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무리에게 붙잡혀 간 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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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폭풍전야
은호가 이상하다.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윤영에게 벽을 쌓는 은호에게 윤영은 불안함을 느낀다.
방으로 들어온 은호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선재의 부재중 연락을 보자 등에서 땀이 났다. 은호가 연락처를 뒤적였다. 선배님이라고 깍듯하게 적힌 이름 사이에, 형이란 호칭이 있었다.
- 형. 바쁘세요?
- 지금 일하는데.
- 아니에요. 담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 아냐. 잠깐 괜찮아. 왜?
- 선재 선배님이 저에게 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오늘도 부르셔서 가긴 했는데 계속 거절하기가 그래서요. 저도 이제 공부도 해야 하고…….
- 선재?
- 네, 제가 선배님을 배신하거나 피하고 그런 건 절대 아니거든요. 근데 제가 이번에 학교에서 일도 있었고 이제 더 문제 생기면 진짜 큰일 날 것 같아요. 혹시 형이 좀 말해주실 수 있나 해서요.
은호가 힘들 때, 함께 놀던 선배들이 있었다. 공부에만 집중할 때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마음이 삐뚤어지니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보이고 저절로 찾아오는 게 놀라웠다. 이제까지 모범생으로 지내면서 만난 주변의 친구들은 문제없는 집안에서 평범하게 자라 공부가 최고의 고민인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유치하고 어리석게 느껴져 이질감을 느꼈다. 학교와 학원, 원래 놀던 친구들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학원을 땡땡이치고 밤늦게까지 PC 방에 있을 때 다가오는 형들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먼저 은호에게 다가온 사람이 선재였다. 은호와 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특성화고에 갔지만 얼마 못 가 학교를 그만뒀다고 들었다. 문신이 잔뜩 있는 무서운 형들하고 친하다고도 했고, 어디서 생긴 것인지는 모르지만 주변 애들에게도 돈을 잘 썼다. 은호에게 밥도 사주고 담배도 공짜로 주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지만,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때 은호를 불러 주었고 자신의 오토바이도 타게 해주었다. 선재를 통해 같은 학교의 3학년 선배들이나 졸업한 선배, 그리고 동네 형들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더한 아픔과 시련을 겪었고 지금도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전 같으면 눈도 마주치지 않았을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은호는 그들 속에서 비겁한 우월감과 안도를 느꼈다.
은호는 그들의 호의를 의심 없이 받았다. 담배를 얻어 피우고 열려있는 건물 옥상에서 술을 얻어 마셨다. 은호가 학교에서 노는 선배들과 어울린다는 소문이 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알아서 자신을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쭐하는 마음도 들었다. 나는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공부만 하는 그들이 얄미운 마음도 들었다. 부모 잘 만나서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아 질투 나고 그렇지 못한 자신의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이제까지 친했던 친구들에게 괜한 시비를 걸고, 별것 아닌 일로 화를 냈다. 은호의 뒤에 무서운 선배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힘이었다. 평소 같으면 당하지 않을 승현이가 몇 번을 참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짜는 없었다. 이제까지 은호가 그들에게 받은 담배와 술값의 수백 배를 뱉어야 했다. 이제껏 모아놓은 용돈과 교재비까지 가져가도 그 빚은 사라지지 않았다. 담뱃값과 술값을 대 주는 것에서 끝났다면 차라리 감당할 만했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에 가담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학교에서 은호는 이미 노는 선배들과 한패라고 소문이 났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 것도 사실이었다. 선배들이 편의점에서 술이나 담배를 훔치고, 문이 열려있는 자동차에서 돈이나 금품을 훔치거나 오토바이를 훔칠 때도 처음에 그냥 옆에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임무가 생겼다. 망을 봐야 했고, 물건을 숨겨주기도 했다. 선재가 곧 자신에게도 도둑질을 시킬까 봐 두려웠다. 자신도 범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완벽한 가해자가 되기 전에 어떻게든 그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쉽사리 은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들이 부를 때 나가지 않으면 다음 날 여지없이 학교 앞으로 찾아왔다. 자신도 잘 몰랐던 중학교 3학년 선배들이 반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학교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자신을 기다리는 선배들이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승현이 일이 있고부터는 은호도 더는 사고를 치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지만, 무엇보다 정말 자신의 인생이 망가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때 알았던 형이 지수였다. 오토바이를 타는 선배들은 오토바이를 사고팔거나 수리를 맡길 때 언제나 지수를 찾았다. 시세보다 더 싸게 해주기도 했지만, 수리도 튜닝도 실력이 좋았다. 지수는 무리에 끼지는 않았지만, 모두와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대부분 자기 할 일만 하고 자리를 떠났지만 같은 고등학교 후배가 잡아 같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오토바이를 가져와서인지 술을 입에 대지 않았고, 또래 여자애들이 달라붙어도 크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쭈뼛쭈뼛 앉아 있는 은호에게 말을 걸어주었지만, 담배나 술을 권하지 않았다. 은호는 지수의 호의를 느낄 수 있었다. 은호가 선배들에게 돈을 상납할 때도, 그 돈을 다시 은호에게 돌려주고 자기가 대신 내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시비가 붙을 뻔했는데도 지수는 은호에게 오고 싶지 않으면 오지 말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은호가 친생부를 만나고 휘청이던 밤,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었던 사람이었다. 은호는 지수가 친형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지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자신을 대신해 싸워줄 수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제 선재에게 오는 연락을 받지 않은 후로 수백 개의 메시지가 폭탄처럼 날아와 있었다. 선재와 같이 다니는 무리의 아이들까지 가세해 밑도 끝도 없는 욕설과 협박을 해댔다. 결석을 할 수 없어 가긴 했지만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두려웠다. 또 선배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봐 학원 시간이 늦어져도 선뜻 교문 밖을 나서지 못했다. 교실 창문으로 운동장 너머 교문 밖을 살펴봤다.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은호는 있는 힘껏 뛰어서 교문을 통과했다. 그대로 버스 정거장으로 뛰어갔다. 이대로 순간 이동이라도 해서 학원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은호의 마음의 소리를 들었는지 버스가 바로 왔다. 다행히 학원도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긴장이 풀어졌는지 나른했지만 이제 다시 공부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한동안 공부를 쉬어서 타격이 있었지만, 다시 따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오랜만에 집중해서 공부했더니 피곤하고 배도 고팠다. 빨리 집에 가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었다. 엄마를 더는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학원이 끝나고 정거장으로 바삐 걸어갔다. 그때, 한 무리의 오토바이가 정거장에 서서 버스가 정차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선재였다. 은호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버스 운전사의 고함 소리와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의 불평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탄 청소년들은 우악스럽게 가래침을 뱉으며 그런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오토바이의 부릉거리는 소리가 고요한 학원가의 정적을 깼다.
