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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Jun 03. 2024

찐맛없는 친구

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학교 다닐 때는 아웃사이더에 공부랑 음악 밖에 몰랐고, 사회에 나와서는 연애와 돈이  너무 좋아 남자랑 일 밖에 몰랐다. 


TCI라는 심리검사는 기질과 성격으로 구분해서 심리를 알려준다. 기질(Temperament)은 유전적으로 타고나서 잘 바뀌지 않는 성격이고, 성격(Character)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성격을 말한다. 그래서 잘 바뀌지 않는 기질을 받아들이고, 후천적인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제언을 준다. 기질 중에 사회적인 민감성(Reward Dependence)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회적인 애착을 이루기 위해 보상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전적인 경향성'을 말한다.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대나 욕구를 빨리 눈치채고 인정이나 애정에 의존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누구 하고나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지만, 관계에서 의존도와 기대가 높기 때문에 상처도 빨리 받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낮은 사람은 민감하지 못해 눈치도 못 채고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러니 집단 안에서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낮은 사람과 있으면 자신은 몰라도 옆 사람이 괴로울 수 있다. 


나는?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사람이다. 아주. 

감각은 예민한데 감수성이 개미 눈꼽만하고,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타인의 정서적인 지지나 인정을 갈구하지 않는 독립적인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알지만 좀처럼 들어주진 않는다. 내가 원하고 나에게 득이 되는 경우에 움직인다. 


어릴 때 부모님이 만나면 싸웠는데 다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난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하고,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부모님은 나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고, 내가 신경 쓴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나 때문에 싸운다고 해도, 내가 싸우라고 부추긴 것도 아닌데 그들이 싸우면 그것 역시 내 일은 아니다.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엄마가 나를 신경 쓰지 않게 내 할 일을 잘하고 할 수 있는 집안일을 돕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엄마의 기대를 맞추는 사람이 되려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엄마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은 아니니 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 대로 살았고, 다행히 그 기대가 엄마의 기대와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엄마의 칭찬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을 사는데 보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도 타협되지 않은 내가 친구들과 타협되었을 턱이 없다. 난 한 번도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을 친구가 없어서 안 간 적이 없고 친구가 가고 싶은 공연을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데 간 적이 없었다. 나는 먹는 것은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좋아하지 않는 메뉴, 맛없는 커피 정도는 월 1~2회 정도 다른 사람을 위해 먹어줄 수 있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 아름답지 않은 소리와 이미지, 향기가 있는 곳에서 오래 참지 않는다. 특히 청각적인 예민함과 선호도가 너무 강해서 싫은 음악과 소음은 배격한다. 게다가 짠순이에 멀리 가는 것을 싫어해서 이동시간이 길거나, 내 기준보다 돈을 더 써야 하면 나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만날 수 있는 가능한 시간, 공간, 상황의 사람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아마도 여자친구가 아닌 남자친구를 좋아했던 것도 이런 지랄 맞은 나를 맞춰주는 것은 동성에서는 불가능하고 사랑에 빠진 이성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거다.  

  

청소년 때는 그나마 사회적인 기술이나 연대감도 별로 없어 주야장천 혼자 바쁜 타입이었다. 대학교 때는 먹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데 싫어하는 게 너무 많았고,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 통제할 수 없는 자극이 너무 많아서 점심때가 되면 혼자 건물 옥상에 있기도 했다. 눈치도 안 보고 사회성도 없어서 '이상한 애, 무서운 애'라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나는 그런 평가가 좋았다. 다행히 해외생활을 하며 맨땅에 헤딩을 하다 보니 눈치도 좀 보게 되고, 상담을 하면서 머리로 공감/이해/존중을 학습하다 보니 이제는 꽤 보통사람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목적지향적이었다. 직장, 학원, 스터디를 통해서 내가 적극적으로 필요해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살면서 필요한 사회성을 습득했고, 기본적인 성격이 계획적이고 신뢰롭고 일관성 있으니 목적이 같으면 10년이 넘도록 관계를 잘 유지한다. 아주 가까이 가지는 않지만 실수하지 않는 사람. 그게 나다. 


그러니 과거의 친구들은 많은 경우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대학 때 유일한 친구가 나에 대해 '난 이런 사람이야. 싫음 말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거나 아니면 만나지 말거나, 그래도 난 아쉽지 않아.라고 들렸다. 맞다. 맞으면 놀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인정했다. 그러니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잘해주고 그러다가 혼자 상처를 받고 떠나는 일들이 학창 시절부터 꽤 많았다. 이성도 아닌데, 편지나 선물을 주고 사라지는 친구들. 그렇게 혼자 좋아하다 자신의 기대와 다르다며 연락을 끊는 친구들이 줄곧 있었다. 그때는 왜 저러나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들은 내가 그들이 기대한 의존도나 애정을 주지 않으니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타인의 상처에 대해서도 내가 실제 잘못/실수가 있으면 사과하지만 없으면 그들의 상처에 책임을 가지지 않는다. 이런 나를 존중해 주어 내 옆에 있어주면 감사하고 맞지 않아 떠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것은 나는 나 같은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ㅋㅋㅋ 반전이다.


TCI 기질/성격검사 교육을 받을 때 교육안 첫 장에 성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이 적혀있었다. 


주님!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을 주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위해서는 그것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시며,
 또한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내가 자발적 아웃사이더임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용기와 끈기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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