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런 걸 안 하면 의과대학시절 임상병리학 학점을 안 준다기에 별로 내키지 않지만 했고, 진짜 아무 이유 없이도 해보았었다.
하지만 50대도 이제 중반으로 치닫고 공자께서 말씀하신 지천명(知天命)을 조금씩은 느끼다 보니 한층 진지하게 헌혈을 하게 된다. 겨우 스타벅스 커피 톨 사이즈와 그란데 사이즈 사이의 400cc 헌혈하면서 여전히 조금 불순한 의도로 신께 수십 가지 복(福)을 달라고 때 쓰는 내가 헛헛할 따름이지만, 그래도 중요한 몇몇 소원들은 들어주실 거라 믿어본다.
내 이름의 성씨(朱:붉을 주)와도 같은 붉은 피가 힘겨운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그보다 어떤 늙고 초라한 이가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말없는 마지막 슬픈 눈 맞춤 인사 5분, 단지 5분 더 연장하는데 쓰인다 해도 나는 참 고마울 것 같다.
50대 참 좋은 나이다. 20대에 했던 헌혈은 그냥 아팠다 그래 그랬다. 30대에 했던 그것도 그다지 좋은 기억 같은 건 없다.
헌혈증이 필요하다던 이름도 모르는 어떤 이에게 준 것밖에.
하지만 50대의 헌혈은 따뜻해지고 맑아지는 게 이 느낌 참 좋다, 나이 들어가나 보다.
멋지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데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무튼 이 느낌 참 좋다.
헌혈의 집을 나와 수많은 도시의 불빛 간판 위로 간신히 독수리 오 형제 같은 카시오페이아를 찾아본다.
여전히 12월 초저녁 늘 그렇듯 북두칠성을 등지고 그 하늘 그 자리를 오롯이 지키고 있어 반가웠다.
수 없이 많은 밝고 화려한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이제는 나만큼 희미해져 버렸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