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a
F(힘)=m(질량) ×a(가속도)
물리 시간에 한 사람이 큰 바위를 들고 있지만 가만히 서 있는 것과 작은 돌을 들고 한 걸음 가는 것, 어떤 경우가 더 큰 힘이 요구되는지 묻는 질문이 있었다. 뉴턴의 두번째 운동 법칙인 가속도의 법칙을 이해했는지 묻는 것이었다. 가속도의 법칙에 따르면 10년간 100kg의 돌을 들고 서 있어도 이동이 없으면 F=0이라는 것이다. 문과재질인 내가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가고 억울하게 느껴졌었다. 분명히 힘이 드는데 말이다. 작가가 되기 위한 나의 노력은 실제 등단하지 않으면 그 이동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작가라는 나의 목표에서 가속도는 세상의 인정이라는 방향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혹시 그때도 지금도 내가 뉴턴의 법칙을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이라면 친절한 수정 댓글 부탁드립니다!)
9~10년 전에 한창 등단의 꿈을 품고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그리고 다 떨어졌다. 한 2년 도전하다 어느 시점에서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흐지 부지 되었다. 나의 무능력을 반복해서 확인하기 싫었고, 열심히 써서 욕먹는 것도 그만하고 싶었다. 몇년에 한번씩 다시 '파사삭' 하고 불꽃이 붙는 때도 있었지만 언제 타올랐나 싶게 재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쓰고 싶은 소재가 없어졌고, 간혹 써볼까해서 시작했다 마무리를 짓지 못하곤 했다. 2년 전 부터, 매해 쓰다 만 소설을 끝내는 것을 새해 목표에 넣었지만 2년 연속 실패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완결했다. 굉장히 뿌듯했는데, 한 편으로는 '완성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성취율은 없고 정신승리만 하는건가 하는 자괴감이 있었다. 작년 부터 단편과 중편도 여러 편 쓴 것이 있어 공모전에 내 보았지만 번번히 낙방이었다.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지만, 줄줄이 떨어지니 기분이 나빴다. 그렇다고 내가 수백편을 쓰고 떨어진 것도 아니고(사실 습작이 수십편도 안된다.) 생계와 양육을 팽개치고 습작에만 몰입한 것도 아니니 크게 낙담할 것도 손해본 것도 없다. 게다가 글을 안 쓴다고 해서 내가 더 많은 일을 하거나 더 좋은 엄마가 되거나 더 값지게 시간을 썼을리도 없다. 알지만 기분은 별로였다.
매일 내 얘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남편에게만 하소연을 했다.
"또 아무데서도 연락이 안왔어. 난 도대체 써서 뭐하냐?"
"야. 어차피 떨어질 거 종잇값이 아깝지 않냐. 우체국 직원이 빠른 등기로 보낼거냐고 해서 일반으로 보내달랬어. 상금도 못타는데 등기값도 아깝지."
"아니! 내 게 그렇게 노잼이냐? 난 재밌던데."
