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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Mar 25. 2023

경주 감산사에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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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요하다.


한참을 달려와 좁은 골목 같은 시골길을 그 어떤 방해물도 없이 내리 달려오다 보니, 제법 큰 절집이 무심히 서있다.


시린 하얀 목련이 져버려서 한없이 아쉽지만, 그 자리를 연분홍 벚꽃이 눈부신 햇살을 머금고 온 절집을 감싸 안고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설레게 한다.

그 벚꽃의 화려한 유혹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히 어울려 서있다.

조용하고 잠잠한 곳에서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벚꽃들 아래에서 머리를 식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어쩜 행복이 아닐는지.


작지 않은 절집이 말 그대로 절간처럼 조용하다.

지권인(智拳印)을 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세상의 이런저런 시끄러운 소음도 여기서는 그 의미를 잃어버리나 보다.


여기는 경주 감산사(慶州 甘山寺)다.

경주 감산사(慶州 甘山寺)

719년 신라 선덕여왕시기 김지성이라는 이가 어머니의 명복과 나라의 안녕을 위해 지었다는 곳이나, 지금은 그 절터에 다시 지어놓은 절집이다.


작지 않은 절 마당은 그 어떤 이도 다 받아줄 것같이 넉넉하게 펼쳐져 있고, 큰 벚꽃나무 그늘은 향기롭다.

경주 감산사(慶州 甘山寺)


미혹에 결박된 이는 볼 수 없다는 그 특유의 손모양인 지권인(智拳印)을 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신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다.

나는 그 큰 뜻은 아직 깨닫지는 못했지만 여래를 볼 수 있으니 미혹에 결박되지는 않았나 보다, 다행스럽게도.

한참을 앉아 인사드리고 나오려는데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지권인(智拳印)을 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이곳에 있었던 불상들은 국보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전시 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보게 된다면 참 반가울 것 같다.

그래도 여기서 보지 못함은 계속 아쉬움으로 남았다.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대한민국 국보)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대한민국 국보)



그래도 그나마 조금 무너지고 해져서, 감산사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은 그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걸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감산사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이곳 감산사는 불국사 아랫동네에 있어 그런지, 오가는 이가 거의 없다.


찾는 이 많은 불국사는 불국사대로 그 뜻이 있겠지만, 나는 이 조용함이 참 좋다.


고요함 속에서 오롯이 나를 생각하게 되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 위해 나도 그들을 위해 기도드릴 수 있어 좋은 곳이다.


위엄 가득한 대적광전 주위로는 어지러움 가득한 한자들로 이루어진 검은 주련(柱聯)들 대신 따뜻한 글들이 내 마음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대적광전을 빙 두른 글들 중에 글귀 하나가 가슴에 들어온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하는 대로 기울어진다.'

                       - 잡아함경(雜阿含經) -

참 고마운 말이다.

생각이 많은 나는 그래서 마음이 어지러웠나 보다.


한참을 머무르고 또 비워진 생각들 속으로 차분히 마음을 다잡고 고맙게 인사드리고 돌아 나왔다.


가는 길 가까운 곳에 영지(景池)에 들렀다.

영지(景池)

아사달이 만들고 있는 불국사 석가탑[無影塔]이 완성되면 그 탑 그림자가 비칠 거라던 아사녀의 바람 가득한 영지는 천년이 훨씬 지난 오늘도 그 그림자가 보이지 않고 있다.

아직도 석가탑을 만든 그 깊은 뜻은 완성되지 못했나 보다.

그 큰 뜻은 언제쯤 완성될 수 있을지...


내일은 그렇게 슬픈 석가탑을 보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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