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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Feb 12. 2023

청도 사리암에서

복(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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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은 복(福)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1. 생활에서 누리게 되는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

2. 어떤 대상으로 하여 만족과 기쁨이 많음을 이르는

3. 해당되는 몫을 많이 가지거나 당하거나 겪게 되는 처지

                                                               -다음 어학사전-



영어로는 good  luck쯤으로 해석하고 있고, 공교롭게도 '복 많이 받아라!'와 'Good Luck!'은 행운을 빌어주는 완전히 똑같아 보이는 동양과 서양의 인사말이다.

어디서나 복은 간절하고 또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은 무엇인가가 틀림없어 보인다.


우리 옛 어머니들은 이른 새벽에 길은 우물물(정화수, 淨化水) 한 그릇을 부엌 부뚜막이나 장독대위올려놓고 자식들의 복을 빌었었다.

형식은 소박하지만 그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마음은 결코 소박하지 않았다.

절박한 어머니의 마음과 복을 기원하던 절실함을 알기에 이 땅의 그 아들 혹은 딸들은 복 되게 살고 있는 것일 거다.


복을 바라는 행위, 우리는 이걸 기복(祈福)이라는 한자로 표현한다.

어떤 종교 원로들은 한국종교의 문제점들 중 기복신앙(祈福信仰)도 큰 문제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화수 한잔에 자식의 행운과 행복을 비는 어머니의 마음이 토록 크고 화려한 종교들보다 조금은 더 거룩해 보이는 건 나는 여전히 어찌할 수가 없다.

눈이 살짝 내려앉은 여기는 청도 운문사에서도 한참을 올라야 하는 호거산 사리암(虎踞山 邪離庵)이다.

사리암 입구

간사한 것(邪)과의 떨쳐짐(離)을 바라는 이름 같다.

당연해 보이지만 간사함(邪)과 복(福)은 공존하기 힘든가 보다.


조금씩 가빠지는 호흡과 분명 그 위치에 있다는 걸 심하게 인식시켜 주는 허벅지로 인해 700까지는 뚜렷이 세다가 그 이후는 기억조차 없는 계단을 또 한참을 올랐다.

간사한 생각조차 사치가 될 즈음 꽤 큰 암자는 늘 그렇듯 그곳에 알맞게 놓여있다.

더 높았다가는 속세의 그 험한........

사리암 가는 길

그래도 점심공양하기에는 늦은 시간인데 넉넉하게 배 곯아보내지 않으려는 듯 밥과 국, 나물 반찬을 넉넉하게 내어주니, 사탕 몇 알 입에 오물거리며 배고픔을 달래려 한 중생은 관음전과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모신 천태전에 인사도 없이 공양부터 먼저 챙기는 실례를 저지르고 만다.

사리암 점심공양


그래도 이게 다 복 아닐까도 싶어 소박하지만 참 맛게 먹었다.

사리암에서 바라 본 풍경

우리나라 불교에만 존재하고, 뭇 여린 사부대중의 크고 작은 소원을 듣고 또 잘 들어주신다고 전해지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크게 모시는 사리암은 그래서 늘 간절한 이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만 볼수있는 나반존자(那畔尊者)

기도하는 이들과 절 하는 이들의 하나하나 간절한 사연들을 특유의 긴 눈썹과 온화한 미소로 듣고 계신 나반존자께 내 소원까지 부담 지우며 인사드리고 내려오는 길의 발걸음은 올라올 때보다는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내 소원도 들으셨으니 반드시 들어주실 거라 믿으며, 올라오는 계단에 만들어 놓은 아주 작은 눈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내려왔다.


가슴속 무거웠던 짐은 이제 허벅지의 기분 좋은 통증으로 바뀌어 있었고, 사리암 나반존자께 부탁드린 소원이 꼭 이루어져 좋은 일들이 가득해지길 다시 또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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