착한 남편이 그냥 자기가 책을 내주겠다고 했지만 절대 싫다. 독립출판을 하는 분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이 다를 뿐이다. 난 책을 내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난 내 돈으로 출판해서 지인들에게 내 책을 선물로 나눠주고 싶지 않다. 나의 낮은 인정 욕구 중에 그래도 살아남은 기대가 작가로서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나 거장 같은 것을 꿈꾸는 것이 아니다. 아주 조금. 내가 내 돈으로 붙인 작가 타이틀이 아니라, 세상이 붙여준 타이틀을 가지고 싶다. 고리타분하고 시대착오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적어도 '작가' 만큼은 내가 아니라 남이 좀 붙여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브런치에서 내가 작가라고 불리는 것이 좀 불편하긴 하다. 스스로를 '소설가'로 명명한 것은 그렇게 되고 싶다는 희망이 더 크다. 아직은 아마추어라고 분명히 생각한다. 난 그게 언제 되든 프로가 되고 싶은거다.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프로. 그래야 취미가 아니라 직업이 된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삼천궁녀가 떨어졌다고 해서 유명해진 부소산성의 낙화암을 갔었다. 조용히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며 산성을 오르고 싶었는데, 어디선가 고요를 깨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60대 쯤으로 보이는 남성이 매점 앞 작은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냥 부른게 아니라, '콘서트'라고 플랜카드도 걸고 조악한 음향시설 까지 갖추고 있었다. 소리가 고음으로 갈수록 대놓고 찢어지게 들리도록 고안된 것이 분명한 앰프와 스피커였다. 레파토리는 70~80년대 트롯트와 대중가요 였다. 관객이라고는 매점 사장님으로 보이는 여성과 매점 앞에서 쉬어 가는 70대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 두어명이 다였다. 그런데 그 가수는 내가 부소산성을 오를 때 부터 내려가는 무려 1시간 동안 계속 노래를 불렀다. 아주 시끄러웠다. 그렇게 장비까지 챙겨 다니기에는 솔직히 너무 노래를 못했다. 박자를 못맞출거면 고음이라도 잘 올라가야 햐는데, 고음에서는 계속 삑사리가 났다. 그런데 싸구려 스피커는 그 실패의 기록을 쩌렁쩌렁 퍼트렸다. 그를 조롱하기라도 하는듯 곳곳에 설치된 공용 스피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크게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같이 귀를 틀어막고 있던 (나처럼 예민한) 아들에게 말했다.
"능력은 없고 흥미만 있으면 저렇게 되는겨. 돈도 못벌어 인정도 못받아 사람들에게 무시 당해. 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니?"
"난 그냥 잘하는거 할래."
"그것도 좋지. 그래도 하고 싶은거 해도 돼. 개고생과 찌질한 삶은 감수해야하지만. 엄마를 봐. 글은 쓰는데 잘은 못 써서 돈을 못벌잖아. 그래도 하고 싶으면 하는겨."
"그래도 엄마는 상담해서 돈 벌잖아. 나도 잘하는거 하고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할래."
"난 글쓰는 거 취미 아니거든! 잘하는 거 하는 거랑 하고 싶은 일 하는 거랑 다 장단점이 있어."
이쯤해서 내 얘기가 지루한 아들이 귀를 더 꽉 막고 가버렸다. 여전히 내 고막을 찌르는 소음이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그 아마추어 가수를 보니 내 모습 같기도 해 씁쓸했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에게 고막테러는 안 하니 다행이라고 자위했다.
물론, 실제 글을 쓰는 이유가 100% 등단과 수익의 창출 만은 아니다. 그랬으면 난 벌써 피가 말라 죽었을거다. 계속 쓰는 이유는 이야기를 만드는 동안 행복하고 재밌다. 창작에 대한 기쁨도 크고 글을 쓰면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복이다. 난 내 글 속의 캐릭터가 너무 좋고, 쓰면서 또 만나고 싶고, 가끔 그들의 시련에 눈물이 찔끔 날 때도 있다. 오래 쓰다보면 한 명 한 명이 정이 가고 자꾸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내 이야기 속에서는 내가 신이니 나의 통제 욕구도 충족된다. 그래서 지치지 않으려고, 질량을 최대한 낮춰서 오래 버티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1톤을 들고 서 있으면 반 년도 못버티겠지만 나 처럼 10kg 정도 들고 있으면 몇 년은 버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몇년 쉬고 또 몇 년 들었다 또 쉰다. 하지만 이 역시 나약한 자기 변명 아니겠는가. 그래도 어쩌겠는가. 실제 나란 인간이 나약한 것을.
이제는 부디 나의 정신승리 말고, 치타나 얼룩말 만큼은 아니어도 코알라나 달팽이 정도라도 가속도가 주어지길 손 모아 기도한다!
달려라 코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