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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Jan 15. 2023

C. 등이 시린 아이

오직 공감.

상담을 하다 보면 유독 기억에 남는 내담자들이 있습니다. 사연이 기구하여서도 있고 그 순간에 나의 감정이 너무 깊이 이입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상담센터는 정신건강복지센터나 건강가정지원센터도 있지만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것은 청소년 관련 상담센터입니다. 지역마다  있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꿈드림 센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 수련관에서 운영하는 상담센터, 가출청소년을 위한 쉼터, 학교 안의 위클래스 등 많은 기관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상담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많은 경우 무료이고, 심리검사에 최소 비용이 청구되기도 하고 지역이나 기관에 따라 사설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선진국과 견주어도 우리나라만큼 다양한 매체로 지역 곳곳에서 청소년을 위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고 자부합니다. 그렇기에 정말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이 어렵지 않게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기관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거나, 부모 손에 이끌려 억지로 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상담을 시작하고 초창기에는 지금처럼 사설센터가 많지 않았고 대학원을 졸업하면 의례 지역의 청소년상담복지센터나 한국청소년상담복지센터로 취업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만난 내담자인데요.


C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입니다.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혼자 상담 신청을 하고 찾아왔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보이지도 부모 손에 억지로 온 것도 아니었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상담을 덜 찾았습니다. 그 당시 제가 일하던 지역 센터는 12회까지 무료 상담이 가능했는데 그 기간 동안 C는 홀로 상담실에 왔습니다. 보통은 청소년 같은 경우 부모님 중 한 분이 같이 와서 아이가 상담을 받는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리시고 아이의 상담이 끝나기 5~10 분 전쯤 상담사와 만나 부모 상담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C는 처음 부모님의 상담동의를 받을 때 아버님과 통화를 한 번 하고, 마지막에 아버님께 여러 번 연락하여 잠깐 따로 뵈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왔는지 무엇이 힘든지에 대해 초기면접 상담을 하는데 C의 호소문제는 우울감과 무기력이었습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보통의 중2들은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감정이 쌓이면 왈칵 화를 내거나 비행을 저지르기도 하는데 C는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슬픔도 외로움도 꾹 누르며 참았습니다. 더 정확히는 체념했던 것 같습니다. 해도 소용없을 때 어쩌지 못하고 선택하는 체념... 그러니 자신도 모르게 우울하고 무기력해져 스스로도 왜 그런가 걱정되던 차에 학교에서 하는 심리검사에서 심한 우울이 나오면서 선생님의 권유를 받고 상담 신청을 했던 것입니다.


내담자마다 각자의 고통과 그 고통을 해소하고자 바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 고통과 그 기대를 명확히 알고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 상담자의 역할이고요. 하지만,  C의 바람은 누군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해한 아이의 바람은 과녁도 화살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 그 아이와 함께 있어주는 것이었습니다.  


C는 상담실에 올 때마다 지금의 또 과거의 슬픔을 담담히 얘기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고 지금은 또 그때는 어떤 감정인지 표현하는 것도 어려웠으니까요.


한 번은 "집에 있을 때 너는 어떤 기분이니?"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C는 한참을 생각해도 표현을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펜과 종이를 주고 그려보라고 했지요.


C는 하얀 A4종이에 검정펜으로 베란다에 있는 자신의 뒷모습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집 안에서 보는 시선 속의 C는 닫힌 베란다 문 너머로 홀로 밖을 보며 서있었습니다. 명암도 색도 없는 선으로 된 단순한 그림인데 짙은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C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눈물도 흘리지 않고 먹먹한 얼굴로 쓸쓸함을 견디고 있을 표정이 선했습니다.


"집에 있으면 베란다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에요."


C는 초등학교 때 지금의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친척들의 대화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놀라기도 했지만 이제까지 엄마의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엄마랑은 어릴 때부터 거의 신체접촉이 없었고 어쩌다 손이 닿으면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 어린아이에게도 느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C는 침묵했습니다. 자신이 엄마의 아들이 아니라는 충격도, 엄마의 서늘한 태도에 대한 서운함도, 이 모든 사실을 알지만 요원했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도, 자신이 이 집에서 이방인이라는 소외감도 꾹 꾹 눌러 담았습니다. C는 문제를 만들지 않았지만 활발하지 않았고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않았지만 사고 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아이로 지내왔습니다. 가족의 비밀은 어느 순간 조금씩 더 드러났고, 공식적으로 선포하지 않았지만 C가 지금 엄마의 아들이 아닌 것은 누구나 아는 비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C는 집 안도 밖도 아닌 베란다에서 안이 아닌 밖을 바라보며 마음의 벽을 쌓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보살펴 주지 않으면 귀신같이 티가 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가 아니어도, 가정에서 사회에서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헐벗어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아닌데 언제나 겨울 같은 추위가 뽀예야할 아이들의 손등을 거칠고 부르트게 합니다.


C의 그림을 보고, 이 아이의 얘기를 듣고 말로 감정을 꼭 집어내지 않아도 그 감정이 심장으로 쑤욱 들어와 박혔습니다.  


"외롭고 쓸쓸했겠네...... 울어도 되는데 눈물도 나지 않아 먹먹하고 답답해서 어떻게......"


C의 슬픔을 표현할 말이 너무 궁색하여 부끄러웠습니다. 아이의 눈가가 붉어졌지만 끝내 눈물은 흐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C는 12번의 상담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혼자 왔습니다. 어느 때는 씩 웃어 보이기도 했고, 어느 날은 혼자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왔다고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슬픔이 가득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고, 얘기하니 편하다고 감사하다고도 했습니다.


예전에 김은숙 작가님의 '도깨비'라는 드라마에서 홀로 졸업식에 앉아 있는 신데렐라 같은 주인공 은탁이에게 빨간 원피스를 입은 삼신할머니가 다가가 축하를 해줍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가며 은탁이를 한 번도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은 선생님에게 얘기합니다.


"아가, 더 나은 스승일 수는 없었니? 더 빛나는 스승일 수는 없었어?"


라구요. 상담을 하면서 왜 C의 부모는 아이에게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최선이었는지, 좀 더 나은 어른 일 수는 없었냐고 좀 더 나은 부모일 수는 없었냐고 비난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아이가 바라는 것은 부모의 욕을 같이 해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기에 상담은 그 마음에 집중해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10년이 넘은 지금도 그 아이의 슬픔과 어른들에게 갖는 안타까움이 함께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이제 C는 성인이 되고 아마 군대도 다녀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을 겁니다. 그 이후로 다시 C를 보지 못했지만, 분명 다른 사람의 슬픔을 알아주는 따뜻한 어른이,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도 챙기는 건강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 믿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더 빛나는 사람이 되었을 거라 믿고 기도합니다.  




상담에서 어떤 순간은 오직, 공감 만이 충분한 때가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추운 베란다에서 잠시나마 함께 어깨를 맞대고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의 온기 일 것입니다.


제가 그 빛나는 아이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고생 많았다고 꼭 안아주고 싶었던

온기가 되기를 바랐음을 아이도 알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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