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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Aug 11. 2024

청도 적천사에서

평온(平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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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 물소리, 옅은 바람소리, 풀벌레소리로 가득한데, 어찌 된 일인지 온천지가 고요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불규칙적이고 평탄하지도 않은 소리로 성가실 만도 한데 마음이 더 평온해지는 걸 보니 그 소음들이 오히려 더 좋은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


쩜 고요는 이런 소리들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소리 하나 없는 시린 고요는 그 건조함에 오히려 아플 것 같아, 이런 특별한 소들이 고요를 또렷하게 해 주어야만 고요는 고요로 남을 수 있는 게 맞아 보인다.


요즘시각적인 영상들에 더 익숙한 시대지만, 여기 이 깊은 산사 모든 영상들 멈춘 듯 조용히 정지되어 있고, 오로지 한적한 토요일 오후 고요 한가득 싸여 있다.

범종(梵鐘) 옆 굵은 기둥에 기대앉아, 그 고요가 주는 아주 고맙고 소중한 휴식의 시간을 길게 만끽하고 있다.


그래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다 보니 그 피로감에 지쳐 세상의 바쁜 영상들이 멈춘 듯 이런 여유롭고 특별한 순간들이 한없이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지는 게 맞는가 보다.


고요만이 새소리, 물소리, 옅은 바람소리, 풀벌레소리와 어울린다는 걸 알고는 이 순간을 애써 아껴 보내고 있다


여기는 짙은 녹색 잎을 넉넉하게 이고도 한없이 여유로운 아주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가 고마운 경상북도 청도 화악산(淸道 華岳山) 깊은 곳에 자리 적천사(川寺)이다.

화악산 적천사(華岳山 磧川寺 )

신라의 원효(元曉)스님이 창건했으며, 고려의 지눌(知訥)스님이 충창(重創)하였으니, 그 역사가 짧않은 산사이다.


하여 그 차분함이 부담스럽지 않은 고요와 맞닿아 한층 더 편안하게 내려앉아있다.

천왕문(天王門)

큰 길가에서 한참을 넓지 않은 산길로 올라왔다.

산사로 가는 길이 언제나 그렇듯 굽은 산길은 그 길에 집중하게 하여 쓸데없는 많은 생각들을 하지 못하게  오히려 더 좋을 때도 있다.


길이 좁아 혹 자동차가 서로 맞물리면 어쩌나 걱정되지만 딱 그만큼 서로 비켜 갈 정도의 여유는 늘 주어지고 있어 마주침 없이 오를 수 있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천왕문(天王門)에서 본 은행나무

괜한 걱정 수많은 생각들 일상의 평온(平穩)을 빼앗기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무거운 부담감을 가져 한없이 소중한 순간순간들을 버리는 안타까운 실수를 하고 있었던 거다.


여유를 가지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될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더 긍정적인 일들이 기다릴 거라 믿으면 되는데 말이다.


한 없이 넉넉한 절 집 문 앞 두 그루 은행나무를 보고 있자니,  더 많은 생각들이 스치니 어찌할 수 없이 한참을 멀었음이 또 한 번 더 느껴진다.

천왕문(天王門)에서 본 은행나무

한여름 무성한 잎을 가진 그 은행나무 밑에는 어느 계절에 떨어졌는지도 모를 만큼의 은행 잎들이 쌓여있다.

무성하게 달려 이 계절 화려하기까지 한 순간들을 뽐내는 그 은행잎들이 멋지긴 하다.


나 바닥에 흩어져 칙칙한 색으로 흐려지며 제 뜻을 다한 그 은행잎들도 다시 흙이 되어 800년 세월을 서 있는 이 나무들을 돌봐왔다고 생각하니,  또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다.

산사 앞 좋은 곳에 이 멋진 은행나무를 심었을 이의 마음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적천사(磧川寺)은행나무

그래 정말 우리네 흘러가는 세월 속 삶과 너무 닮아있어 신기할 따름이다.

그냥 오래된 그런 나무인데도 말이다.


한여름 오후의 짙은 태양을 흠뻑 가려주는 그 아래 어디쯤 방해되지 않게 앉아, 내 은행잎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끝도 없이 질문만 계속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이렇게 머무르지 않고 무심히 또 한없이 흐르고 있는데 이다.


늘 같지 않지만, 그 자리 그대로 그렇게 변하지 않는 듯 어주어 늘 반갑고, 또 다행스러우니 그 또한 신기할 따름이다.

차가운 날들이 오면 또 완전히 변해 있을게 틀림없는데도 낯설지 않을 것 같아 고맙기가 그지없다.

여전히 고요만새소리, 물소리, 옅은 바람소리, 풀벌레소리를 애써 부추겨 여름 오후를 예쁘게 그리고 있다.


통 혼란스럽던 아랫동네 소리들도 이제 조금 견딜 수 있게도 만들어 주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 순간이 더욱더 고맙게 느껴진다.


지친 매미소리가 일시에 조용해질 때 그 고요도 깨져 조용히 여래께 인사드리고 물러 내려왔다.


일상이 평온하게 흘러가기를 빌면서 말이다.

적천사 대웅전(磧川寺 大雄殿)

수많은 그 소리들로 세상도 또 그렇게 고요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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