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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Nov 05. 2022

카메라

나는 중학교 2학년짜리 막내딸에게 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카메라가 배터리도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나는 다시 셔를 눌러 24장짜리 진한 노란색이 너무 잘 어울리는 코닥필름 한 장에 시크한 막내딸의 얼굴을 기억시켰다.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찍은 사진 좀 보여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무것도 보여줄 수가 없다.

눈을 감았는지, 웃고 있었는지, 흔들였는지....


"아! 뭐야!! 못 보는 거야? 찍은 건 맞아?"


나는 또 뭐라고 잔뜩 설명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필름 사진 현상 인화하는 사진관을 굳이 찾아서 가봐야 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참 불편하고, 답답하고, 느리고...

Yashica ELECTRO 35 GSN, Olympus-PEN, Nikon FM2,                              중2국어 자습서


나는 SLR(단안 리플렉스 , single lens reflex)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을 때 미러가 움직이는 그 소리를 참 좋아한다.


'찰칵'


세상을 아날로그가 지배할 때 그 수많은 카메라들 각각의 독특한 셔터 소리는 설렘 그 자체였었다. 


Nikon FM2, 한 시대를 거뜬히 책임지던 카메라다.

배터리니, 방전이니, 충전이니 뭐 이런 용어들은 이 카메라 앞에서는 그 뜻을 상실하고 오로지 내 손과 내 의지만 있으면 사진을 찍어 주는 카메라, 어쩜 뷰파인더 넘어 피사체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라는 듯 묵직한 몸을 다 내어주는 그런 카메라다. 에베레스트였던가 어디서 당시 건전지가 필요한 카메라들이 추위로 다 얼어 사진을 찍지 못했을 때 이 FM2가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참 재미있는 카메라다. 배터리가 필요 없는 기계식 셔터를 스마트폰 카메라에 익숙한 중2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또 필름은, 그 감성은...


눈을 크게 뜨고 기다리는 중2에게, 크기만큼 복잡하고 어지러운 카메라 구조와 필름의 물리적 이론, 내가 아무리 영상의학과 의사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간격만큼 설명하기가 어렵다.



40년도 더 전에 나와 내 동생들을 찍어주었던 아버지의 Olympus PEN 카메라는 이제 내가 내 아이들을 찍는 현역으로 배터리도 없이 아직도 언제든지 불러만 달라고 당당하게 놓여있다. PEN으로 찍은 어린 모습의 아들 사을 보니, 먼 옛날 아버지께서 뷰파인더로 내 어릴 때 모보며 사진 찍으실 때도 이런 느낌이셨구나 생각하니 아버지가 무척 그리워진다.


한창 잘 나갈 때 이 카메라는 필름 한 장에 반반씩 두 장의 사진을 만들어 주는 가성비 최고인 카메라이기도 다.

필름 한장에 두컷이 찍히는 올림푸스 PEN. 아들

PEN으로 이런 사진을 또 찍어보고 싶다.

한 장 한 장이 다 소중한 컷들이다. 내 아버지의 마음이 이어지는 느낌도 참 좋다. 그래 이 느낌은 지금 스마트폰 카메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아날로그만의 매력인걸 거다.


찍고 순식간에  확인할 수도 있고 수십 장 아니 수백 장을 다시 찍을 수도 있는데, 왜 요즘이 더 바쁘고 더 여유가 없는지는 참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다. 중2 막내딸은 내가 더 이해가 안 되겠지만.


다음은 '가난한 자의 라이카'라고 불리는 YashicaELECTRO 35 GSN이다. 지금도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독일 라이카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 시절에도 넘을 수 없는 가격과 성능이라서 많은 우리들의 아빠들은 야시카의 일렉트로 35 GSN으로 그 아쉬움을 충분히 달랬다. 그래서 빈자(貧者)의 라이카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뷰파인더로 보이는 하나의 피사체가 두 개로 겹쳐 보이는 걸 초점을  맞추면서 하나로 모아서 찍어야 하는 RF 카메라(거리계 연동 카메라)다.

이쯤 되니 왜 이렇게 크고 불편한 카메라가 다 있냐고 시큰둥한 표정이다. 중2 딸과의 거리는 누가 봐도 중2병 딸과 아빠의 사이만큼 멀어져 버린다. 그래도 카메라는 참 예쁘다. 크고 무겁고 투박하지만 그래도 예쁘다.


각각 한 시대를 호령했던 카메라들을 불러내 언제 넣어 놓았는지도 잊은 필름으로 중2 막내딸을 찍어 주말에 할 일이 생겼다. 결과물이 어떨지 기대와 걱정에 설렌다.


아날로그는 불편하고, 답답하고, 느리다.

그러나, 아날로그는 설렘이 있다.

그리고, 아날로그의 설렘은 기다림이다.


스마트폰 속에 갇혀버린 카메라가 또 먼 훗날에는 어떤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줄지 기대된다. 사진 찍기가 참 편한 세상이라 멋진 사진들이 넘쳐난다. 그래도 가끔씩 찍은 사진이 스마트폰 액정 말고, 몇 날을 기다려 필름에 현상되고 종이에 인화되기까지의 설렘이 그립기도 하다.

나만의 유일한 한 장의 사진말이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손으로 느낄 수도 있는 사진말이다.


내 필름 카메라는 아직도 현역이다.

부끄러운 듯 스마트폰에 숨어버린 일 잘하고 똘똘한 카메라보다는 뭔가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말이다.


그래 아날로그는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은 설렘이 늘 동반되어 있었고,

어쩜 나는 그 설렘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늘은 오랫만에 찍어 필름을 현상 인화하러 가봐야겠다.

높은 구름이 좋은 푸른 하늘을 최신 스마트폰으로 찍으면서, 먼 훗날 카메라가 또 어떤 모습으로 내게 돌아와 줄지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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