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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Oct 04. 2024

20. 폭풍 전야

아들에게 느껴지는 경고음

지난 이야기

19. 엄마는 어쩔 수 없어

다시 은호와의 대화를 시작하는 윤영은 은호와의 곤계에 희망을 갖는다. 지수와도 괜찮지 않을까? 꿈꿔보는 윤영.


은호의 학교폭력 문제는 의외로 잘 해결되었다. 다행히 승현이의 눈에 큰 이상이 없었고, 은호가 따로 병원에 가서 사과한 것이 승현이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았다. 형사 고소 건은 승현이 부모님과 합의를 하여 취하하기로 했다. 윤영이 미용실에서 수년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이 고스란히 배상금으로 들어갔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렸고 여러 차례 조사를 받았다. 은호가 일방적으로 때리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다행히 서면사과와 학교 봉사를 하는 것으로 징계가 내려졌다. 그렇게 은호의 2학년 2학기가 휘몰아치듯 지나갔다. 아니 그렇게 지나가는 듯했다.        


은호는 다시 학원에 가고 공부를 하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오는 듯 보였다.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고 집에서는 밥 먹을 때를 빼면 방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윤영도 실업 수당을 받으면서 다음 일자리를 조금은 빨리 알아봤다. 당장 생활비로 쓰려던 퇴직금이 모두 손해배상금으로 들어갔고, 영철과 법적 싸움을 하려면 당장 큰돈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정말 푹 쉬면서 천천히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해 보고 싶었던 결심이 자신에게 과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슬퍼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실업 수당을 계속 받으려면 교육도 받아야 했고, 구직활동 증명도 필요했다. 지수와는 연락을 하며 은호 몰래 만남을 이어갔다. 지수의 오토바이를 타고 교외로 나가기도 했고, 자신의 차를 타고 잠깐이라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와 함께 하는 순간이 봄날의 꽃처럼 향기로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법원에서 몇 번 더 서류가 왔고 은호와 영철의 유전자 검사가 이루어졌다. 둘의 유전자가 99.99% 일치한다는 당연한 결과가 나왔다. 친생부라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영철 쪽은 이상하리 만큼 조용했다. 변호사는 지금이라도 이제껏 받지 못한 양육비 소송을 권했지만 윤영은 그 돈을 받으면 영철이 양육의 권리도 누리려 할까 두려워 시작하지 않았다. 변호사는 친권이 변경되지 않는 한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지만, 윤영은 불안했다. 이대로 그가 그냥 미국으로 돌아가 버리길 진심으로 바랐다.     


윤영은 아침과 저녁에 은호와 함께 밥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 마음을 은호도 알아주는 것인지, 투덜거리면서도 아침을 먹고 가고 밖에서 늦게 들어와도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일을 안 하니 이렇게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 이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아 하루 하루 해보지 않았던 요리도 도전해 보며 의욕을 불태웠다.     


밥을 매일 같이 먹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핸드폰을 보는 아이의 눈빛이 언제나 같지 않았다. 어릴 때처럼 천진난만할 때도 있지만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눈빛도 있었다. 궁금했지만 매번 묻지 않았고 기다리려고 했다. 물어봐도 답하지 않을 테고, 물어봤는데 말을 안 해주면 속상해서 멀어질 자신의 마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들이 다시 생겼다. 작은 상처였지만 얼굴에 멍이 들어오기도 하고 손이 찢겨 있기도 했다. 아이 이름으로 된 현금카드에 용돈을 충전해 주면 충전되기가 무섭게 몇만 원의 돈이 그대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면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 은호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졌다. 들어오면 담배 냄새가 진동하고 입에서는 술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더는 기다려 줄 수가 없었다.     


- 은호야. 얘기 좀 해.     


은호는 대답이 없었다.     


- 너 술 마신 거야? 요새 뭣하고 다니는 거야?

- 안 마셨어.

- 아. 미치겠네. 은호야. 네가 사실을 얘기해 줘야지 엄마가 뭘 할 수 있잖아.

- 엄마가 뭘 하는데?

-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알고 이러니?

- 무슨 상황?     


이 아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윤영은 답답해졌다. 영철과 소송에 걸려 있고 너를 그에게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그러니 제발 사고 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윤영은 그 순간에도 은호에게만 집중할 수 없었다.        


- 너 요새 누구랑 싸우고 다니니? 계속 상처도 있고 돈도 전보다 많이 쓰는 것 같아서 엄마는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

- 아냐. 아니라고 했잖아! 왜 자꾸 이러는데!  

- 아닌 게 아니니까 그렇지. 왜 매번 일이 다 터져야 엄마한테 얘기하는 거니. 미리 좀 방법을 찾아볼 수는 없는 거야?

- 엄마가 뭘 어떻게 해결할 건데. 엄마 지금 아빠 문제도 혼자 해결 못 하고 있잖아. 그래서 나한테까지 와서 그 지랄을 떨고 간 거잖아.

- 아빠가 또 왔었어?

- 아니라고.

- 은호야. 엄마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거야. 근데 네가 자꾸 이렇게 엇나가면 너희 아빠 쪽에서는 다 엄마 탓을 할 거야. 엄마는 널 뺏기고 싶지 않아. 제발 지금은 그냥 조용히 지내면 안 될까?

- 그러려고 하잖아! 그렇게 하고 있다고!     


은호가 숟가락을 탁 내려놓고 화난 얼굴로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이야기

21. 방황의 대가

일진무리와 어울렸던 은호는 쉽게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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