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SLR(단안 리플렉스 , single lens reflex)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을 때 미러가 움직이는 그 소리를 참 좋아한다.
'찰칵'
세상을 아날로그가 지배할 때 그 수많은 카메라들 각각의 독특한 셔터 소리는 설렘 그 자체였었다.
Nikon FM2, 한 시대를 거뜬히 책임지던 카메라다.
배터리니, 방전이니, 충전이니 뭐 이런 용어들은 이 카메라 앞에서는 그 뜻을 상실하고 오로지 내 손과 내 의지만 있으면 사진을 찍어 주는 카메라, 어쩜 뷰파인더 넘어 피사체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라는 듯 묵직한 몸을 다 내어주는 그런 카메라다. 에베레스트였던가 어디서 당시 건전지가 필요한 카메라들이 추위로 다 얼어 사진을 찍지 못했을 때 이 FM2가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참 재미있는 카메라다. 배터리가 필요 없는 기계식 셔터를 스마트폰 카메라에 익숙한 중2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또 필름은, 그 감성은...
눈을 크게 뜨고 기다리는 중2에게, 크기만큼 복잡하고 어지러운 카메라 구조와 필름의 물리적 이론, 내가 아무리 영상의학과 의사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간격만큼 설명하기가 어렵다.
40년도 더 전에 나와 내 동생들을 찍어주었던 아버지의 Olympus PEN 카메라는 이제 내가 내 아이들을 찍는 현역으로 배터리도 없이 아직도 언제든지 불러만 달라고 당당하게 놓여있다. PEN으로 찍은 어린 모습의 아들 사진을 보니, 먼 옛날 아버지께서 뷰파인더로 내 어릴 때 모습을 보며 사진 찍으실 때도 이런 느낌이셨구나 생각하니 아버지가 무척 그리워진다.
한창 잘 나갈 때 이 카메라는 필름 한 장에 반반씩 두 장의 사진을 만들어 주는 가성비 최고인 카메라이기도 했다.
필름 한장에 두컷이 찍히는 올림푸스 PEN. 아들
PEN으로 이런 사진을 또 찍어보고 싶다.
한 장 한 장이 다 소중한 컷들이다. 내 아버지의 마음이 이어지는 느낌도 참 좋다. 그래 이 느낌은 지금 스마트폰 카메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아날로그만의 매력인걸 거다.
찍고 순식간에 확인할 수도 있고 수십 장 아니 수백 장을 다시 찍을 수도 있는데, 왜 요즘이 더 바쁘고 더 여유가 없는지는 참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다. 중2 막내딸은 내가 더 이해가 안 되겠지만.
다음은 '가난한 자의 라이카'라고 불리는 Yashica의 ELECTRO 35 GSN이다. 지금도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독일 라이카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 시절에도 넘을 수 없는 가격과 성능이라서 많은 우리들의 아빠들은 야시카의 일렉트로 35 GSN으로 그 아쉬움을 충분히 달랬다. 그래서 빈자(貧者)의 라이카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뷰파인더로 보이는 하나의 피사체가 두 개로 겹쳐 보이는 걸 초점을 맞추면서 하나로 모아서 찍어야 하는 RF 카메라(거리계 연동 카메라)다.
이쯤 되니 왜 이렇게 크고 불편한 카메라가 다 있냐고 시큰둥한 표정이다. 중2 딸과의 거리는 누가 봐도 중2병 딸과 아빠의 사이만큼 멀어져 버린다. 그래도 카메라는 참 예쁘다. 크고 무겁고 투박하지만 그래도 예쁘다.
각각 한 시대를 호령했던 카메라들을 불러내 언제 넣어 놓았는지도 잊은 필름으로 중2 막내딸을 찍어 주말에 할 일이 생겼다. 결과물이 어떨지 기대와 걱정에 설렌다.
아날로그는 불편하고, 답답하고, 느리다.
그러나, 아날로그는 설렘이 있다.
그리고, 아날로그의 설렘은 기다림이다.
스마트폰 속에 갇혀버린 카메라가 또 먼 훗날에는 어떤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줄지 기대된다.사진 찍기가 참 편한 세상이라 멋진 사진들이 넘쳐난다. 그래도 가끔씩 찍은 사진이 스마트폰 액정 말고, 몇 날을 기다려 필름에 현상되고 종이에 인화되기까지의 설렘이 그립기도 하다.
나만의 유일한 한 장의 사진말이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손으로 느낄 수도 있는 사진말이다.
내 필름 카메라는 아직도 현역이다.
부끄러운 듯 스마트폰에 숨어버린 일 잘하고 똘똘한 카메라보다는 뭔가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말이다.
그래 아날로그는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은 설렘이 늘 동반되어 있었고,
어쩜 나는 그 설렘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오랫만에 찍어 둔 필름을 현상 인화하러 가봐야겠다.
높은 구름이 좋은 푸른 하늘을 최신 스마트폰으로 찍으면서, 먼 훗날 카메라가 또 어떤 모습으로 내게 돌아와 줄지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