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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Jan 28. 2023

울산 월봉사에서

낮에 나온 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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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태양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늘 태양은 둥글게 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내 맨눈으로 제대로 떠 있는 큰 태양을 본 적은 없지만 태양은 늘 그렇게 둥글게 떠 있었다.

물론 새벽을 가르는 바닷 위 잠이 덜 깬 태양이나 힘이 빠진 석양은 보았지만,  잠시뿐, 온전한 태양을 오랫동안 여유롭게 본 적은 없다, 볼 수없기도 하다.

어쩌면 억지로 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용기와 함께 그보다 더 많은 고통과 수고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기에 여전히 그 이글거리는 태양은 내가 보고 싶은 리스트에는 벗어나 있다.


그래, 나는 달이 더 좋다.


내게는 어둡고 또 무서운 밤에, 그리 밝지도 않없어도 그만 일 정도의 빛만으로 세상에 수 없이 넘쳐나는 빛들 속에서 그만의 독특한 포근함을 감싸 보내주는 달이 참 좋다.


늘 똑같은 모습의 태양보다 단 하루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달이 좋다.


달도 태양처럼 늘 같은 모양이겠지만 내 약하디 약한 감각기관들은 그 내면의 본모습은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단지 보이는 모습만 가지고 그 하루하루 변화하는 달에 가끔씩은 위로받기도 또 의지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변하지만 또 그 하루들보다 더 큰 틀속에서 어지러운 일탈은 없으니 그저 편안할 따름이다.


초승달, 반달, 보름달 그믐달...


싫어하는 달이 하나도 없다.

언제나 둥근달을 둥글게만 인지하지 못하는 내 둔한 감각 기관으로 보름달도 반달도 그믐달도 초승달도 다 볼 수 있어 어쩌면 그 둔함이 너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태양에게는 한참 미안하지만 말이다.


늘 언제나 아쉬운 별빛보다는 훨씬 고마운 달빛 아닌가, 강하지는 않지만 짙은 어둠일수록 희망처럼 더 간절히 밝아지는 달빛, 그래 너 참 좋다.


여기는 달을 머금은 산[含月山]에 위치한 울산 월봉사(月峰寺)다.

함월산 월봉사(含月山 月峰寺)

전하는 말에 의하면 어느 노인이 울산 방어진 동해바다 위에 있어야 할 달이 산 위에 있어, 그곳이 길한 곳이라 하여 지은 사찰이 이곳 월봉사라고 한다.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 이야기도 나오는 걸 보면 여기도 천년은 넘은 곳이다.

절 앞에는 무수히 많은 집들로 그 옛날 훤히 보였을 동해바다는 다 가려져버렸지만 말이다.


그래도 세상사 힘든 사연들을 넘쳐나는 빛들 속에서도 그만의 희망의 빛을 보여주는 달처럼 다 들어줄 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 아쉽지는 않다.


그저 곁에 있어줘서 고마울 뿐.


점심시간에 잠시 들러 작은 소망을 빌던 일본의 도심 작고 또 조용한 신사(神社) 부러웠는데, 이 절집이 그런 곳이라 참 좋다.

물론 동해바다와 대왕암 그 바위들이 보였을 풍경도 멋지긴 했을게 틀림없어 보인다.


차가운 1월의 한파(寒波)에 절집도 인적이 아쉽지만, 그래도 조용하고 차분해서 좋다.

낮에 나온 반달.......찍을 때는 왜 몰랐을까?

달을 보려고 기다리려니, 찬바람에 정월 이레 상현달 볼 엄두가 안 난다. 

<풍경(風磬) 사진 예쁜 달이 걸려 있었는데.. 왜 못 본 걸까?>

개나리 진달래가 필 그즈음 그 밤에 다시 와서 보기로 인사드리고 돌아 나왔다.


여전히 도심 속 오래된 절집의 한겨울 적막이 좋다.


정월 초이레 상현달

집에 오니, 그래도 아쉬워 차가운 겨울 하늘을 무심히 본다.

정월대보름 일주일 남겨 놓은 상현달이 옛 아이들 노래 속 돛단배처럼 떠 있다.


달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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