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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생활 Mar 15. 2016

최초 라면, 불의 발견과 맞먹는 라면의 맛

라면의 맛, 경이로운 행복감


“이 배고픈 시절에 나타난 라면의 맛은 경이로운 행복감을 싼 값으로 대량 공급했다. 그 맛의 놀라움은 장님의 눈뜸과도 같았고, ‘불의 발견’과 맞먹을 만했다.”

                           - 소설가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중


  라면의 맛이 장님의 눈뜸과 불의 발견과도 같다면 좀 과장일까? 아니 우리 한국 사람에게 라면은 정말 김훈님의 표현이 하나의 과장됨 없이 진실 그대로이다. 한국 사람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라면을 사랑한다.(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잠시 접어두자)

한국은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 1위로 연간 76개(약 9.1Kg)의 라면을 먹고 있는데, 이는 1년 365일 중에 25일 정도를 라면으로 먹는다는 이야기이다. 1999년 연간 82개에서 줄어들기는 했지만 우리의 라면 사랑은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라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중국의 납면(拉麵 중국 발음 라미엔: 중국 국수의 한 종류로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잡아 늘려서 면발을 만들어 냄)이 일본에 전해져 라멘이 된 걸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우리가 오늘날 먹는 현대적인 인스턴트 라면은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가 1958년에 최초로 만들었다. 그는 포장마차에서 밀가루를 발라 생선을 튀기는 것을 보고 면을 기름에 튀겨 보존하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그리고 닛신(일청) 식품이라는 회사를 세워 치킨 국물 맛 라면을 만들어 사업을 시작한다.

라면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 게 된 건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이 있다. 원자폭탄 두 번에 항복을 선언한 일본은 피폐해진 나라 상황과 더불어 식량 문제에 직면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에 밀가루를 지원했는데, 안도 모모후쿠가 밀가루를 주원료로 해 만든 라면은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연평균 30% 이상씩 판매가 증가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1958년 처음 나온 라면은 면에 양념이 혼합된 형태라 쉽게 상하는 단점이 있었다. 일본의 또 다른 라면 회사 묘조(명성) 식품은 이를 보완해 면과 분말 수프를 별도로 포장한 라면을  1961년에 내놓는다.


한국 최초의 라면은?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5년 뒤 1963년 9월 15일, 한국 라면의 아버지라고 볼 수 있는 삼양식품의 전중윤 회장이 일본 묘조(명성) 식품과 기술 제휴를 해 최초로 삼양라면을 출시한다. 한국전쟁이 있었던 1950년대는 우리나라도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일본과 비슷하게 식량난이 심각했다.


이 시절 미군이 먹고 남긴 고기 뼈다귀, 닭다리 같은 것을 담아  끓인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죽이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 전중윤 회장은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싸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만 맛과 영양이 떨어지지 않는 식품을 만들어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했다.

1959년 일본 출장 중 한국 돈으로 30원 정도였던 일본 라면을 먹어 보게 된 전회장은 라면이 식량문제를 해결할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보험회사(현 삼성생명) 부사장까지 하던 전회장은 이후 라면 사업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 묘조 식품 공장에 견습공으로 일하며 라면 만드는 법을 배운다. 정부를 설득해 5만 달러를 지원받아 일본과 기술 제휴로 라면 기계 2대를 들여와 닭고기 국물맛의 100g짜리 삼양라면을 당시 가격 10원에 내놓는다.  

그때 자장면 한 그릇이 40원이었는데, 기름과 수프 등을 만드는 당시 기술을 고려하면 자장면 원가가 라면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되었다. 라면은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었고 라면 1개를 팔면 5전이 남아 거의 이익이 없었지만,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한 전회장의 의지로 가능한 일이었다. 라면이 인기를 끌자 값을 함께 올리자던 경쟁사의 제안도 전회장은 국민들의 배고픔 해결을 위해선 안 될 일이라고 거절한다. 1963년에 10원이던 삼양라면은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고 18년이 지난 1981년에야 봉지 당 100원 수준이 된다.

  처음부터 라면이 인기 있었던 건 아니다. 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라면을 '나면'으로 듣고 옷감, 실, 플라스틱으로 오해하기도 했고, 쌀밥을 먹어야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는 분위기도 있어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전후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도 밀가루를 거의 무상으로 지원해줬다.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 정부도 쌀 대신 밀가루 소비를 권장했고, 국물에 친숙한 한국의 식습관으로 라면은 곧 식사 대용 식품으로 정착하게 된다.


삼양라면 포장 변화 과정(출처: 삼양식품 홈페이지)



1965년에는 롯데공업이(1978년 농심으로 이름 변경) 라면 사업을 시작해 1970년에 소고기 국물 맛의 소고기라면을 출시한다. 이후 1983년 한국야쿠르트, 1987년 오뚜기식품이 라면 사업을 시작하며 라면이 국민 식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처럼 라면은 지금이야 그냥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프리미엄 제품이라고 “신라면블랙, 짜왕, 진짬뽕” 같은 가격이 조금 비싼 제품도 있지만 최초의 라면은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멋지고 고맙고 아름다운 식품이었다.


[최초의 면 음식은?]


 2005년 중국 황허강 상류 라지아 마을에서 약 4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스파게티와 비슷한 면의 일부가 발견되었다. 홍수로 얼어붙었던 것이 세월이 지나 발견된 것으로 두께가 3mm, 길이가 50cm로 밀이 아닌 기장으로 만들어진 면이다. 면발 형태의 실물 유적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때부터 면을 활용한 음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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