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망가지는 은호 앞에 두렵고 슬픈 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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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호의 학교에서 연락을 받고 달려간 윤영은 은호가 같은 반친구들에게 학교폭력을 저질러 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학교 상담실에 있는 은호를 만나러 가는 윤영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답이 없었다. 중학교 때 윤영의 삶도 지옥이었다. 윤영은 매일 벼러지는 시퍼런 칼로 자신을 찔렀다. 집에는 엄마가 없고 학교에는 친구가 없고 자신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그런 자신이 너무 형편없고 하찮아서 매일매일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은호는 그 칼로 세상과 타인을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 은호야.
은호는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볼 뿐 말이 없었다.
- 왜 그랬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내가 뭘?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거잖아.
- 걔도 날 때렸다고.
- 그래. 왜 일이 이렇게까지 됐는지 엄마가 알아야 널 도울 거 아니야.
윤영이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하며 얘기했다.
- 선생님은 네가 다른 친구들을 괴롭혔다고 생각하셔. 이 대로면 학폭위가 열릴 거고. 하지만 엄마는 은호 얘기가 듣고 싶어.
- 병신 같은 새끼가 깝쳐서 그랬어. 어쩌라고.
- 어쩌라고? 그게 말이 돼. 진짜 왜 그러니?
- 몰라. 나도 모른다고! 다 짜증 나. 그 병신새끼도 짜증 나고 학교도 짜증 나고 엄마도 짜증 나! 아빠라고 찾아온 그 개새끼도 다 짜증 난다고!
-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해? 엄마도 진짜 모르겠어. 엄마도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눈물이 흘렀다. 은호가 혼자 상담실을 나가고 윤영이 상담실 의자에 앉아 엉엉 울었다. 이제껏 온몸과 마음으로 아껴온 모든 것이 깨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금이 간 은호의 마음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윤영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있을 수도 도망갈 수도 없었다.
다음날 윤영은 은호에게 맞아서 병원에 간 학생을 찾아갔다. 지금 가면 아이 부모의 분노를 오롯이 받게 되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은호에 대한 그분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길 바랐다. 보상이나 처벌을 떠나 같은 부모의 처지에서 당연히 먼저 찾아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사죄를 드려야 했다.
병실 문 앞에서 윤영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너무 무서웠다. 평소에 비싸서 잘 가지 않는 과일 가게에서 단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과일 바구니를 샀다. 드라마에서처럼 집어던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도 되었다. 스르륵 문을 열자 은호 또래의 아이가 한쪽 눈에 붕대를 대고 누워있었다. 보호자로 보이는 남녀가 병실에 함께 있었다. 윤영이 자신이 은호의 엄마라는 것을 밝히자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병실로 들어온 윤영을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곧 누워있는 아이의 엄마가 따라 나왔다. 윤영은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아이의 부모님에게 은호의 용서를 빌었다. 그들은 과일 바구니를 던지거나 윤영의 뺨을 때리지 않았지만 윤영 앞에 단단한 벽처럼 서 있었다. 그들은 이미 경찰에 신고한 상태였고, 학교에 학폭위를 열어 달라고 말한 상태였다. 대화와 이해가 아니라 값을 치르게 할 것이라는 각오가 단호했다. 순간 윤영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은호를 데리고 병원에 먼저 가거나 변호사를 먼저 만났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교사의 말만 듣고 은호를 이미 가해자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설령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엄마는 아들의 편에 있는 것이 옳았던 건가 혼란스러웠다. 자신은 여전히 바보 같은 엄마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 자리에 혼자 우뚝 서 있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지수가 보고 싶은 자신이 미웠다.
은호에게 소송으로 갈 것 같으니 너도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야한다고 늦었지만 메시지를 보냈다. 윤영은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집 앞에 지수의 오토바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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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너는 왜 그렇게 예뻐?
지친 윤영을 기다리는 지수의 오토바이를 타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