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요?"
93 . 53 . 13
불을 다 끄고 한참 복부초음파를 하고 있었다,
만 나이로 통일된 현재 나이로 해도 1930년생 할머니, 그러니까 93세 노인이시다.
어디가 아프시냐고 하니까, 아픈 데는 여기저기 말을 다 못 한다고 하신다,
이 나이에 아픈 곳이 없으면, 치매이거나 중풍이 와서 못 느낄 거라고도 한다.
한참을 여기저기 복부초음파를 하고 있고 있는데, 갑자기 "의사양반은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요?"란다.
"........."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 나는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할머니에게,
"그럼, 할머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세요?" 하니,
"나는 이제 진짜 늙어서 되고 싶은 게 없다"라고 하신다.
진짜 늙으면 되고 싶은 게 없어진다고도 한다.
'늙으면'이 아니고 '진짜 늙으면' 그렇다고 한다.
나는 이 할머니보다 딱 40년 어린 53세다.
50대에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는 물음이 너무 낯설다.
50을 넘어서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 대답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 순간에는 "할머니 저 나이 많아요, 53세인데요?"
그러니까 그 할머니 "그래 그러니까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시냐고?"
그 이후로도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어, 조용히 그 복부초음파를 계속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93세 그 할머니의 초음파소견은 정상이었다.
내가 이 할머니보다 40년 어리다, 그리고 지금 내 나이보다 40년 어렸을 때 그러니까 10대 학생일 때는 이런 질문을 많이 들었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그래 초음파를 겨우 마치고, 판독까지 끝내고도 나는 그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는 그 할머니의 말이 계속 머리에 남는다.
일상의 흐름대로 이제는 그냥 그럭저럭 평온하게 흘러가면서 사는 게 사는 거구나 하고 있었지만, 그 무언가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또 절실하게 노력했던 시절이 그립기도 부럽기도 했다.
젊음은 무언가가 되기 위한 꿈이 있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답을 못하고 있으니, 이제 반 정도 즈음 살았는데, '벌써 늙었구나'라고 인식하고 있었구나 생각되었다.
그 93세 할머니의 눈에 나는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 게 있을 거고, 지금이라도 노력한다면, 그 무언가 되고 싶은 것을 이룰 수도 있는 아주 젊은 그런 나이로 보였는 게 틀림없다.
그래서 아주 쉽게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게 틀림없는데, 그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으니, 섭섭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하다.
나는 답을 할 수가 없어서 또 답답하고..
괜히 50대 중반이니까 나도 참 많이 늙고 또 나이 먹었구나 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에 참 서글프기까지 했다..
늙는다, 나이 먹는다는 걸 따지고 있다 보니,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도 없었다.
나보다 40년 어린 10대 환자에게는 진료하다가 가끔씩 커서 뭐 될 거니 질문도 하면서, 그리고 그 꿈을 응원도 했었는데, 정작 나보다 40년 많은 이에게 그런 질문을 받고는 아무 말도 못 하다니 정말 서글프다.
그 할머니도 내 꿈에 응원해 주시려고 물으셨을 건데...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도 내가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이 되지 않으니, 더 서글퍼진다.
내가 그 할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뭐가 되어 있을까?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고'같은 하고 싶은 것보다, 내가 뭐가 되어 있을지가 이제 내게 숙제로 남았다.
늙음이니, 나이 듦이니 이런 말보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지를 빨리 찾아야 할 것 같다.
언제였는지도 희미해진 그 꿈 많던 그때로 돌아가게 만든 그 할머니의 주문 같은 질문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