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의 수장은 바디칸의 교황이고 현재는 가톨릭 역사상 전례가 없는 비유럽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고교시절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이리고옌(Hiplito Yrigoyen) 산업연구소에서 식품화학 과정을 전공했었다. 그는 젊었을 때 요리하는 걸 좋아했고, 또 요리를 중간에 놓고 함께 나누어 먹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함께 한 음식은 서로에 대한 평화의 인사의 의미였다고. 평화의 사도인 성 프란치스코답게 음식으로 평화의 가치를 함께 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베풀 보(布)에 베풀 시(施)를 써서 보시(布施)라는 아주 쉬운 용어로 일상에서 불교적 수행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중 가장 본능적이지만 중요한 음식 보시는 기복(祈福)적인 관점에서도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배고픈 이에게 음식을 나누는 행위는 비단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참 가치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생각할 때, 가슴 설레며 함께 봤던 영화로, 아름다웠던 시절을 함께 나누던 노래를 가지고도 추억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함께 했던 음식으로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더 자주 떠올리곤 한다. 그 음식을 먹을 때면 그 누군가가 늘 고마운 느낌으로 떠오르는 건 참 행복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듯 음식은 가장 일차원적이지만 가장 고귀한 나눔의 미학인 것이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 누군가에게 음식을 제공한다는 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복을 받을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이나 일본의 더치페이 문화를 내가 내 밥값을 내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보시의 기회를 주는 게 아닐까라고도 생각해 본다
누군가는 우리나라 종교의 문제가 기복신앙이라고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종교가 가지는 솔직함이며 장점이 아닐까라고도 생각된다.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 이게 아니라면 참 재미없는 세상일 것 같다. 아니 아니라도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 진다. 남에게 밥을 많이 사 준 이는 꼭 많은 복을 받을 거라 믿는다. 혹 그게 아니라면 내가 믿는 신께 내게 밥을 사준 이가 많은 복을 받기를 감사함을 담아 간절히 기도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게도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기를 함께 기도해본다.
음식들과 함께 한 추억은 음식의 빛깔, 음식의 향기, 음식의 맛, 함께한 이의 웃음소리가 모두 기억되어 진하게 저장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