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본위너 Nov 25. 2022

외국인과의 '허그'는 어색합니다만,

그래도 가끔은 아닐 때가 있습니다.

서양인들의 자연스러운 허그를 티브이에서도 많이 보았고, 시드니에 와서도 그들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직접 접하면서도 왠지 나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었다.


나도 인사로써의 허그를 아무렇지 않게, 마치 현지인처럼 하고 싶어도 껴안으며 인사하는 순간 머릿속에 '어색함'이라는 단어가 저기 어디쯤에 끼여 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현지 교회에 가서 사람들을 접할 때도 내가 더 활발해지고 해외에 오래 있었던 것처럼 오버액션도 한다면 그 허그라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워지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왜 난 자연스럽게 안되지. 얼마나 오래 살면 이런 허그도 자연스러워지는 걸까.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호주 로컬 친구가 있는데, 왜인지 그녀와 허그로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어색한 느낌의 허그보다는 그냥 밝게 인사를 나누는 걸로도 충분했으니까. 어쩌면 어색함 없도록, 내가 먼저 허그 없는 동양식 인사로 유지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알게 됐다. 그 허그라는 것이 인사나 형식을 넘어서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손짓으로 하던, 발짓으로 하던, 서로의 눈빛과 애씀 속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과 마음이 전달되면 외국인 친구와 진심 어린 대화가 가능하다.

내가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이 오가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와 어떤 분야의 코드와 맞거나, 성향이 비슷하거나, 상황이 비슷한 그런 공감대가 있을 때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한국인 이랑 얘기할 때도 이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에 의식이 되면 이야기의 본질이 흐려진다.

외국인과 얘기할 때도 영어라는 것을 도구로 보지 않고 의식이 드는 순간 본질이 흐려지지만, 진짜 어느 순간은 상대가 누가 되었던 진짜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에 집중이 되어 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땐 상대도 그런 걸 당연히 느끼고, 이야기를 돕게 되고, 마음을 나누게 되며, 보이지 않는 '진심'들 오간다.


그날은 무슨 날이었는지,

어떻게든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이를 전하는 동안 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눈빛이 보였던 친구, 네가 그런 말을 하고 싶었구나 라는 눈빛으로 내 말을 반복해주며 열심히 나를 이해하려 했던 친구.

무언가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던 그날은 헤어질 무렵 굿바이 인사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평소에 없던 허그 인사를 했다. 어쩜 그렇게 동시에. 



허그로 의식하지 않는 허그.

인사를 넘어 이해를 담은 허그.

허그를 한 게 아니라 우정 어린 허그를

나누었다는 표현이 나을까.




진심이 때로는 언어를 넘어 설 수도 있나 보다. 진심 어린 눈빛, 진심 어린 말투, 진심으로 배려하는 행동...


친구와 허그에 진심을 담아 인사를 나눈 뒤로는 '허그는 내겐 조금 어색하지' 아니 '따뜻함을 담을 수 있는 인사법이지' 관점이 바뀌었다.


보는 것과 겪는 것의 차이. 

작게 시작하지만 커질 수도 있는 관점의 변화.

이래서 자잘한 경험도 내겐 지나칠 수 없이 소중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널 기다렸어! '자카란다' 꽃을 마주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