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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냉담자의 성당기행
울산 성 바오로성당에서
친구
by
높은구름
Feb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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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바쁘고 또 힘든 시기는 늘 오는 게 맞는가 보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삶을 그래도
위로해 주는 건 옆에 있지 않아도 언제든 함께 해 줄 것 같은 친구인 것 같다.
이럴
때 머리에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친구는 바로 지금 옆에 있지 않아도 늘 든든해진다.
소식이
드문드문이라도 말이다.
그냥 보고 싶은 생각에 전화
한 통화하고픈 그런 날 딱 전화해서 반갑게 인사해 주는 친구가 있으면 참 좋은 삶이 맞다.
하늘은 맑지만 아직 바람은 따뜻해지지는 않았다.
뭔가 옛일이 그리우면 입술에서 중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노래들이 마법처럼
흥얼거려진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토요일 이른 오후 40년 가까이 잊고 있었던 장소가 갑자기 생각났다.
동무생각이라는 노랫가락과 함께..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아직 백합도
흰 나리도 이르지만 봄의 교향악의 전주는 울리는 것 같다.
어릴
적 놀던 세 잎 클로버가 지천으로 피어 있던 언덕.
옛 친구
와 그 하얀 클로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그 언덕 그 잔디 위에 누워 바라본 높은 구름들이 고스란히 기억되어 있다.
함께 한 과학자가 꿈이던 친구도, 의사가 꿈이던 나도 고맙게도 다 이루어져 웃으며 옛 기억을
추억할 수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어느 날
,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본 언덕 같았던 이곳 푸른 언덕에 갑자기 건물 공사가 시작되고 또 다 파 헤쳐지고 무거운 돌들이 그 자리를 막아서 버렸다.
슬펐다
.
그래 여기 울산 성바오로(St. Paul)
성당이다.
울산 성바오로 성당
나는 참 슬픈 기억으로 이 멋진 성당
의 거친 공사장
과 처음 대면 했었다.
무려
40년 전에 말이다.
성당이 완성되었지만 그때는 차마 보러 올 수가 없었다.
속상한 마음에 이 멋진 성당을 보러 오는데 40년이 걸렸다.
언젠가 푸르던 그 언덕을 무거운 돌로 눌러버린 성당.
그러나 이제
그 작은 원망도 희미해지고, 살다 보니 이 성당도 나처럼 이곳에서 지금처럼 멋진 하늘을 기억하고 있다 생각하니 작은 웃음만 맴돈다.
이렇게 멋진 성당인데....
오늘처럼 누군가가 그리운 날,
대나무 숲 성모님께 너무 늦게 인사드리러 왔다 말씀드리니, 성모님도 조용히 고개 숙여 나를 위해 기도 해주신다.
작은 댓닢들 사이로 바람도 햇살도
숨 고르며 기도 소리를 전하고 있다.
성당 안은 무겁지 않은 고요가 흐른다.
화려하지만 가볍지도 않게 스스로 불을 켠냥 빛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침묵을 따뜻한 고요로 바꾸어 주니 또 고맙다.
한참을 앉아 옛일도 먼 훗날의 일도 하나하나 생각하니,
차분해지는 것 같아 참 좋다.
여기 이 성당과 나는 같은 기억으로 여기 앉아 있어 참 좋다.
또 이곳을
기억할 그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 한 번 해야겠다.
"여기 그래도 참 좋은
곳이다"라고.
"오늘도 그날처럼 높은 구름이 멋진 성당과 함께 떠
있다"라고.
울산 성바오로 성당
성바오로성당
울산 동구 명덕로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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