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li Whale Jan 21. 2024

트러스트 by 에르난 디아스 (스포있음)

티키타카 독서모임 2024년 1월

★★  '현실을 조정하고 구부리는' 작가의 계획 

트러스트는 1929년 10월 29일 미국의 경제대공황 시기를 살아간 월스트리트 가의 성공적인 금융가 '엔드루 베벨'과 그의 부인 '밀드레드 베벨'에 관한 미로 같은 이야기다. 다 읽기 전에 몰랐지만 다 읽고 나서야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래서 밀드레드는 어떤 사람인가?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책 속의 소설인 1부. 해럴드 배너의 <채권>, 주인공 엔드루 베벨의 꾸며진 자서전 미완성 본 인 2부. 나의 인생, 나의 인생을 대필한 작가 아이다 파르덴자의 시선으로 적은 3부. 회고록을 기록하며, 밀드레드의 죽기 전에 쓰인 일기 형식의 4부. 선물이다. 


처음에 1부를 읽을 때 책 속의 소설이라고 알고 봤는데 뭔 얘기인가 하여 다시 리뷰를 찾아봤었다. 말 그대로 책 속의 책으로 실제 이 책의 주인공 '엔드루 와 밀드레드'의 삶을 해럴드 배너가 소설로 만든 것이었다. 그 책의 내용에 분노한 주인공 베벨이 자서전을 써서 자신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책의 내용을 일반인들에게 다시 만들어 주려고 한다는 것을 3부를 읽을 때 알게 되었다. 그러니 이 책은 독자에게 그렇게 친절한 책은 아니다. 


2부까지 읽었을 때는, 도대체 왜 퓰리처 상을 타고 유명한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추천을 했나 의아했다. 3부를 읽고 4부를 다 읽었을 때에야, 비로소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이 때는 밀드레드 베벨이 요새 많이 나오는, 능력이 출중하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베일 속에 살아야 했던 여성 같았다. 남편의 유령작가로 살았던 19세기말 프랑스의 실제 작가였던 콜레트(2019)처럼 말이다. 1부와 2부에서 속이려고 했던 진실을 3부와 4부에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4부에서 모든 의문이 해결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시대에 희생당한 여자에 대한 얘기라고 믿었을 때는 조금 뻔해서 김이 샜다.     


하지만 독서모임을 하며 사람들과 이 소설의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를 하며 나는 다시 무릎을 탁 쳤다. 당연히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일기 형식의 4부에서 보이는 밀드레드의 모습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4부 일기 역시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시중의 수많은 자서전과 일기형식의 글들 조차 거짓인 것과 같이 말이다. (이런! 똑똑한 작가 같으니라고!) 


밀드레드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여러 번 바뀌었다. 

1부 - 소설가가 보는 밀드레드. 천재지만 정신병에 걸려서 비참한 죽음을 맞은 부잣집 마나님

2부 - 베벨이 보는 밀드레드. 극도로 내성적이며 친절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아내. 암으로 죽음. 

3부 - 베벨의 대필작가 아이다가 보는 밀드레드. 예술과 문학에 조예가 깊고 굉장히 치밀하고 천재적인 여성.

4부 - 밀드레드 본인이 말하는 밀드레드. 20년대의 경제를 뒤흔든 보이지 않는 손 뒤의 진짜 손! 암으로 사망. 

그 후 - 4부에서 밀드레드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말한 것이 맞나?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이라는 생각에 다시 그녀의 정체는 미궁에 파묻힘 


처음에는 엔드류만 "현실을 조정하고 구부린다"라고 생각했지만 (이 말은 책 여기저기에 나온다.) 책을 다 읽고는 책 속의 주인공들은 물론 작가 역시 현실을 조정하고 구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증거가 그 책을 읽고 나는 수차례 조정당하고 구부려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금융 관련 소설인 줄 알고 읽었다가 탐정소설을 읽은 것처럼 반전에 반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작가는 책에서 아이다의 입으로 전한 것처럼 우리가 "그냥 독자가 아닌 탐정"(p.283)이기를 바란 것 같다.


명쾌하지 않아 답답했지만 오랜만에 재밌는 소설을 읽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