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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Jul 01. 2024

나는 야망계급

인가? 

지난주에는 매월 1회 있는 독서 모임에 다녀왔다. 

1대 있는 차는 가정경제에 4번 타자를 담당하는 남편이 타고 가고 나는 튼튼한 두 다리로 버스 서너 정거장쯤은 걸어 다닌다. 아들이 학교 체험활동에서 받아온 에코백을 메고 할인매장에서 80% 할인해서 구매한 운동화를 신었다. 우리 집에서 약속 장소 까지는 개천을 따라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차 없는 길이 있고, 원한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산길로 이어지는 둘레길을 이용해서 갈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은 녹지가 많고 사람들이 여유로운 현재 사는 동네를 매우 좋아한다. 이 동네를 매일 오전 남편, 반려견 짜구와 함께 산책하고, 주 3일을 쉬기 때문에 여행도 자주 다닌다. 나는 명품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부는 없지만, 1주일에 책 한두 권 정도는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있고, 내가 원하는 요일을 지정해서 일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지금 삶을 만족하기 때문에 자식도 나와 같은 정도의 사회경제적인 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에 읽은 책은 엘리자베스 커리드헬킷의 야망계급론이다. 

저자는 과시적인 소비보다 정신적인 소비로 자신의 지위를 구별 짓고자 하는 새로운 계급을 '야망계급'이라 일컫는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시간 일하여 번 돈을 자식의 교육과 건강, 은퇴 후의 삶, 여가와 문화생활 그리고 옳은 가치에 투자한다. 저자는 야망계급의 비과시적인 소비문화가 과거의 물질적인 소비문화보다 거 유해하다고 비판한다.  

이는 실제 중간계급의 몰락과 함께 사회적인 불평등을 야기하는 중요한 사회문제로 보고 있다. 그 세부적인 예로 교육에 대한 투자와 그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지위, 그로 인한 지위의 세습을 말한다. 여성의 모성도 그로 인한 선택도 옳고 그름이 아닌 내가 가지고 있는 경제력과 문화적 습득량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뭔가 불편했다. 


나는 나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맞게 꼭 필요한 소비를 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갑자기 사회적으로 유해해진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가치에 있어 그랬다. 

내가 반려견을 기르면서 가지고 있는 생명존중에 대한 가치가 있었다. 짜구는 생명이기 때문에 사고팔지 않는 것, 학대하지 않는 것, 원재료가 명확한 사료나 간식을 사 먹이고 필요한 의료혜택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되었고 심지어 유해하다고 하니 억울했다. 

하지만 동물복지 계란을 사는 대신 마트에서 세일하는 난각번호 4인 계란을 구매하고, 공정무역 원두가 아닌 가성비 좋은 매머드 커피의 2200원짜리 라떼를 사 먹는다. 결국 내 가족, 내 눈에 보이는 생명만 잘 챙기고 시야에서 벗어난 사회적 부조리에는 비용을 더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윤리적이지 않은 소비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이 억울함과 부끄러움의 이면에는 타인에 대한 혐오와 우월감이 있었다.   


동시에 개나 고양이를 사고팔고, 1m 남짓의 끈에 묶어두고, 잔반이나 원재료를 알 수 없는 싸구려 사료를 먹이고, 기본적인 예방접종과 건강관리를 하지 않는 보호자들에 대해 '저럴 거면 왜 길러?'라고 생각했다. 면전에 대고 말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숨겨진 혐오라는 것을 인정한다. 가죽으로 된 가방과 신발, 옷을 구매하지 않고 친환경 자동차를 타는 것과 같은 윤리적인 소비를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음악이나 미술, 책, 글쓰기를 좋아하고 실제 그 문화적인 가치를 향유하기 위한 정신적인 소비자로서 갖는 우월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경제적인 안정성, 사회문화적인 배경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책에서 그래서 어떻게 살으라는 제언은 없었다. 상황에 대한 분석과 비판뿐이라 '어쩌라고?'라는 느낌이 있어 답답하기도 했지만, 정답이 없기 때문에 제언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개개인의 선택이므로. 


한편으로 나는 이미 기성세대, 꼰대가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름을 옳고 그름으로 보는 경직된 시선을 가진 사람이 꼰대라면 그렇게 되고 있는 거다. 옳다는 것이 이다지도 사회, 문화, 경제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놀랍다. 


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난 야망계급인가? 그렇게 남기를 바라는가? 적어도 내가 옳다는 자만에 타인을 혐오하는 시선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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