉐퍼(Francis A. Schaeffer)의

'죽어가는 도시(Death in the City, 1969)'는 말한다.

"복음이 떠난 도시와 / 문명에는 영적 황폐가 찾아온다"


'주님이 긴 옷자락을 끌고 도시를 빠져나가고 계신다.

동시에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에 들어왔다'.

진심으로 등에 식은땀이 흐를 만큼 생생한 회화적 표현이다.

정말 우리의 시대가 죽어가는 중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어본다.




묵상

회개는 슬픔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증거다.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혼을 구하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온 힘을 다해 세상을 잡으려는 그 마음으로

살려 주시는 그분께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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