- 씨발 안타냐!
- 저 집에 가야 하는데요.
- 그래, 그냥 여기 아침까지 있어 보자. 씨발년아!
오토바이 무리 뒤로 버스와 자동차들의 경적 소리가 위협적으로 커졌다. 은호의 등 뒤로 사람들의 원망스러운 눈빛이 서늘하게 꽂혔다. 손에서 땀이 나고 숨이 턱턱 막혔다. 은호는 어쩔 수 없이 헬멧도 쓰지 못한 채 선재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오토바이는 곡예를 하듯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학원가를 빠져나갔다.
선재 무리가 도착한 곳은 재개발지역으로 묶인 빈 주택가였다. 폐허가 된 건물 안에는 술병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은호 또래의 여자아이가 술에 취해 고꾸라져 있고, 다른 남자애들 무리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왔던 무리가 헬멧을 벗고 건물로 들어갔다. 선재의 오토바이에서 내린 은호가 엄마에게 연락하려고 몰래 핸드폰을 켜는데 지수의 발신 표시 화면이 떴다. 은호가 통화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선재가 은호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 이 씨발년이! 나를 개호구로 보냐.
선재는 은호의 핸드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발로 짓밟았다. 은호는 두려움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이게 오냐오냐 하니까 아주 똥오줌 구별 못 하지. 너 지수 그 개새끼한테는 뭐라고 한 거냐. 네가 신고했냐?
- 아녜요. 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은호가 손사래를 쳤지만, 선재가 은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목이 조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은호를 내팽개치고 선재가 소리쳤다.
- 씨발. 데려와 달라고 사정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배신을 해. 개새끼가. 네 맘대로 될 것 같아! 야! 저년 데려와.
선재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여자애를 데려오라고 손짓했다. 선재와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온 애들이 낄낄거리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여자애를 은호 앞에 눕혔다. 무리에서 술을 마시던 애들은 당황한 듯 상황을 멀리서 지켜봤다. 같이 술에 취해있던 여자애가 소란스러운 소리에 놀라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 야 씨발년아, 네가 이년 옷 벗겨!
선재가 은호를 보고 소리쳤다. 은호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 아녜요. 저 정말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지수 형한테는 이제 공부해야 한다고, 선배님이 오해하신 것 같다고 그 얘기만 했어요. 진짜예요. 다른 건 정말 몰라요.
- 그런데 지수 새끼가 내가 오토바이 훔친 걸 어떻게 알아! 야 이 개새끼야. 경찰에 신고한 것도 너지! 이 새끼, 오늘 죽어봐!
은호는 선재 앞에서 빌고 또 빌었다. 날아오는 발길질에 배가 터질 것같이 아팠지만 계속 빌었다. 한참을 발로 차던 선재가 다시 소리쳤다.
- 너 죽고 싶지 않으면 저년 옷 벗겨.
선재가 핸드폰 동영상을 켜고 은호에게 가져다 댔다. 은호가 움직이지 않고 엎드려 얼굴을 가리고 떨고 있었다. 선재가 그런 은호의 옆구리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은호가 헉 소리도 내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선재가 고통에 신음하는 은호의 목덜미를 질질 끌고 여자애 앞에 가져다 놓았다. 은호의 동공이 초점을 잃고 커졌다. 은호의 덜덜 떨리는 손이 여자아이의 상체 쪽으로 끌리듯 다가갔다. 그런 모습을 선재가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은호의 손이 여자아이의 가슴팍에 닿아 교복 단추를 풀려고 할 때 여자애가 눈을 떴다. 눈앞에 바짝 다가온 남자를 보고 여자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 궁지에 몰린 짐승과 같은 소리를 질렀다. 이내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어기적거리며 뒤로 뺐다. 그 소리에 놀란 은호가 다시 뒷걸음질 쳤다.
선재가 다시 다가가려 할 때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미친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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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망했다
일하고 있던 지수는 선재 무리의 단톡 메시지를 받고 은호의 위험을 감지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