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만 행복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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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너는 왜 그렇게 예뻐?
은호의 학폭 피해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지수를 만난다. 지수를 끊지 못하고 갈수록 마음을 빼앗기는 윤영.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꽤 늦었지만 윤영은 오랜만에 밥을 했다. 은호와의 전쟁이 있고 한동안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냉장고에는 이미 곰팡이가 핀 음식물만 가득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 여러 장에 상한 음식을 모두 버렸다. 집 앞 마트에서 삼겹살과 상추, 깻잎, 양파, 두부 등을 사 왔다. 전기밥솥에 돌처럼 굳어 버린 밥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쓰레기통에 모두 버리고 밥을 새로 안쳤다. 뚝배기를 꺼내 쌀뜨물에 된장을 풀어 끓였다. 양파와 호박, 두부를 잔뜩 넣고 냉동실에서 눈송이가 붙은 간마늘을 꺼내 넣었다. 밥솥에 밥이 되는 소리가 오랜만에 집안에 울렸다. 김치냉장고에서 다행히 살아있는 김치를 꺼내 일부를 썰고 나머지를 양파와 함께 담아 두었다.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구웠다. 기름에 고기가 익는 소리와 함께 고소하고 기름진 삼겹살 냄새가 순식간에 집안 가득 퍼졌다.
- 은호야! 밥 먹자! 은호야!
소리보다 냄새를 먼저 알아차린 은호가 연거푸 부르지 않아도 방문을 열고 나왔다. 학교에서도 교무실에 불려 가느라 제대로 점심도 못 먹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짠한 마음이 앞섰다. 밥그릇 듬뿍 흰쌀밥을 담아 은호에게 주었다. 은호는 오랜만의 만찬에 삼겹살을 입 안 가득 넣었다. 윤영은 삼겹살을 구웠던 프라이팬에 김치와 양파를 잔뜩 넣고 구웠다. 매콤한 냄새에 기침이 났다. 은호가 좋아하는 삼겹살 삼종 세트였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둘은 이렇게 삼겹살을 구워 먹었었다. 윤영은 굽기만 하면 되니 좋았고, 은호가 잘 먹어서 좋았다. 중학교에 가서도 가끔 함께 먹었지만, 서로 집에 오는 시간이 달랐고 만나도 싸우는 일이 많아 피하는 날이 많았다.
- 엄마가 미안. 선생님 말씀만 듣고 널 너무 몰아세운 것 같아.
- 선생님 말이 맞아. 내가 먼저 시비 걸었어.
은호가 숟가락을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 네가 잘못했네. 그래도 밥 먹어. 어떻게 할지 같이 생각해 보자. 너도 네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도 잘 몰라. 그러니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은호가 잘못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네가 덜 괴로웠으면 좋겠어. 소년원 같은 무서운 데는 안 가면 좋겠고, 징계도 안 받았으면 좋겠어. 염치없어도 엄마는 그랬으면 좋겠어. 승현이한테도 은호가 따로 사과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또 말이 많았지. 밥 먹어. 먹고 얘기하자.
윤영이 먼저 크게 쌈을 싸서 입에 넣었다. 우걱우걱 씹는데 너무 맛있었다.
밥을 먹고 둘은 오랜만에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찾아봤다. 은호도 맞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내일은 병결을 내고 상해진단서를 떼러 병원에 가기로 했다. 옛날에 은호 이름으로 들어 놨던 보험에서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 특약이 있는지도 확인해 보았다. 대화 중에도 몇 번씩 '왜?'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참고 또 참았다. 가능한 덜 처벌받기를 바랐지만, 은호가 잘못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승현이에게도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도 사과하고 앞으로는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약속했다. 윤영은 은호의 약속이 지켜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냥 딱 이 정도로 가끔 지수를 만나고 은호가 학교에 다시 적응해서 지낸다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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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폭풍전야
괜찮을 것 같았던 은호와의 관계는 다시 삐그덕 거리고, 윤영은 불안에 휩싸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