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4장 거룩한 상상력!복음이 만드는 새로운 이야기

(복음과 문화의 변화)

by 향상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노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 이사야 65:17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 요한계시록 21:1



상상력은 미래를 그리는 힘이다.

사람은 이야기 없이 살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미래의 이야기를 향해 현재를 산다.

그래서 문화의 깊은 속내에는 언제나 상상력이 있다.

정치도, 경제도, 예술도, 윤리도 결국은 "이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하나의 이야기 위에 세워진다.

상상력이 무너지면, 미래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오늘을 버티지 못한다.

어쩌면 오늘의 문화가 피로감으로 가득한 이유가 있다면

정보나 기술의 부재보다 살아갈 만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부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벨 이후의 상상력 — 인간이 구원이 된 세계

바벨 이후의 문화가 반복해서 만들어 온 이야기는 단순하다.

-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

- 기술이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는 이야기

- 진보가 결국 선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이야기


이 상상력의 끝은 언제나 같았다.

인간이 주인이 된 이야기는 언제나 인간 스스로를 감당해 내지 못하였다.

또한 현대 문화는 화려한 서사를 만들어 내지만 끝까지 가는 이야기를 만들지 못한다.


성경은 처음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성경은 단지 규범의 책이 아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다.

창세기는 말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말한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이 두 문장 사이에 인류의 모든 역사와 문화가 들어 있다.

즉, 성경은 상실로 시작해서 회복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타락한 아담과 하와의 고통스럽고 당황스러운 현실 앞에 구원에 대한 미래가 제시된 참 독특한 이야기다.


요한계시록 21장 — 종말이 아닌 새로움의 완성.

요한계시록 21장은 많은 이들에게 두려운 장면으로 오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장은 파괴의 비전이 아니라 회복의 상상력이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계 21:3)


여기서 "함께 거하다"는 말은
헬라어 σκηνόω(스케노오) — 장막을 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떠나지 않으신다.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문화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미래는 사람이 함께 거하고 있고, 영혼의 탈출이 아닌 새로운 세계 속에서의 동거인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 — 도피가 아닌 정화와 치유를 향한 변형

"새롭다”는 말은 헬라어 καινός(카이노스).이 단어는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본질이 새로워진 것을 뜻한다.

즉, 하나님은 이 세계를 폐기하지 않으신다. 정화하고, 치유하고, 다시 살리신다.

이것이 복음의 상상력이다.

어쩌면 새로운 건축보다 더 어려운 리모델링이 하나님의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음이다.


복음의 상상력을 키워가자.

기독교는 종종 상상력을 억압하는 종교로 오해받아 왔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복음은

폭력의 상상력을 멈추게 하고, 절망의 상상력을 거두어 가며, 희망으로 상상력을 정화한다

그래서 복음이 스며든 문화는, 자극적이지 않아도 오래 남고, 파괴적이지 않아도 깊이 울린다.

죄를 떠난 순결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유머와 그 기막힌 상상력을 꺽지 말아야 한다.

복음적이라는 단어가 뻔함과 동의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험과 상상이 사람들의 미래에 더 힘 있는 새로움을 던져야 한다.


'끝을 아는 사람들' 그들이 만드는 새로운 문화

요한계시록의 사람들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이 전부라고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알고 있다.
이야기의 끝을.

그래서 그들은

더 조급하지 않고

더 잔인하지 않으며

더 절망하지 않는다


끝을 아는 사람만이 현재를 다르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종종 녹화된 야구 경기를 보는 사람들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전전긍긍하지 않으며 좀 더 여유로운 관람자가 되어 이미 결과를 아는 게임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다.


예화 - 히브리서 11장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히브리서의 믿음의 사람들은 현실에서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다." (히 11:16)

바울 또한 옥중 서신을 통해서 쇠창살 안에서 어떻게 미래를 그릴 수 있는지 보여 주었다.

그는 절망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는 가장 미래 적인 교회의 비전을 제시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 음악으로 하나님 나라를 예견하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모든 악보에는 '주님, 도와주소서'라는 뜻의 'J.J,(Jesu Juva)'가 첫 줄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의 약어 'S.D.G,(Soli Deo Gloria)'가 마지막 줄에 적혀 있었다.

바흐에게 음악은 진리를 선포하는 도구였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멜로디가 있는 설교'라고 생각해 모든 요소에 믿음의 심혈을 기울였다.

그에게 음악은 '성공'이나 '명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장차올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에 미리 알리는 음률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의 상상력의 핵심은 음악을 통해서 종말론적 언어를 구사한 것이며

천상의 질서를 이 땅의 화음으로 미리 들려주는 표현인 것이었다.


오늘, 어떤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

복음은 묻는다.

당신이 믿는 미래는 무엇인가?

당신의 선택은 어떤 이야기를 향하고 있는가?

당신의 삶은 어떤 문화의 씨앗이 되고 있는가?


거룩한 상상력은

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만 바라보는 상상이 아니다.

오늘의 말,
오늘의 선택,
오늘의 창작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미래적 방향을 미리 살아내는 힘이다.


묵상

나는 어떤 미래를 바라보고 현재를 소비하고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삶이라는 문장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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