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복음과 영혼의 변화 )
회개가 하나님을 향한 방향의 전환이라면,
성령의 내주는 그 방향 속에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이다.
옳은 방향을 향해 나아갈 강력한 엔진이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돌이키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자신의 숨, 루아흐(רוּחַ, ruach) — 생명의 바람을 불어넣으셨다.
히브리어 ' 루아흐'는 "바람(wind)", "숨(breath)", "영(spirit)"으로 번역된다.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로마서 8:11)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그 사람이 생령(נֶפֶשׁ חַיָּה, 네페쉬 하야)이 되었다"라고 기록한다.
이때 불어넣어 진 ' 숨 '이 바로 하나님의 영, 즉 ' 루아흐 엘로힘'이다.
성령의 내주는 물리적인 것에 생명의 숨결이, 그 숨결이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것은 죽은 것을 다시 살리시는 부활과 새로운 창조의 사건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먼저 그 숨의 회복을 간절하고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이다.
틀어진 숨으로 인해 한없는 절망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인생의 언덕에 걸터앉아서 긴 시간 쉼을 가졌다.
그 속에서 느낀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사람의 숨의 가쁨에서 헤어날 유일한 해답은 하나님의 숨이다.
창세기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רוּחַ)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깊이 정지된 어둠 속에 빛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에스겔 37장 (마른 뼈의 환상)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 뼈가 살아나리라."
마른 뼈가 되어 뒤엉켜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삶의 모습이다.
죽어가는 우리 자신이 아니 죽은 것 같은 우리 시대의 누운 몸과 꺼진 숨을 누가 다시금 세울 것인가?
생기의 바람이 우리 삶에 등장해야 그래야 스토리의 전환, 삶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내주(內住, indwelling)의 신비
바울은 고린도전서 6:19에서 말한다.
" 너희 몸은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성령은 우리 안에 임시로 머무는 손님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거처로 삼으시는 분이시다.
헬라어로 '거하다'는 카토이케오(κατοικέω), "완전히 자리 잡다"라는 뜻이다.
이는 일시적 방문이 아니다.
삶의 구조 전체를 바꾸고자 의지를 드러내는 '거주의 사건'이다.
성령은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깊은 영역에서 또한 일하신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기도하며 기다렸던 성령의 일하심이다.
강력한 그 무엇이 우리 속에서 우리를 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밀어 가는 영적인 힘이다.
그것이 내주 하시는 성령님의 역할인 것이다.
20대 내가 처음 성령을 경험한 사건은 이루 말하기 어려운 새로운 생명의 내주 하심이었다.
끝이 없이 이어지던 기도의 시간과,
한없이 기다려지던 예배의 시간.
어디든 달려가서 믿음의 현장에 머물고자 했던 그 간절함.
그리고 길고 긴 신학의 길에 접어들었던 그 찬란했던 시간이 지금도 눈앞에 선명하다.
그 희열과 기쁨의 날이 다시 찾아와 두번째 숨의 기회를 맞이하기를 절실히 기다린다.
성령의 불이 켄터키를 덮다 — 2023 아스 버리 부흥 이야기
2023년 2월 8일, 수요일 오전 10시 미국 켄터키주 윌모어에 위치한 아스 버리 대학교(Asbury University)의 정기 채플(학생 의무 예배)이 열렸다.
잭슨 홀(Jackson Hall) 목사가 로마서 12장 9절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란 본문으로 설교했다.
예배 후, 대부분의 학생이 자리를 떠났지만 몇몇 학생이 자리에 남아 조용히 기도를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의 신앙이 너무 차갑고 형식적입니다. 다시 살게 하소서."라고 울며 간구했다.
처음에는 몇 명뿐이던 기도가 점점 번져 그날 밤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졌다.
다음 날 아침, 학생들과 교수들이 다시 예배당으로 모였다.
그곳에는 눈물과 찬양, 자복의 기도가 멈추지 않았다.
평범했던 캠퍼스가 순식간에 성령의 강력한 임재로 뒤덮였다.
언론과 SNS를 통해 이 소식은 세계로 퍼져갔다. 전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젊은이들이 켄터키로 몰려왔다.
결국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24시간 중단 없는 예배로 "(Non-stop worship)" 발전하고 있었다.
외부인을 포함해서 약 5만 명 이상이 캠퍼스를 찾아왔다.
가득한 예배당, 끊이지 않는 회개와 기도와 찬양의 흐름이 이어졌다. 16일간 384시간이었다.
놀랍게도 학교 측이 혼잡과 학사 일정을 이유로 2월 23일 공식적으로 문을 닫으므로 끝이 났다.
부흥은 불길이었다. 학생들과 방문자들은 다른 지역 교회와 대학으로 옮겨 부흥의 기도회를 이어갔다.
성령의 내주(κατοικέω)는 이렇게 강렬하게 이성의 범위를 넘어선 현상이다.
그분의 임재는 우리를 깨어지게 하시지만 새로운 숨으로 다시 서게 하신다.
이 일은 1960년대 이후 미국 복음주의 역사상 가장 뜨거운 성령의 운동으로 기록되었다.
출처 :Christianity Today, "The Asbury Outpouring: 16 Days of Unbroken Worship", 2023년 3월호
묵상
성령의 내주는 불꽃처럼 조용히 , 그러나 강하게 우리 안에 임한다.
그분이 오시면 말이 바뀌고, 시선이 바뀌고, 삶의 중심이 아니 인생의 판이 바뀐다.
성령의 내주는 하나님이 나를 향해 걸어오시면 그와 더불어 걸어가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