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 만주 하얼빈 역에서는 총 7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앞장서며 특히 을사조약과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는 등 우리나라의 국권 침탈에 큰 역할을 했던 일본 총리 출신의 이토히로부미가 이 날 죽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거사를 이룬 안중근 의사는 이토히로부미를 사살 한 뒤 “한국 만세!”를 외치다 붙잡혔고, 약 5개월 뒤 32세의 나이로 사형을 당해 순국한다.
총의 등장은 전투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무기는 더 작아져 휴대하기 편해진데다 개인의 신체조건, 힘 등과 큰 상관없이 먼 거리에서 원하는 목표를 정확하게 타격하고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가 삼엄한 경비를 뚫고 혼자 몸으로 거사를 이룰 수 있었던 건 목숨을 건 애국심도 있었지만 이런 총이 가진 힘도 컸다.
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화약이다. 최초의 화약은 엉뚱하게도 기원전 900년경 중국 당나라의 연금술사들이 유황, 목탄가루를 재료로 불사약을 만들려다 우연히 만들어졌다. 폭발 소리와 연기, 불꽃이 요란해 귀신을 쫓아내거나 폭죽, 불꽃놀이 등 행사용으로 이용하게 된다. 이후 10세기 말경 송나라에서 화창(창에 화약통 부착), 13세기에 화전 (화살에 화약통 부착) 등 화약을 이용한 다양한 무기들이 만들어진다. 서구에서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화약 제조법은 1260년 영국 수도사 로저 베이컨이 자신의 책에 남긴 것인데 실제 이를 활용해 화약 무기를 만들거나 한 건 아니다.
1279년 원나라에서 화약을 사용 한 최초의 총이 나타난다. 화총이라 불렸는데, 기록에 따르면 길이가 2m로 창과 비슷했으며 4KG 정도의 무게였다고 한다. 유물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화총은 1290년에만 들어진 걸로 추정되며 흑룡강성에서 발견되었다. 정확한 제작 연대가 밝혀진 화총은 1351년에 만들어진 동화창으로 43.5cm 길이에 방아쇠가 없이 화약을 폭발시켜 총탄을 발사해 최대 사정거리가 180m 이내로 추정되는 원시적인 형태였다.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총은 1300년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타넨베르크 총이다. 중국에서 만든 화총과 큰 차이는 없고, 150cm 내외의 길이에 2.5KG 정도가 나가는 총으로 타넨베르크 성에서 발굴되어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이러한 13~14세기에 만들어진 초기 총들은 정확도도 떨어지고 장전에 시간이 오래 걸리며 사정거리도 길지 않았다. 초속 100m 정도로 30m 이내에서 명중해도 실제 살상력은 적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16세기 들어서는 총의 성능이 크게 향상된다. 총열 안에 나선형의 홈을 파내서 발사된 총알이 회전하며 앞으로 나가게 하는 방법이 개발된 것이다. 나선형의 홈을 강선이라고 하는데 이 덕분에 총알이 안정적으로 일정하게 직진해 나갈 수 있어 정확도와 사정거리가 더욱 좋아지게 되었다. 15세기 무렵의 총이 50m 정도 사거리였다면, 미국 남북전쟁시에는 500m까지 향상되며 1차 세계 대전시에는 최대 사거리가 1.6Km 정도까지 늘어나게 된다.
발사 속도 측면에서 16세기의 총은 1분당 2번 정도 사격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18세기 방아쇠를 당기면 점화되며 발사되는 머스킷 총이 개발되고, 19세기에 규격화된 탄창이 등장하면서 사격 속도가 향상되고, 1851년에는 최초의 자동소총 보르하르트가 만들어진다. 이처럼 최초의 총이 발명된 이후 총은 정확도, 사정거리, 사격속도 이 3가지의 성능 향상에 중점을 두고 기술이 개발되어 왔다.
총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전쟁의 양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이 총알에 맞지 않도록 잘 숨고 엄폐물을 활용하는 게 중요해졌고, 숨어서 몸을 피하는 진지 개념이 전투에 들어선다. 또 개인의 신체 조건이나 힘과 같은 것은 더 이상 큰 중요 사항이 아니게 되었다.
사냥 방식도 변화가 생겼는데, 총의 사정거리가 이전의 사냥 도구에 비해 훨씬 길다 보니 어렵고 힘들게 동물을 추적하며 사냥할 필요가 없어졌다. 결국 사냥이 쉬워졌다는 이야기인데 기록에 따르면 1800년대 초 북미에 약 6,500만 마리의 버펄로가 있었는데, 1865년에 1,500만 마리로 줄었다.
심지어 1872~1874년 사이에는 400만 마리 이상이 사냥되었고, 1892년 조사에서는 1,091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버펄로 가죽과 뼈에 대한 수요가 많아져라고 하지만 버펄로의 대학살은 총과 인간이 만들어낸 생태계 파괴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것이다.
우리나라 총의 역사도 화약과 함께 시작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고려시대 최무선이 원나라의 화약 제조법을 배워 만들었는데, 당시 중국은 화약 제조법을 철저히 비밀로 했기 때문에 이를 알기가 쉽지 않았다. 1377년 고려 우왕 때 화통도감이 만들어지고 최무선은 총포, 총알, 폭탄 등 18개에 달하는 다양한 무기를 만들어낸다. 이때 만들어진 무기들은 실전 배치되어 1380년 왜구가 배 5백 여척으로 쳐들어와 약탈을 감행할 때 크게 격파해 진가를 인정받는다.
가장 오래된 총은 크게 2정으로 '홍무18년총통'과 '경희고소총' 2정이다. 총신에 홍무 18년(1385년)이라고 적혀있어 그렇게 부르는데, 길이 30.2cm, 무게 2.8Kg의 총이다. 중국제 혹은 가짜라는 의견도 있는 등 감정 결과가 완전히 정리된 건 아니지만 고려시대 화통도감에서 만들 걸로 다수의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경희고소총통으로 길이 23.7cm로 1447년 이전에 만들어진 걸로 추정된다. 이 두 가지 총은 모두 큰 화살을 넣어 발사하는 형태였다.
128개의 총기 관련 특허에 자동화기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의 존 브라우닝이 설계하고 벨기에 군수회사 FN 에르스탈에서 만든 FN M1900 총이다. 길이 172mm, 무게 625g, 7발이 장전되는 반자동 권총으로 가벼운 무게, 빠른 장전 등의 장점으로 11년간 약 70 만정이 넘게 팔렸다.
안중근의사는 아이 셋을 남기고 순국했다. 중국의 총통을 지낸 원세개는 다음과 같은 추모글을 남긴다. "평생 벼르던 일을 이제야 끝냈구려, 죽을 곳에서 살기를 도모하면 장부가 아니리, 몸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그 이름은 만국에 떨쳤네, 인생이 100세를 살지 못하나 그는 죽어서도 1000년을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