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우리 근로자 가요제 나가자!” 제온 선배님의 선언이었다.
“나미 너 들어오기 직전에 우리 가요제 나가서 동상 탔었는데, 몰랐지? 아델이 ‘난 괜찮아’ 불렀는데 반응이 완전 폭발적이었어.” “맞아요. 그때 진짜 몇 달을 그 곡만 연습했잖아요. 또 하고 또 하고.” “와, 그 당시 선배님들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요.” “이번엔 4년 만에 나가는 거니까, 우리가 또 무대 평정하고 오자!”
그때 스카이가 말을 꺼냈다. “방송국 측에서 어떤 곡을 할 건지, 영상으로 찍어서 보내래요.”
“얼마 전에 조용필이 새롭게 리메이크한 모나리자 하자. 감성도 새롭고,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들 다음 시간까지 연습해 와.”
하이라이트 부분을 분석해보니, 옥타브 주법의 슬랩으로 연주해야 제맛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꽂힐 후크이자 갈고리 같은 구간. 1, 3번 줄과 2, 4번 줄을 오가며, 연속으로 두 번씩 줄을 뜯는 고난도 패턴이었다.
녹화 날, 손가락을 아끼지 않았다. 리듬을 살리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촬영이 끝난 뒤 베이스를 보니 줄 아래가 빨갛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사운드를 잡겠다고 너무 무리했나 보다.
며칠 뒤,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모나리자는 윙어스의 이미지와는 좀 안 어울릴 것 같네요. 다른 곡으로 부탁드립니다.”
“아, 어떤 곡을 해야 하지?” “예전에 나미가 기타 치다가 연습 안 해 와서 혼났던 그 곡 있잖아요. Music is my life 어때요? 우리 정체성과도 딱 맞잖아요.” “좋아요! 멜로디도 좋고, 가사도 좋고.” “좋아. 대신 나미가 하던 락 버전 말고, 팝 버전으로 하자. 보컬도 애리얼 혼자 하지 말고, 아델, 하니, 스카이가 같이 코러스를 넣어.” “매니저님, 락 버전이 더 신나지 않아요? 기타는 제가 그땐 연습 부족했지만, 이번엔 베이스 확실히 해올 수 있어요.” “아냐. 가요제 무대는 보컬이 여럿이 나가야 풍성해. 락 기타 리프는 하모니랑 부딪히고, 조금만 삐끗해도 전체를 망칠 수 있어. 그리고 이 곡 들어보면 느끼겠지만 기타 리프도 실제 연주가 아니라 컴퓨터로 찍은 거야. 그래서 어색했던 거지.”
역시 제온 선배님의 분석은 정확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컬들은 분량을 나누고 화음을 맞추느라 분주했다. “인트로는 애리얼이 하고, 그 다음은 내가 이어받을게. 그 다음엔 하니가 부르면 딱이겠다. 같은 멜로디를 각자 바톤터치하듯 솔로로 이어가는 거야.” 아델 선배가 먼저 구조를 짰다. “전 혼자 남자니까 똑같은 멜로디 말고 변주 구간 부르면 좋겠어요.” 스카이가 말했다. “좋아. 처음이 애리얼이었으니까, 마무리도 애리얼이 하는 걸로 하자.” 보컬들이 낯선 화음을 익히는 동안, 세션들도 박자와 리듬을 맞춰갔다.
녹화 당일. KBS 별관 대기실.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손길이 분주한데, 이 모든 게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방송국에서 공연을 하다니.’
다른 팀들과 함께 대기실에 앉아 조심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우리처럼 밴드 구성으로 나온 팀은 두어 팀 정도, 대부분은 솔로나 듀엣, 합창팀이었다. 그들은 방송국 소속의 전문 밴드가 반주를 해주고, 우리는 모든 걸 자급자족해야 했다. 작은 실수 하나도 눈에 띄는 무대. 그래서 나는 대기실에서도 손가락을 쉬지 않고 풀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멤버들의 표정이 무거웠다. “우리 아직 안 끝났어. 실전 때는 그냥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좀 더 편하게 해보자.” 제온 선배가 힘을 북돋았다. “네! 파이팅이에요!”
조금 뒤, PD가 부른다. “윙어스 이제 나가실게요.”
“참가번호 13번, 윙어스!”
“Music is my life, music is my life, oh music is my life, sunshine my light—”
애리얼의 무반주 솔로로 곡이 시작되었다.
제온 선배님의 드럼 박자에 맞춰 손과 발을 맞춰 보았다. ‘어? 박자가 리허설보다 더 촘촘해졌네? 어떡하지? 이제 와서 바꿀 순 없어. 하던 대로 정박으로 가자.’
그런데… ‘잭 선배님의 기타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 왜지?’ 리허설에선 분명 잘 들렸던 기타가, 본 무대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다행히 보컬과 키보드는 아주 잘 들렸다. 아슬아슬한 무대가 이어졌다.
모든 팀의 무대가 끝나고, 시상식이 시작됐다. 동상 수상자 명단에 우리는 없었다. ‘아, 우리 이번엔 상 못 받는건가.’
“이어서 은상 시상하겠습니다. 참가번호 13번, 윙어스!” “와아아!” 우리는 박수를 치며 무대로 뛰어올랐다.
아나운서가 주미에게 물었다. “하늘 위를 나는 특별한 분들, 어떤 이끌림으로 이렇게 모이게 되셨나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캐빈 승무원 중,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윙어스 밴드입니다.” 주미는 자연스럽게 미리 외운 듯 동문서답처럼 대답했다. 그래도 귀여웠다.
뒤풀이 시간, 아쉬움들이 하나둘씩 흘러나왔다. “잭 선배님 기타 소리 하나도 안 들린 게 너무 아쉬웠어요.” “저도요. 리허설 땐 잘 들렸는데…”
“매니저님, 드럼 방식 바꾸신 거죠?” “어, 티 났어? 베이스는 정박으로 두고 드럼은 변주를 넣으면 더 훌륭할 것 같더라고.”
“나는 음이 살짝 떨어진 것 같아.” “에이, 선배님. 아무도 몰라요.”
삶을 노래하는 무대. Music is my life.
비행만 하기엔 아쉬운 우리에게 딱 맞는 곡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지켜온 우리 멤버들에게 바치는 듯한 이 노래로,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고, 깊은 기쁨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