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중동성당에서

진리는 통한다

by 높은구름


바람이 차다.


찬 바람을 맞으며 붉은 벽돌 계단을 오르고 있다.

찬 바람이 12월에도 따뜻한 햇살을 받으니, 오히려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성당의 차분한 공기 색깔 때문인가 보다.


오랜만에 오르는 성당길이다.


여기는 찬바람에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공주 중동성당(公州 中洞聖堂)이다.

1898년 프랑스 출신 기낭(Guinand, 陳普安) 신부가 처음 한옥성당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이 땅의 가톨릭 역사와 함께한 성당인 것이다.


125년 넘은 성당이 낯설지만 언제가 와본 적이 있는 것도 같은 느낌을 주고 있어 좋다.


이런 게 멋진 성당을 만들었을 100년 이 훨씬 넘은 그 시대 신부님들과의 시대를 넘는 이야기가 좋다.


진리는 어쩜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차가운 붉은 벽돌 계단에 기대앉으니 문득 머리를 스친다.


불교의 한 없이 깊은 진리.

가톨릭의 끝없이 넓은 진리.

이슬람의 무한히 강한 진리.


진리는 통한다가 아니라, 진리가 통하지 않으면 그건 진리가 아닌 것이다.


진리는 깊고, 넓고, 또 강한 것이기에 통할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세상사 복잡한 생각들이 멋스러운 성당을 보고 있으니 잠시나마 차분히 안정되는 게 이 느낌 참 좋다.

성모

성당에 들어서면 늘 제일 먼저 반갑게 웃어 주시는 성모님께 부탁드린다.


참 오랜만에 인사드리니, 제가 지은 크고 작은 실수들을 용서해 달라 대신 좀 빌어달라고..


작은 웃음으로 늘 그래 오셨듯 또 반갑게 맞아주시니 마음이 또 한 없이 차분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아직까지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던, 성모송을 한치도 틀리지 않고 되뇌니, 함께 간 친구가 민망하게 돌아본다.



성모송(聖母誦, Ave Maria)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오랜만에 오는 성당이라 낯설지만, 그래도 그 따뜻한 느낌은 여전히 변함이 없어 좋다.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인 성당 안은 익숙한 캐럴로 따뜻했다.

온통 순백의 내부에 차분히 놓여 있는 의자들, 예쁜 색유리창은 온통 무거울 것만 같은 분위기를 이쁘게 내려놓고 있다.


언제든 다시 돌아오면 또 처음처럼 반갑게 맞아줄 테니, 부담 가지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다 힘들거나 기쁜 일 있을 때 한번 들르라는 듯 편안하다.


돌아 내려오는 길에 몇 번을 뒤돌아보았는지 모르겠다.


차가워지는 바람이 잠시 멎었다.

꼭 다시 오겠다 인사드리며, 어렵겠지만 그 큰 진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 한다.

일요일 오후 오래된 성당 안에서 기쁜 성탄 노래가 잔잔히 오랫동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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