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li Whale Jul 08. 2024

지금도 잘 모르는 아빠

아빠라는 미로 앞에 무기력한 딸

지난주에 아빠가 복통이 너무 심해 응급실에 가셨는데, 알고 보니 급성 담낭염이어 응급 시술을 받고 입원을 하셨다. 다행히 나도 남편도 일하지 않는 날이라 함께 서울의 병원으로 출동했다. 아빠는 배가 아파 며칠간 밥을 거의 못 먹었다며 아픈 곳에 대한 (구구절절한) 정보를 자세히 주었다.  아빠의 말대로 얼굴은 핼쑥해져 있었고 힘도 없어 보였다. 아빠는 참 평생을 짠하다.  


아빠의 침상 옆 선반에 아빠의 커다란 백팩이 놓여 있었다. 아빠는 백팩에 온갖 것을 다 넣어 다니는데, 내 기준으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번에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은 지퍼는 고장 나고 주머니는 찐득거리는 낡은 백팩이었다. 노숙자도 버릴 것 같은 가방을 몇 년째 매일매일 가지고 다니신다. 문제는 아빠에게는 분명 새것이 있다는 것이다. 옷도, 가방도, 신발도. 새것이 있지만 낡은 것을 쓰신다. 그러면서 집에는 쓰지 않아 유통기간이 지나고 유행이 지나고 필요가 없어진 물건들을 켜켜이 쌓아둔다.


아빠는 물건을 쟁여두는 취미가 있는데 아주 병적이다. 젊어서는 돌을 수집했는데 그 덕에 엄마는 버리고 아빠는 숨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하루는 엄마가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 집 지붕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는 돌들을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아빠가 엄마 눈을 피해 아이 머리통 만한 돌들을 지붕 위에 옹기종기 올려놓았던 것이다. 옛날이라 주택에 연탄을 쌓아두던 창고가 있었는데 기름보일러로 바꾸고 난 후에는 쓸 일이 없어지자 아빠의 물건들이 한가득 쌓이게 되었다. 아빠가 사업을 때려치울 때마다, 한 번은 가발이 쌓이고 한 번은 장갑이 쌓이고 한 번은 미싱이 쌓였다. 빨간 벽돌로 지은 2층 집 지붕에는 어디 쓸데없는 바위돌이 숨겨져 있고 지하와 1층에 있는 창고에는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습관은 지금  심해져서 병적인 저장강박이 되었다. 아빠 집의  하나에는 짐들이 테트리스의 완성판처럼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시간이 많으니 여기저기 산책을 하면서 고물을 주워오기도 하고, 아직도 현역에서 미싱을 고치고 파는 일을 하니 고물을 접할 기회가 많아 버리지 못하고 창고에 쌓아둔다. 유통기한이 10년은 넘은  같은 통조림에서 30년은  되어 보이는  면도기, 정체불명의 잡동사니가  번도 빛을 보지 못하고 쌓여만 있다. 언제가   것이라는 말을 나는 40 넘게 듣고 있는 것이다.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라고 하면 나에게 집으로 오지 말라고 버럭 화를 낼뿐 버릴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80  되어 가는 연세에 굳이 창고를 임대하여  50 원씩 지출하시는데,  창고가 결국 내가 치워야  쓰레기통이   같아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아빠는 분명 불안이 없는 태평하고 긍정적인 사람인데 어째서 저렇게 모으는 것일까? 엄마의 평에 따르자면 워낙 좀스러워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한다고 하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언제 쓸지 모르면 그때 사면 되지만 아빠는 언제 쓸지 모르니 무조건 쟁여둔다. 아까워서 도대체 버리지 못한다. 이미 10년도 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필요할 거라는 거짓 신호를 계속 믿는다. 거기에 이제 15년 전에 진단받은 경도인지장애는 수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로 진행되었다. 쟁여두고 까먹고 또 사는 일들이 반복되며 아빠의 짐은 잃어버린 기억과 함께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가끔 무엇이 답인가?라고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답이 없으니 그렇다.  그 나이의 아빠를 변화시키려 한다고 바뀌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나도 내 생활이 있기에 아빠에게 집중하기는 어렵다. 나는 아빠의 아내가 아니고 같이 살고 있지도 않으니 제 3자로 지켜볼 뿐이다. 아빠가 돌아가시면 폐기물을 버려주는 트럭을 불러 정리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귀결이다.


내가 대학생 때, 아빠는 마지막으로 한 방을 끌어 모은 사업에서 크게 사기를 당하고 부도가 난 적이 있었다. 아빠는 가족과 떨어져 어쩔 수 없이 혼자 살았는데, 소송에 걸려 법정까지 가야 했다. 그때도 내가 덜덜 떠는 아빠와 함께 법원에 가주었다. 아빠는 법원에 들어가기 전에 말씀하셨다.


- 아빠 못 돌아오면 아빠 방 옷걸이에 검정 양복이 걸려있는데 거기 안 주머니에 금색 만년필이 있어. 진짜 금이니까 꼭 네가 가져가. 이불 깔려 있는 장판 밑에 얼마가 있는데 그것도 네가 챙겨가고.


아빠는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얼굴로 마지막 금붙이와 현금의 위치를 나에게 유언처럼 남기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법정에 들어갔다. 나는 아빠가 소심한 것을 알았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내 예상대로 아빠는 세상 밝은 얼굴로 법정에서 나왔다. 나는 그때도 아빠가 바로 구금될까 봐 걱정이 된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아빠의 금으로 된 만년필과 현금 소액을 챙겨놔야 한다면 아빠의 짐으로 가득한 미로 같은 집에서 어떻게 찾을지가 더 걱정스러웠다. 지금은 더욱 복잡한 미로를 헤매는 그는 나의 아빠이지만 여전히 미궁이다.


나는 미로 앞에 무기력한 딸이다.

 

아빠는 시술을 잘 받고 아직 입원해 계신다. 시술을 하신 날 내가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에는 간병인을 불렀다. 아빠는 마약성 진통제를 맞는 상황이지만 내 밥을 챙기고, 내 잠자리를 걱정했다. 그날 나는 정말 잠을 거의 못 잤다. 나도 모르게 잠깐 잠이 들었는데 가위에 눌렸다. 내가 소리를 빽빽 질렀다며 아빠가 새벽에 일어나 나를 깨웠다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빠를 이해하는 일은 미로 앞에서 좌초했지만, 그냥 그런 아빠 옆에 있는 것은 그가 나의 아빠이기 때문이다. 아빠도 평생 이 까다롭고 지랄 맞은 딸을 이해하는데 실패했겠지만, 그럼에도 나를 애틋이 여기는 것은 내가 그의 딸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가 컨디션을 좀 회복했을 때, 제발 그 가방은 이제 버리라고 닦달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 가방이 편하단다. 아빠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에 해외에서 한국으로 잠깐 들어오는 언니에게 아빠의 새 가방을 좀 사 오라고 얘기했다.

이전 12화 나는 야망계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