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브런치 연재를 하면서 가진 의문은,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데, 내 얘기를 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였다. 나는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고 5000만 한국인 중의 한 명일 뿐이니 말이다. 경기도 한 귀퉁이에 사는 여자의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하기나 할까? 하는 생각에 현타가 왔다. 답은 No이다.
이런 생각을 한 창 할 때, 호프 자런의 <랩걸>을 읽었다. 식물을 연구하는 그녀는 식량이나 목재, 의약품 같이 물질적 이익으로 이어지는 연구가 아닌 오로지 '호기심에 이끌려하는 연구'를 한다.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과학자가 된 그녀의 자서전에 관심이 있지, 실제 그녀의 논문에는 관심이 없다. 칡넝쿨은 어떻게 번성하는지, 단풍나무는 어떻게 새끼 나무의 생존을 돕는지를 사람들은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그래서 펀딩을 따기도 힘들어 정신병에 걸릴 만큼 힘들어하면서도 끝내 그 분야에 남아 활발한 활동을 했다. 나는 그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멈추지 않았던 그 선택에 영감을 받았다. 식물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애쓰고 그것이 다른 존재에게 영감이 되듯이 말이다. 호프 자런에게는 버드나무가, 부활초가, 연꽃의 씨앗이 영감이 되고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식물을 사랑하고 그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호프 자런이 나의 엄마가, 죽은 락커의 노래가, 기형도의 시가, 이제는 이름도 까먹은 누군가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변하고 성장했다. 사실 그게 누구인가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호프 자런은 식물을 나는 글을 매개체로 이용한다. 내가 누구라서가 아니라 내가 지속한 그 외침이 누군가에게 닿는 때가 있을 것이다. 불특정한 순간의 우연한 만남이 마법처럼 인간을 움직이게 한다.
그러니, 나의 이름이, 나의 명성(없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의 번식이다. 설령 세상에 큰 이익이 되지 않고 비효율적인 노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해가 되지 않는다면 충분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가 영감이 되어 그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된다면 좋은 일이다.
내가 엄마나 아내라는 주 정체성 이외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나를 건강하고 뿌듯하게 한다. 엄마가 힘들 때는 딸로, 상담사가 지겨울 때는 작가로, 작가에 좌절할 때는 아내로 나는 여러 정체성이라는 연잎을 징검다리처럼 밟으며 물에 빠지지 않고 연못을 여행한다. 나는 아직도 열지 않은 내 삶의 수많은 방의 문을 바라본다. 이 연재가 끝나도 내 여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저의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글과 만난 어떤 순간이 당신에게 긍정적인 움직임의 동력이 된다면 그 또한 기쁜 일입니다.