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최근 JTBC에서 이효리의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를 주말에 빨래를 개면서 가끔 본다. 엄마와 서먹한 딸 이효리가 엄마와 함께 처음 떠나는 여행이라는 포맷인데, 나도 딸이라 그 예능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어제 남편이 학회에 가느라 일을 쉬어서 저녁에 평소보다 일찍 와서 함께 텔레비전을 봤다. 엄마에게 과거 불화가 많았던 부모님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 하는 이효리와 그런 얘기는 이제 안 하고 싶다고 계속 말을 돌리는 엄마 사이에서 둘 다 상처받는 것이 느껴졌다. 누가 잘하고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둘은 상처를 다루는 방법이 달라 보였다.
남편이 말했다.
"엄마가 저렇게 듣기 싫어하는데 뭘 그냥 편지 같은 거 써서 얘기하면 되잖아."
"그럼 소통이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잖아. 이효리는 같이 얘기하고 싶은 거 아닐까. 엄마가 있을 때 얘기하고 털고 싶은가 보지."
"엄마가 저렇게 안 듣고 싶어 하는데 계속 얘기하는 건 좀. 넌 어때?"
"난 안 하지. 엄마가 70이 넘었는데 안 변하지. 이제 그렇게 살다 가는겨. 얘기해 봐야 달라지것냐. 그냥 맞춰줘야지."
"그지?"
"그지. 그런데 우리는 잘 모를걸. 우린 너무 넘치게 사랑받고 크게 상처받지 않았잖아. 아마 우린 사랑에 목말랐던 사람들의 마음을 평생 잘 모를걸."
남편은 4남매 중 위로 누나 둘에 드디어 얻은 장남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해서 어머님은 장손이 죽을까 무서워 애지중지 키웠다는 말을 10년 넘게 연 5회 이상 들었다. 할아버지는 손자손녀 중 유일하게 남편만 장에 데리고 가 짜장면을 사주셨단다. 아버지는 아들이 군대 가는 날, 나무 뒤에 숨어 엉엉 우셨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평생 받았을 특급사랑은 집안의 경제력과는 별개로 매우 풍성한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딸 셋 인 집의 막내였다. 외할머니가 용한 무당에게 아들이라는 점괘를 받아 온 덕에 낙태를 위해 병원으로 가던 운명이 뒤집혀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낳고 보니 또 딸이라 아빠와 친할머니가 병원으로 오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인데 어떻게 중간에 알았는지 미스터리다.) 태어나기 전부터 태어나서도 천대받았던 나를 보고 엄마는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 집으로 데려가서는 더 잘해주었다고 했다. 나는 까탈스럽고 지랄 맞은 성격에, 언니들보다 못생겼고, 공부도 잘 못했다. 그런 나를 엄마는 언제나 칭찬해 주고 안아주었다. 학교에 가서 깨지기 전까지는 뭐든 하면 하도 잘한다고 하니 난 내가 대단한 줄 알았다. '똑똑해, 청소도 잘해, 그림도 잘 그려, 손도 야무져, 말도 잘해, 믿음직해' 엄마의 칭찬은 밑도 끝도 없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는 오래 하는데 성적은 잘 안 나와 좌절할 때도 엄마는 내가 아니라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문제고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한탄하셨다.
마음속 보물창고 속에 꽤 존재감있는 기억이 있다. 어릴 때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갔다 왔는데 엄마가 없어서 너무 화가 나 있었다.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달려왔는데 엄마는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서운했던 것 같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엄마가 돌아왔을 때, 나는 성난 복어처럼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화를 냈다. 엄마는 그런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미 꽤 큰 나를 등에 업고 마당을 걸어 다니며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마당에 흰 목련 나무가 있었는데 엄마의 등에 업혀 그 아래를 거닐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 등에 업혀 엄마의 목에 얼굴을 묻고 있으면 화나고 서운한 마음이 입안의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았다.
나에게는 온전한 사랑이었다.
엄마의 사랑은 꽤나 조건부였지만 엄마가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고, 엄마에게 예의 있어야 했고, 아빠 편이 아니라 엄마 편이어야 했다. 로저스의 인간중심적 상담 이론에서는 무조건적인 존중(Unconditional Regard)을 상담과 상담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그런 상담의 덕목이 지금은 부모에게도 기대되어, 자식이 어떠하든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수 있는 훌륭한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러기 어렵다. 상담에서 내담자는 주 1회 50분만 보면 되고 올 때마다 돈을 내지만 가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수십 년을 보고, 얘기를 들어줄 때마다 돈을 주거나 상대가 원하는 서비스를 주지 않는다. 조건 없는 사랑이란 어떻게 보면 허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이에게 요구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렇기에 엄마가 나에게 조건부의 사랑을 주었다고 해서 그녀가 나를 사랑한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온전한 사랑이 평안한 환경에서 왔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엄마와 아빠는 마주치면 싸웠고, 학원비 나가는 것을 보면 못사는 것 같진 않은데 집에는 항상 돈이 없었다. 나에게 인자하고 이해심 많은 엄마는 아빠 앞에서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요새 흔히 말하는 감정쓰레기통이었다. (극 TJ라 들어준다고 해도 엄마가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을 테지만… ) 그 정도가 내가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엄마의 삶은 고단했고 외로웠다. 그 당시에는 그런 엄마의 태도로 인해 아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아빠는 언제나 엄마의 평가와 함께 보였다. 하지만 아빠에 대한 편견은 성인이 되고 그들 각자와 그들의 관계를이해하면서 많이 사라졌다. 언제나 싸우는 부모님 아래서 나는 큰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것이 괴롭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신경 쓰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아빠도 노력하고 있다는.것을 알았고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은 확실했다. 나는 알아서 공부하고, 학교 가고, 밥 차려 먹고, 도시락 싸고, 엄마가 힘들면 아빠 욕도 들어주고 마사지도 해주었다. 부인도 회피도 아니었다. 엄마의 불행은 안타깝지만 자신에게 비롯하고 아빠 역시 그러하다. 부모님은 둘다 참 측은했다. 나의 불행도 다른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기에 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않았다.
충분히 사랑받았다고 믿는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덜 받고 상처가 생기면 더 잘 다룬다고 인과관계로 규정할 수는 없다. 한정된 정보를 전달하는 예능을 보면서, 이효리와 그 어머님의 삶을 가정하고 평가할 수도 없다. 다만, 보다 보니, 나의 엄마 생각이 났고 내가 사랑받은 경험과 믿음이 나를 어떤 인간관계에서든 덜 상처받게 하고 상대를 더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업혀 잠들 때의 그 평화롭고 따뜻했던 기억이 굉장히 오랫동안 어떤 칼도 뚫을 수 없는 갑옷이 되어 주었다.
다음 편에서는 이효리도 그녀의 어머니도 서로 더 이해하고 편안해지길 기대하고 응원했다. 이효리 어머니가 딸에게 '네가 부르면 지옥문이라도 따라갈 거야'라고 한 말이 훗날에도 보면 두고두고 너무 슬플 것 같다. 나 역시 엄마가 그러지않길 바라지만, 우리 엄마도 그럴 것이고 나도 내 아들에게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