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정치의 변화)
힘의 구조 한가운데서 드러난 다른 주권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자기 집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더라."
(다니엘 6:10)
성경이 말하는 '권력'은 무엇인가?
성경은 권력을 감정이나 이미지로 다루지 않는다.
권력은 삶의 현장에서 구조적 실체로 등장한다.
구약에서 권력을 가리키는 핵심 개념은 두 축이 있다.
- 그 하나는 כֹּחַ (코아흐) : 능력, 힘, 실행 가능한 에너지를 가리키고
- 두 번째는 שָׁלַט (샬라트) : 다스리다, 지배하다, 통제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성경적 권력은
"행동할 수 있는 힘 + 질서를 강제할 수 있는 통제력"을 의미한다.
이는 국제사회의 질서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국내 정치 속에서도 실행력과 통제력을 발휘하는 정치 세력이 곧 권력자이다.
권력이 어떻게 중립적으로 작동하겠는가?
권력은 우리가 마주하며 사는 권력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 자체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지만 현상적으로는 선과 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누가 소유하고 그 힘이 무엇을 향해 사용되어지는 가에 따라서 신학적 의미를 갖게 된다.
그렇게 성경에서 드러나는 권력은 단순한 정치적 기술을 넘어서
주권의 문제로 확장되어 나타나고 다루어지고 있음이다.
다니엘서의 배경 — 절대 권력의 완성형 제국의 힘
다니엘이 살았던 바벨론과 메대-바사 제국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권력 시스템을 갖춘 국가였다.
다니엘 6장에서 등장하는 조서는 단순한 행정 명령이 아니다.
"메대와 바사의 법도는 고치거나 폐할 수 없나이다." (단 6:8)
여기서 '법'은 토론가능하고 변경가능한 규범이 아니다.
왕의 권력이 문자로 고정된 절대적 명령이다.
제국의 구조 안에서 통치자인 왕의 권력은
- 윤리보다 위에 있고
- 신앙보다 우선하며
- 개인의 양심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권력의 본래 속성이다.
권력은 왜 신앙을 위협하는가?
권력은 자주 두 가지를 요구한다.
- 침묵
- 전면적 충성
다니엘에게 요구된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라는 명령이 아니었다.
단 6장의 문제는 "기도하지 말라"가 아니라
"왕 외에 다른 존재에게 요청하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즉, 다니엘의 신앙은 사적 영역에서는 허용되었으나, 공적 질서 속에서는 배제되어야 했다.
여기서 권력은 자신을 신격화하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최종 주권의 자리를 요구한다.
이 지점이 권력과 신앙이 충돌하는 핵심이다.
다니엘의 선택 — 저항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믿음을 지속하다.
다니엘은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다. 조서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왕을 조롱하지도 않았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다.
"전에 하던 대로"
다니엘의 행동은 새로운 결단이 아니라 이미 확립된 질서를 지속한 것이었다.
늘 하던 것을 지금도 하고 있다. 그건 권력과의 관계가 아니다.
그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과의 약속이며 그를 향한 신앙의 모습이다.
다니엘에게 왕의 법은 현실이었지만 최종 현실은 아니었다.
그는 권력을 무시하지 않았으나 권력을 절대화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현실의 권력에 대한 저항의 성격보다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지속성이라고 보인다.
여기서 드러나는 신학적 구조
다니엘서가 제시하는 신앙의 태도는 명확하다.
권력은 인정된다.
그러나 내 삶의 전체적 주권, 믿음과 양심의 축은 양도되지 않는다
바울이 훗날 말한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롬 13:1)
이 말은 권력이 신성하다는 뜻이 아니라, 권력도 심판받는 질서 아래 있다는 선언이다.
다니엘은 그 질서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예화) 디트리히 본회퍼 —"미친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은 신앙"
나치 독일은 단순한 독재 정권이 아니었다.
그것은 질서와 안정, 민족의 번영이라는 언어로 포장된 권력이었다.
많은 교회는 그 질서에 협력했다.
국가를 위해 기도했고,
민족을 위해 침묵했고,
"정치는 교회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안전을 지켰다.
그 한가운데서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교회가 악을 보고도 침묵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본회퍼는 히틀러를 단순한 정치 지도자로 보지 않았다.
그는 국가가 하나님 자리를 차지한 순간을 보았다.
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폭력보다 정당화된 침묵이었다.
그는 말했다.
"미친 운전자가 사람들을 치고 달릴 때,
목사는 단지 장례만 집전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그 차를 멈추게 해야 한다."
이 말은 혁명 선언이 아니라 주권 고백이었다.
국가는 절대자가 아니며, 권력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고백.
그 고백 때문에 그는 체포되었고, 침묵을 강요받았으며, 마침내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형 집행 직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권력은 그의 생명을 끊었지만 그의 주권을 빼앗지는 못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최종'의 권력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의 문제는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던져질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본 회퍼와 같이 목숨을 던질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무엇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경제, 법, 제도, 안보, 국제 질서.
이 모든 것은 실제적 힘으로 우리 앞에서 실천되고 있다.
그래서 다니엘과 회퍼의 결단이 우리에게 크고 웅장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쉽지 않은 것에 대해서 성경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금 묻는다.
오늘날 너희의 권력이 주권을 내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아닌가?
다니엘과 회퍼의 신앙은 권력의 부재 속에서가 아니라
권력의 한복판에서 실행력과 통치력을 향해 보이지 않는 우주의 주권자를 향한 믿음으로 나타났다.
묵상
나는 권력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권력을 절대화하고 있는가?
다니엘은 권력을 이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권력보다 큰 질서 안에 서 있었다.
신앙은 힘이 없을 때가 아니라 힘이 작동할 때 비로소 그 정체가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