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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Feb 15. 2024

숙제하는 남편 칭찬하는 아내

설연휴를 맞아 지난주부터 베트남에 있는 언니네집에 와있다. 나는 연휴를 끼고 일주일간 휴가를 내어 아이와 함께 오고 남편은 집에 있기로 했다. 가고 싶은지 물으니 집에 있고 싶단다. 그는 원래 집에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하고 운전을 싫어하니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작고 마른 남편은 사시사철 침대 이불속에 샌드위치에 햄처럼 끼어서 빼꼼히 얼굴만 내밀고 있는다. 처음에는 휴가를 써서 같이 갈까 했으나 좋아하지 않는 일에 큰 비용을 쓰는 것이 아까워 원하는 대로 하라하니 남겠다며 세상 밝게 웃었다.


해외여행을 간 것은 나인데 가장 행복한 이가 혼자 집에 있는 남편 같았다. 그는 느지막이 일어나 강아지 산책을 가고 천천히 아점을 먹고 여유롭게 출근을 했단다. 나의 건강식 대신 최애 라면과 맥주를 냠냠촵촵 먹고 내 것인 리모컨을 손에 쥐고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 늦게 자는 듯했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놀아달라고 매달리는 아들도 없으니 세상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었다. 혼자 남는 것을 너무 좋아하니 얄밉기도 하고 서운한 마음도 드나 이 또한 괜찮다.


그는 줄곧 그랬다. 하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투덜거리지도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사람, 사람 많은 곳은 사람 살 곳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다.


결혼 초기에는 그가 나와 함께 하는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서운하고 싫었다. 나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게 좋지만 그는 매일 동네 개천을 산책하고 주말엔 뒷산을 오르고 걸어가도 되는 거리의 정해진 음식점에 가는 것이 최고인 사람이다. 세상 곳곳을 그와 함께 가보고 싶었고 공연도 보고 전시회도 같이 가고 그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다 말하지 않게 되고 함께 가도 기쁨이 절감됐다. 그와 나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외롭고 참다 보니 짜증이 났다.


그때 친한 친구의 언니가 그랬다.


"시켜도 안 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하자고 해서 하면 됐다!"


공부가 좋아서 하는 학생이 몇이나 되겠는가. 싫어도 하는 아이가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우린 안다. 남편이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날 위해 해주는 것이 감사한 것이지 하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가 우리 관계를 위한 숙제를 하려 하는 것 만으로 그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그에게만 의존해서는 그가 불행해지고 그렇다고 그를 완전히 배제해서는 우리 사이가 삭막해진다. 그러니 관계를 위한 숙제는 너무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부부사이에서 다 채울 수 없는 나의 욕구와 결핍은 스스로 채울 수 있어야 한다. 남편은 언제나 쓸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니…


며칠정도는 남편 없이 친구나 가족들과 여행을 가기도 했지만 일주일 이상 가는 것은 처음이라 그가 없이 행복할까? 하는 헛된 걱정을 지만  아주 즐겁게 여행을 마쳤다. 어쩌면   여행도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듬뿍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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