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동정하지는 말아주세요.
S 부장님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부장님이라 부른다.
우연한 기회에 함께 일을 하며 알게 됐고, 성격이나 일하는 방식, 기대하는 눈높이가 비슷했기에 아주 잘 맞았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동갑내기라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동료이자 때로는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여전히 호칭을 부장님으로, 존대를 하며 지내고 있다.
모든 면에서 단정하고 선을 지키는 사람이었고,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까워졌을 것이다.
몇 달 뒤부터 새롭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그 이야기를 할 겸 오랜만에 얼굴을 볼 겸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먼저 도착하고 잠시뒤 그녀가 왔다.
얼굴이 밝아 보였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의 일에 대한 노고, 알아주지 않는 마음들, 존중과 예의가 부족한 어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뒤 대화는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로 넘어왔다.
3년 전 나의 상처를 모두 알고 있는 그녀는 내가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 놀라고 속상했다고, 너무 안쓰러웠다고 했다.
“내가 다 안쓰러워서…”
“너무 안쓰러웠어요.”
이런 동정과 연민사이의 단어가 그대로 내 귀에 꽂혀 들어오는데, 기분이 묘했다.
그녀가 걱정과 놀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그렇게 말했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를 걱정하는 연민의 언어로 말했을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이 왠지 모르게 거슬렸다. 기분이 나빴다기보단 내 자존감 어딘가가 살짝 건드려진 느낌이었다.
물론 그땐 표현하지 않았다. 부장님의 따뜻한 마음을 잘 알기에.
집에 돌아와서 한참을 생각해 봤다.
나는 왜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난 아마도 누군가에게 약해 보이는 게 싫었던 것 같다. 힘든 순간에도 여전히 약하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쓰럽다는 말에는 상대가 나를 불쌍한 존재로 바라보는, 그 마음이 그대로 묻어있었다.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마치 어린아이 같은 약자가 되어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아, 나는 이런 걸 안 좋아하는구나. 사람들에게 내가 힘든 일들을 숨기지 않고 말하면서도, 불쌍한 존재로 보이고 싶지는 않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내가 겪어보고 나서야 동정과 연민에 대한 감정을 자세히 떠올려보게 됐다.
동정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감정이고, 연민은 그 고통 옆에 서는 마음인 것 같다.
나는 이해받고 싶어 하면서도, 불쌍한 존재로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인간의 마음은 늘 그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