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정치의 변화)
복음은 정치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요구하는가?
"하나님께로 난 권세가 아니면 권세가 없느니라." (로마서 13:1)
오늘날 정치 지형은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 사회 안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분열되어 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말을 듣고, 서로 다른 뉴스를 보고, 서로 다른 현실 속에 사는 듯하다.
알고리즘은 우리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같은 생각만 반복해 들려주며
확신을 강화하고 타인을 단순화한다.
그 결과 정치적 견해는 의견이 아니라 정체성이 되고, 대화는 사라지고 적대만 남는다.
이 분열의 시대는 단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을 견디는 인간의 방식이 무너진 시대의 징후다.
정치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정치를 권력 다툼, 선거, 정당, 이념의 문제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정치라는 말의 뿌리는 훨씬 깊다.
'정치(政治)'란 언어는 다스림 보다 바르게 함의 언어적 의미이다.
한자 정치(政治)는 보통 "권력의 기술"처럼 들리지만, 글자를 뜯어보면 그 결이 달라진다.
정(政): 바르게 하다, 바로잡다의 뜻 - 한자正의 느낌을 품고 있다.
치(治): 다스리다, 다듬다, 치료하다의 뜻- 물길을 정리해 홍수를 막듯 '질서를 세움'이다.
그러니 정치의 더 깊은 의미를 굳이 부여한다면
이는 사람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질서를 세우고, 공동의 '선'을 지키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싸움과 분열의 언어가 아님은 명백하다.
정치인 또한 지배자의 개념보다 더 선행하여 돌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을 뜻함이다.
성경의 정치 언어는 ‘폴리스(πόλις)’에서 시작된다.
신약에서 정치의 배경을 이루는 핵심 단어가 있다.
폴리스(πόλις, ‘폴리스’): 도시, 시민 공동체
폴리테이아(πολιτεία, ‘폴리테이아’): 시민권, 공동체의 질서
폴리튜마(πολίτευμα, ‘폴리튜마’): (빌 3:20) 시민권/공동체 소속을 가리킬 때 쓰임
바울이 말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20)
여기서 '시민권'이 바로 '폴리튜마다.
즉 성경은 정치를 단순히 "정권이나 선거"로 축소하지 않고,
"너는 어느 공동체에 속해 있고, 어떤 질서로 살아가며, 누구에게 충성하느냐?"라는 질문이다.
구약의 정치 — ‘왕(멜렉)’과 ‘정의(미쉬파트)’와 ‘공의(쩨다카)’
구약에서 정치는 주로 "왕권"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때 성경이 묻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멜렉(מֶלֶךְ, ‘멜렉’): 왕
미쉬파트(מִשְׁפָּט, ‘미쉬파트’): 정의, 공적 판단, 재판의 바름
쩨다카(צְדָקָה, ‘쩨다카’): 공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올바름
통치자인 왕이 정의와 공의를 바르게 세우는 올바름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그렇기에 성경에서 "정치가 무너진다"는 말은
권력이 바뀌거나 제도가 흔들린다는 뜻만이 아니다.
미쉬파트와 쩨다카—통치자인 왕에게 공적 정의와 관계적 공의의 올바름이 무너진 것을 뜻한다.
그래서 예언자들이 왕을 향해 외친 비판은 '정치 혐오'가 아니었다.
정치가 본래 목적(정의와 공의)을 배신한 것에 대한 탄식이었습니다.
성경에서의 정치적 개념은 이러하다.
"누가 이기느냐"의 권력 쟁취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최종적으로 올바로 다스리느냐?"의 질문이었다.
정치의 완전성은 이 땅에 없다
예수님 당시의 사회 역시 결코 단일한 정치 지형이 아니었다.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에세네파, 열심당원.
각기 다른 신학과 정치적 태도, 권력 이해를 가진 집단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특정 계파의 편에 서지 않으셨다.
동시에 어느 집단도 배제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모든 계파를 지나가며 제자를 부르셨다.
이는 정치적 무관심이 아니라, 정치의 완전성이 이 땅에 없음을 아신 분의 태도였다.
예수님은 분명히 아셨다.
이 세상의 어떤 제도도, 어떤 이념도 하나님의 나라를 완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불안의 시대, 신앙은 어디에 뿌리내리는가?
오늘 우리는 경제적 붕괴의 가능성과 전쟁의 위협, 국가 간 갈등과
내부 분열이 동시에 출렁이는 시대를 살아간다.
불안은 정치로 흘러가고,
정치는 공포를 자극하며,
사람들은 더 강한 언어와
더 단순한 해답을 원한다.
그러나 복음은 불안에 즉각적인 해답을 주기보다 먼저 묻는다.
"너의 마음은 어디에 뿌리내려 있는가?"
정치가 흔들릴 때 함께 무너지는 신앙은 이미 정치에 충성을 다 하고 있음이다.
정치의 가장 큰 희생양 — 예수와 세례 요한
예수님은 종교적 이유로만 죽임 당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존재였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호칭은 로마 제국의 질서를 흔드는 말이었다.
세례 요한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죽음은 개인 윤리 비판의 결과가 아니라 권력의 불안을 건드린 정치적 사건이었다.
성경 속 순교자들은 정치와 무관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권력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지만, 권력 앞에서 양심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이번 챕터인 제4부는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책도 아니고, 정치적 거리 두기를 선언하는 글도 아니다.
다만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다.
우리는 누구에게 충성하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매일 흔들리는가?
우리가 이 무너져 가는 정치적 윤리 속에서 끝내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렇다.
수 없이 많은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얻은 답은 분명하다.
정치는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거대한 확신이다.
묵상
정치는 세상을 다스리려 하지만, 복음은 인간의 중심을 다스린다.
이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설 자리,
우리가 볼 방향,
우리가 뿌리내릴 토양은 정치적 안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아래 들어가는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