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생존법 - 기현
- 잔나비 띠면, 어디 보자. 92년생이니까 지금 33살인가 아니 올해 대통령이 전 국민 나이를 어리게 만들어줬으니까 32인가?
- 아니요. 전 80년 생이거든요.
- 아이고. 아주 젊어 보이시네.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기현은 작은 소반 앞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엄지와 검지, 중지를 땠다 붙였다 했다. 신당 아래 기현이 앉은자리 앞의 소반 위에는 한자가 적혀 있는 책자와 쌀알이 들어있는 작은 스텐밥그릇, 조선시대에나 쓸 법한 엽전 같은 것이 몇 개 놓여 있었다. 기현은 뭔가 잘 안 풀리는 듯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내 금빛의 무당방울을 잡고 요란스럽게 흔들어댔다.
- 응. 남자가 딴 데를 보는구나. 마음이 썩어 문드러져.
- 저희 남편이 말인가요?
- 그럼 남자가 또 있냐!
-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사업이 고민이라.
-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야. 사업은 걱정하지 마라.
- 아. 네.
- 남편 얼굴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구나. 올해 잘 넘기면 재산은 알아서 들어올 팔자다. 가만히 고삐 잘 잡고 있으려면... 어디 보자.
기현은 쥐고 있던 무당 방울을 내려놓고 밥그릇의 쌀알을 던지고 쌀알 사이를 손으로 이리저리 가르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였다. 슬며시 샛눈을 뜨고 앞을 보니 손님의 표정이 똥 싸다 만 사람같이 찝찝해 보였다. 선불로 받은 5만 원 권 속 노란 신사임당이 기현의 속도 모르고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황학동 중고시장에서 산 낡은 엽전 세 개를 상위에 대차게 던졌다. '캥' 하는 소리와 함께 소반 위의 쌀알이 사방으로 튀었다.
- 방법이 있네.
- 사업에 대한 거 말인가요 아니면 딴 눈 파는 거 말인가요?
- 두 개면 두 배인데 이번에는 특별히 합쳐서 하나로 해주는 거야.
기현은 온라인 사주팔자와 운세 속성반에서 만난 선생님에게 백만 원을 주고받아온 부적상자를 꺼내 왔다. 손님의 자리에서는 안 보이지만 기현의 자리에서 보면 노란 종이 바닥에 커닝페이퍼처럼 테두리가 살짝 보여 그 테두리를 따라 붓질을 하면 감쪽같이 고퀄리티의 부적이 완성되었다. 부적상자 밑에는 선생님에게 10만 원을 추가로 내고받은 신 발이 높아지는 부적도 함께 붙어 있었다. 얼렁뚱땅 부적까지 하나 써서 잔나비 띠 손님을 보내 버리니 등이 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나이는 먹어서 몸은 여기저기 아픈데 되는 일은 없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기에는 써주는 곳도 별로 없거니와 체면도 말이 아니었다. 혼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시작한 일이 점쟁이였다. 유튜브로 공부를 하다,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 큰 맘먹고 유료 수업을 듣고 컨설팅을 받았다.
그렇게 신당까지 차린 지 이제 석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원래 살던 원룸 한편에 신당을 차리고 거기서 손님을 받으면 초기 비용은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 근본 없는 기현에게 손님이 와 줄리 만무했고 결국 카드대출을 받아 SNS 마케팅까지 하고서야 한두 명씩 연락이 오기시작했다. 하지만 손님이 와도 안 와도 고민이었다. 이제 기억력이 가물거려 방금 들었던 얘기도 까먹을 판에 띠와 시에 따른 운세를 외우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다른 일을 시작하자니 몇 달간 고생하고 투자한 돈과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기현은 유튜브로 주역 64괘 강의를 틀어놓고는 신당 밑에 넣어둔 컴퓨터를 꺼냈다. 자신의 컴퓨터가 고장 나서 추석 연휴에 만난 동생의 노트북을 빌려왔더랬다. 노트북이라 데스크톱과는 사양이 비교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오늘은 기현이 즐겨하는 게임의 새로운 버전이 오픈하는 날이었다. 좀 전에 점을 보던 때와는 달리 기현의 눈빛에 총기가 돌았다. 기현의 마음속에는 이미 천군만마의 함성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온갖 아이템으로 무장을 한 기현의 캐릭터는 게임 안에서는 모두의 존경과 부러움을 독차지했다. 이 안에서 기현은 어떤 신 발 날리는 무당도 부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