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생존법 - 수호
몰디브에 가려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지를 바꾼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기꺼운 선택은 아니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섬처럼 세워진 풀빌라에서 아침이면 수영을 하고 저녁에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챙겨간 소주를 마시리라 꿈꿨다. 해외출장은 많이 다녔지만 제대로 여행할 기회는 없었던 수호는 이번 신혼여행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몰디브는 못 간다 해도 사면이 바다인 제주에 가는데 오션뷰 정도는 될 거라고 당연히 생각해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도착해 보니 아내가 예약한 호텔은 제주시에 위치한 레지던스 호텔이었다.
- 벽면 뷰네! 뉴욕 온 줄.
- 아냐 오빠. 이쪽 보면 공원도 보여. 오빠 이쪽으로 누울래?
- 아냐. 나 도시 사람이라 도시뷰 좋아햐. 뭐 비도 주룩주룩 내리는 것이 런던 같기도 하고. 샷시가 낭만적인가 닫아도 빗소리가 잘들리는구만!
수호는 서울에서 두시간은 넘게 걸리는 시골 출신이었다. 대학교 입학 이후로 줄곧 서울에 살았지만 스스로를 서울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서울에 와서 놀란 것들이 많았지만 논에 빡빡히 심긴 벼만큼 많은 사람과 차들 그리고 도무지 알 수없는 서울깍쟁이들의 속내는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아내는 이상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심해의 해파리처럼 속이 훤히 보였다. 원래 문과형이라고는 하지만 계산은 둘째치고 영문과를 나왔음에도 기브 앤 테이크도 잘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내가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수호는 알았다.
몰디브가 어이없이 제주도가 된 것은 장인어른의 사업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아내가 그런 아버지를 외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수호가 그런 아내를 슬프게 만들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수호의 생각으로 몰락하는 장인의 사업에 돈을 더 넣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었다. 아내의 오랜 적금들이 그 독의 구멍으로 여과 없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내인들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장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처럼 정이 많고 사람들에게 야박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업이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내의 어린 시절에는 무슨 운인지 사업이 잘 되어 여유로운 생활을 했고 장모의 수완으로 서울 요지에 두 채의 집과 땅도 제법 있다고 했다. 하지만 수호가 아내를 만났을 무렵에 이미 땅은 한떼기도 남아있지 않았고 마지막 남은 집은 배포 배꼽이 더 큰 대출을 이고 지고 있었다. 그나마 과거의 영광과 본인의 노력으로 유명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던 아내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마지막 한 채의 집에 빨간딱지가 붙었을 때 야무졌던 장모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했다. 아내와 형제들의 키가 연도별로 새겨져 있던 주방과 거실을 나누는 나무벽에 주저앉아 멍하니 있는 엄마를 보고 온 아내가 수호를 찾아와 부탁했었다. 그렇게 몰디브는 제주도가 되고 전셋집은 월세집이 되었다. 수호에게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수호가 말하지않았기에 사정을 모르는 수호의 집에서는 결혼 과정 내내 맘에 안 들어했지만 다행히 대놓고 비난하진않으셨다.
그래도 제주시 벽뷰는 수호의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수호는 아내의 쪼그라든 씀씀이만큼 옹색한 허니문이 자신들의 미래가 될 것 같아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 기분을 털어 던지고싶어 아내가 말한 공원 쪽 창문을 활짝 열고 고개를 쑥 내밀었다. 비가 채 그치지도 않았는데 구름 한구석에서 해가 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 어! 무지개다! 자기야! 이거 봐!
아내가 쪼르르 달려왔다. 건물에 가려 다 보이진 않았지만 공원 끝에서 빨주노초파남보가 선명한 무지개가 하늘을 향해 로켓처럼 뻗어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