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강력한 추동*의 불쏘시게는 불안과 외로움이다. 다시 말하자면 안전/안정하고자 하는 욕구와 친밀감의 욕구가 나를 움직이게도 하고 아무 곳에도 못 가게 하기도 한다. 너무 불안하거나 많이 외로우면 난 움직인다. 그것은 각 감정과 관련된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불편감을 느끼고 내 몸이 각성하여 실제 액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적정 수준에서는 연료가 되고 성취율을 높이고 자아실현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 불편감이 너무 클 때는 그 추동이 증폭되어 자폭 수준에 이를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번아웃이라고 하고 오래 지속되면 무기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의 불안이 거짓 알람을 울릴 때 나는 세상 바보가 된다.
나는 누구 보다 나를 잘 안다. 나의 욕구와 결핍과 능력과 한계가 무엇인지 말이다.
친구를 사귈 때도 남자를 만날 때도, 일을 고를 때도 그만 둘 때도 나는 나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선택을 한다. 너무 신나지 않아도 되니 안전한 선택을 하고, 너무 인정받지 않아도 되니 편안한 선택을 한다.
중학교 때는 락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음악 하면 굶어 죽는다.'라고 생각히니 해보고 싶다고 말 한 번 안 하고 꿈을 접었다. 고등학교 때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공부만 했다. '공부는 모두가 말하는 보험이니까.' 대학에 가서는 글은 쓰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영어학원에 다녔다. '먹고살려면 취직은 해야 하니까, 돈은 있어야 하니까.' 작가 교육원에 다닐 때는 글만 써야 하는 드라마 작가는 시작도 전에 포기했다.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야 하는데 드라마 쓰면서는 다 못하니까.' 대학을 졸업하고는 글을 쓰는 직업이 아닌 취직이 잘 될 것 같은 상담심리를 배웠다. '글 쓰려면 생활비는 벌어야 하니까.' 공부가 좋아서 유학을 갔던 것이 아니었다. '교수가 되면 월급도 충분하고 시간도 많아서 원하는 때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으니까.'
나는 불안해서 글만 쓸 수가 없었다. 나를 신나게 해서 위험하게 만들 수가 없었다.
한 번쯤은 오토바이를 타 보고 싶었다. 그 아슬아슬한 두 바퀴에 내 목숨을 맡기고 가장 빠른 속도로 달리면, 순간의 완전한 자유가 느껴질 것 같았다. 오토바이를 가지고 나를 기다리던 남자가 있었다. 20대 때, 아르바이트했던 학원 건물 앞에서 그는 내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11시에 퇴근이었다. 끊어져가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면 12시였다. 내가 타보고 싶다고 해서 기다렸을 텐데, 나는 혹시라도 다칠까 봐 결국 그 오토바이에 타지 않았다.
경찰인 연하의 남자를 좋아한 적이 있었다. 그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경찰 공무원 준비를 했다. 2년 만에 시험에 붙어 면접을 보는데 왜 경찰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안정적이고 월급이 다른 공무원보다 많아서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했다. 그는 나와 약속을 하고 지키지 못했다. 나는 약속시간에 오지 않는 그를 꽤 오랫동안 기다리다 돌아갔다. 교통경찰을 하던 때인데, 동료가 음주운전자의 차에 몸이 끼어 몇 킬로를 매달려 가다 결국 죽었다고 했다. 그의 장례식에 가야 했다고 했다. 나는 그 뒤로 다시는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가 그 동료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나는 나쁜 남자보다는 착한 남자를 좋아했고, 위험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가슴이 떨려서 만날 수가 없었다. 사랑해도 잃을까 두려우면 정을 주지 않았다.
내 삶의 모든 선택들은 결국 나를 지킨다.
똑똑한 것 같으면서 멍청하다.
나는 한 번도 완전히 미쳐서 살아본 적이 없다. 한 번쯤은 폭파되고 싶은데 도통 안전핀이 뽑히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결핍이 가득해서 불완전하지만, 자신의 일을 할 때 완전한 몰입상태에 있는 예술가들을 동경한다. 지뢰밭인 줄 알면서도 뛰어가는 바보를 사랑한다. 남들보다 12배의 더듬이를 가진 예민하고 섬세한 또라이를 좋아한다.
에곤 쉴레를 반 고흐를 버지니아 울프를 기형도를 전혜린을 팀 버튼을 존 카메론 미첼을 짐모리슨을 커트 코베인을 지미핸드릭스를 조아퀸 피닉스를 김혜수를 조승우를 동경한다.
지금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불안을 극복해서가 아니라 비로소 돈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고, 원하던 결혼을 했고, 핏덩이였던 아들을 청소년으로 키워냈다. 그래서 드디어 글을 쓸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이 되었을 때, 알았다. 내 글에는 결핍에서 오는 치열한 절실함이 없었다.
벌인가. 인과응보인가.
나는 똑똑한 척하는 겁쟁이다.
*추동: 인간에게는 생존을 위해 타고나거나 이후 경험을 통해 창작하게 된 여러 욕구(need)가 존재한다. 이러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불편감을 느끼는데, 이를 가리켜 추동(drive)라고 한다. 추동이 발생한다는 것은 신체적으로는 각성(arousal)되어 있고, 이 각성은 결핍으로 인한 것이기에 인간은 불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를 감소시키기 위해, 즉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를 가리켜 추동 감소 이론(drive-reduction theory)라고 한다. [출처] [리더스쿨] 리더가 알아야 할 심리학 - 동기 ③ 추동감소 이론, 최적 각성 수준|작성자 누다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